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 만일 이러한 고생들이 기사도 수행에 없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ㅡ이건 생각이 아니라 분명한 사실이긴 하지만 ㅡ아마 나는 분통이 터져 이 자리에서 죽고 말았을 걸세. - P222
15장 만일 그 위급한 순간에 그의 친구인 현자가 구해 주지 않았더라면 이 가련한 기사는 못 볼꼴을 당했을 거라는 말이네. 그 정도니 나야 지금은 좋은 사람들 틈에서 잘 지내고 있는 셈이지. 그 기사들이 받은 모욕은 우리들이 지금 여기서 받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으니 말이야. - P223
15장 두들겨 맞은 게 너무 아파서 매질은 제 등판만이 아니라 기억에도 확실하게 새겨질 겁니다요 ... 세월과 함께 잊히지 않는 기억은 없고, 죽음과 함께 끝나지 않는 고통은 없다는 걸세.
아이고, 그렇게 불행할 수가! 판사가 대답했다.
기억이 잊히도록 세월을 기다려야 하고 고통을 끝내 주는 죽음을 기다려야 한다니 말입니다요. 우리의 이 불행이 고약 두어 개로 나올 만한 것이라면 그렇게 나쁠 것도 없지만, 제가 보기에는 의원에 있는 고약을 다 써도 이 불행을 제대로잡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요.」 - P224
「운이라는 것은 불행 속에서도 빠져나갈 문을 항상 열어 놓지. 불행을해결하라고 말일세」
돈키호테가 말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이못난 짐승이 지금 로시난테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지. 내 상처를치료할 어느 성으로 나를 태워 가도록 말일세. 더군다나 나는 이런 짐승을 타고 가는 것을 불명예로 여기지 않을 걸세. - P224
그러고는 서른 번의 <아이고>와, 예순 번의 한숨과 자기를 이런 곳에 데리고 온 사람에 대한 백스무 번의 저주와 욕을 내뱉으면서 일어났지만, 몸을 곧게 펼 수가 없어서 마치 터키의 활처럼 등을 구부정하게 굽힌채로 길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젖 먹던 힘까지 내서 자기 당나귀에 안장을 얹었다. 당나귀는 그날 자유롭게 딴 데 정신을 팔고 실컷 나돌았던 터였다. 그러고 나서 그는 로시난테를 일으켰는데, 말에게 만일 혀가 있었더라면 산초나 주인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투덜댔을 것이다.
결국 산초는 돈키호테를 당나귀 위에 얹고 로시난테는 그 뒤에 밧줄로 묶은 뒤 당나귀의 고삐를 잡고 큰길이 나올 만한 곳으로 얼마쯤 걸어갔다. 행운이 따랐는지 얼마 걷지도 않았을 때 길을 만날 수 있었다.
산초는길가에서 객줏집 하나를 발견했는데, 산초에게는 괴로운 일이었지만 돈키호테에 따르면 그것은 성이어야만 했다.
산초는 객줏집이라고 고집을피웠고, 주인은 그게 아니라 성이라고 고집을 피웠다. 서로의 주장이 끝장을 보기 전에 그들은 그곳에 도착했다. 산초는 더 알아볼 필요도 없이 당나귀와 말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 P226
그렇다면, 여기가 객줏집이란 말인가? 돈키호테가 물었다. 아주 평판이 좋은 객줏집이죠. 주인이 대답했다. 지금까지 내가 속고 있었군! 돈키호테가 대답했다. 나는 정말 그리나쁘지 않은 성인 줄 알고 있었소. 그러나 성이 아니고 객줏집이라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계산에 대해서 눈감아 달라고 부탁하는 것뿐이오. 나는 편력 기사의 법도를 어길 수가 없소. - P244
이에 산초는 자기 주인이 받은 기사의 법도를 걸고 설혹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일전 한 푼 지불할 생각이 없다고 대답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편력 기사들의 훌륭한 관습이 자기로 인해 훼손되어서는 안 되며, 앞으로 이 세상에 나타날 편력 기사들의 종자들이 이런 정의로운 법도를 깼다고 자기를 비난하면서 원망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라는 얘기였다. - P245
17-247 나리께서는 제가 기사가 아니라는 것을 잊으셨나요? 아니면 지난밤에 토하다 남은 내장까지 토하란 말씀이십니까요? 나리의 그 약물은 악마놈들을 위해 간직하시고 저는 그냥 내버려 두세요. 이 말을 마치자마자 물을 입에 댔는데 첫 모금으로 그것이 그냥 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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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를 다 마시자 산초는 당나귀에게 발길질을 해 활짝 열린 객줏집문을 나섰다. 그는 자기 뜻대로 일전 한 푼 지불하지 않게 된 것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비록 늘 그러하듯 자기 등짝의 희생 덕분이었지만 말이다. 사실 객줏집 주인은 받아야 할 돈 대신 그의 자루를 챙긴 터였지만 산초는 정신없이 나가는 바람에 그것이 없어진 것도 모르고 있었다. - P247
18-249쪽 저를 갖고 장난친 놈들은 나리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유령도 아니고 마법에 걸린 인간도 아닙니다요. 저희들과 똑같이 살과 뼈로 된 인간들입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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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나리, 나리께서 담을 넘지도 못하시고 말에서 내리지도 못하신 것은 마법 때문이 아니라 뭔가 다른 이유 때문이라는 거죠.
이 모든 일에서 제가 분명하게 얻은 결론은요, 우리는 우리가 찾아다니는 모험들 때문에 결국 어느 쪽이 오른쪽 다리인지도 모를 만큼 수많은 불행을 당하게 될 거라는 겁니다요. 저의 변변치 못한 이해력으로 봐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옳고 잘하는 일인것 같습니다요. 때마침 추수이고 농사도 바쁠 테니까. 사람들이 말하듯이 여기저기 광장에서 술집으로 전전하는 것보다야 그게 낫지요. - P249
그는 대단히 기뻐하며, 저것은 분명 두 군대가 광활한 들판 한가운데서 서로 맞붙어 싸우기 위해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때고 어느 순간이고, 기사 소설에 나오는 전투며 마법이며 사건이며 황당무계한 일이며 연애 사건이며 도전이며 하는 환상으로 그의 머리는 가득 차 있었으니, 그가 말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은 모두 그런 쪽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었다.
사실그가 본 모래 먼지는 그 길을 향해 서로 다른 쪽에서 마주 오고 있던 수많은 양 떼 두 무리가 일으킨 것으로, 먼지 때문에 가까이 올 때까지는 양들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 P251
18-255쪽나리, 제 눈에 악마가 씌었는지 들판을 아무리 둘러봐도 나리께서 말하신 거인이나 기사나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요. 아마도 어젯밤의 유령처럼 마법에 걸려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요. ...
자네 귀에는 말들이 울부짖는 소리와 나팔 소리와 북소리가 들리지 않는단 말인가?
양들이 요란하게 울어 대는 소리 말고 다른 것은 들리지 않는뎁쇼. ...
자네의 두려움이……… 돈키호테가 말했다. 자네로 하여금 제대로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하는 걸세. 두려움이 미치는 영향 중에는 모든 감각을 혼란스럽게 하여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게 있다네. - P255
18-257쪽 그게 아니라면 산초여, 제발 한번 당나귀를 타고저 놈들의 뒤를 눈치 못 채게 쫓아가 보게. 그러면 내 말이 사실이라는 걸 제대로 알 수 있을 테니 말일세. 조금만 가다 보면 그놈들이 어떻게 양의 모습에서 내가 자네에게 묘사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오는지를 보게 될걸세. 하지만 지금은 가지 말게. 자네의 시중과 도움이 필요하니까 말일세. 내게 와서 내 앞니와 어금니가 몇 개나 빠져나갔는지 봐주게. 입안에 한개도 안 남은 것 같군.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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