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더 있는 것 같을 때가 있어.

작은 돌기들 같은 그 촛농 방울들로부터 눈을 들며 인선이 말했다.

뭔가가 더 남아 있어, 아미가 이렇게 있다 가고 나도.

그녀의 물음이 뒤따라 정적을 건너왔다.

너도 그럴 때가 있어? - P208

...나는 대답 대신 물었다.

언제부터 그랬어?

...

뼈들을 본 뒤부터야.
...

...만주에서 돌아오던 비행기에서.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아미가 죽은 다음이거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일 거라고 짐작했다. 만주 촬영이라면 벌써 십 년 전, 인선이 후암동에 살던 때다.

그가을에 유골들이 발굴됐어.

어디에서?

나는 물었다.

제주공항, 하고 대답하며 인선이 목소리를 낮췄다.

활주로 아래에서. - P209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다음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한 건 그렇게 해가 바뀌었을 때였어. 

...

그가 만약 십대였다면 출생연도가 엄마와 얼추 비슷할 것 같았어.
두 사람의 그후에 대해 다루면 되겠다는 계획이 섰어.

 한 사람은 날마다 수십 차례 비행기들이 이착륙하는 활주로 아래서 흔들리며, 다른 한 사람은 이 외딴집에서 솜요 아래 실톱을 깔고 보낸 육십 년에 대해서. - P213

이 집에 나도 가봤어.

재작년에. 아들 부부만 살고 있었어.


이 인터뷰를 했던 해 겨울에 이분은 돌아가셨어.


한 가지를 이분은 오해했어.


아버지 손이 물그릇을 받을수없을 만큼 떨렸던 건 그  순간의감정 때문이 아니야.

협심증 약을 드셨어. 결국 심근경색이 왔어.

손이 떨리던 것도 고문 후유증이었어. - P235

돌이 됐다고 했지. 죽었다는 건 아니잖아요?

그태 안 죽었는지도 모르잖아요. 저건 그러니까......돌로 된 허물 같은 거죠.

아, 말하고 보니까 정말 그런 것 같은데.

허물을 벗어놓고, 여자는 간 거안!

어디로?

그건 뭐 그 사람 맘이지. 산을 넘어가서 새 삶을 살았거나, 거꾸로 물속으로 뛰어들었거나......

물속으로?

응, 잠수하는 거지.

왜?

건지고 싶은 사람이 있었을 거 아니야. 그래서 돌아본 거 아니야?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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