내가 설령 그 여자의 삶을 왜곡한다 해서, 그 여자가 살았던 삶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상관없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그건 어떻게 되는 거죠?
이정희 씨 말대로 그 여자가 자살하지 않았다고 합시다. 그 여자가자살하지 않았다는 게 그렇게 중요합니까? 그 여자가 자살했다는 의견을 내가 쓴다고 해서 뭐가 달라집니까? 어차피 그 여자는 죽었고,
다시는 살아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건 도대체 그런 궤변은! 무엇 때문에 당신은!
흥분하지 마시지요.

...

결코, 죽음 따위로 그 아이를 버리지 않았다. 민서는ㅇ자랄 것이고 언젠가 그 ㅈ댁을 읽을 것이다. 저 사람에게는 그런 일 따위는마무것도 아닌가? 진실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 - P34

긴 대화가 오가는 동안 그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한 번도 말을 더듬지 않았고, 공격적이면서도 침착했고, 확신과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 그가 평생을 헤쳐나올 수 있었던 무기이자 연장이 그것이었을 것이다. 세 치의 혀와 능란한 글. - P36

담배 연기가 그림에 밸까 봐, 이 안에서는 한 번도 담배를 피우지않았습니다. 오늘이 처음입니다.
그는 변명하듯 말하고 인주의 그림들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그는이발할 시기를 넘겼다. 반나마 희끗하게 센 머리털이 귀를 덮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는 인주를 사랑하고 있었다. 시작이 언제였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아직까지도. - P36

간혹 누군가가 다시 글을 써보는 게 어떠냐고 권고하면 무관심한 침묵으로 답했다.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었다. 백지 앞에 앉는다는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가슴을 짓누르는 공포를. 쓰레기 위에 덮인 눈 같은 생활의 고요가 물기와 썩은 고깃점들에 뒤범벅이 되는 순간의 예감을. - P40

분명한 건 하나뿐이다. 내 말들은 그의 말처럼 매끄럽지 않을 것이다. 견고하지 않을 것이다. 일사불란하지 않을 것이다.
함부로 요약하지 마라. 함부로 지껄이지마. 그 빌어먹을 사랑으로 떨리는 입술을 닥쳐.
나는 더듬을지도 모른다. 비명을 지를지도 모른다. 내 말들로 그의 말에 부딪칠 거다. 부서질 거다. 부술 거다. 조각조각 부수고 부서질거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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