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처럼 가볍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눈에도 무게가 있다. 이 물방울만큼.
새처럼 가볍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그것들에게도 무게가 있다. - P109
어떻게 이렇게 가벼운 거야, 내가 물었을 때 인선은 자신도 알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새들의 뼈에는 구멍들이 뚫려 있다고. 장기 중에 제일 큰 건 풍선처럼 생긴 기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새들이 조금 먹는 건 위가 정말 작아서 그런 거야. 피도 체액도아주 조금뿐이어서, 약간만 피를 흘리거나 목이 말라도 생명이 위험해진대. 가스 불꽃에서 나오는 약간의 유해물질도 혈액 전체를 오염시킬 수 있다고 해서 전기레인지로 바꿨어. - P110
그의 한쪽 눈은 벽에서 움직이는 인선과 아마의 그림자를,
다른 쪽 눈은 유리창밖 마당에서 저녁 빛을 받으며 흔들리는 나무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두 개의 시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건지 나는 알고싶었다.
저 엇박자 돌림노래 같은 것, 꿈꾸는 동시에 생시를 사는 것같은 걸까. - P114
내 시선을 느끼지 못한 듯 노인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은 채교차로를 향해 먼 시선을 던지고 있다.
말을 걸기 위해선 그의 몸을 건드려야만 한다.
손을 뻗어 그의 어깨에 막 닿으려는 순간 노인의 얼굴에 동요가 스친다.
새로운 빛이 어린 그의 시선이 끈질기게 향한 곳에서, 두툼한 눈을 천장에 인 작은 지선버스가 거짓말처럼 교차로를 돌고 있다. - P117
번쩍이던 눈으로 나를 응시하던 인선을 뒤로하고 택시는 김포공항을 향해 달렸다. 젖은 실밥처럼 앞유리에 달라붙는 눈송이들을 두 개의 와이퍼가 끈덕지게 지워냈다. 63
이런 눈보라는 처음이다. 서울 거리에 무릎까지 눈이 쌓이는 광경을 십 년 전 겨울에 한차례 보았지만 이만큼의 밀도로 허공을 채우지는 않았다. 59
점점 나는 초조해진다. 이 버스를 탄 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생각 때문이다.
두 시간 전 내가 몸을 실었던 비행기는 몹시 불안전하게 흔들리며 제주공항에 착륙했다. ... 통로 건너 옆 좌석에 앉아 있던 젊은 여자가 스마트폰을 만지며 중얼거렸다. 세상에, 우리 다음 비행기부터 전부 결항이야. ... 택시 승강장에서 ...공항 건물 앞으로 되돌아갔고, ...내 목적지를 들은 초로의 남자는 버스를 타라고 충고했다....일단 여기서 아무 버스나 타고 버스 터미널로 가세요. ...일단 거기선 안 가는 데 없이 다 갑니다....
가장 먼저 나타난 시내버스를 타고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불안했다. 오후 다섯시만 되어도 어두워질텐데, 그태 시각이 벌써 두시 삼십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61
터미널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쪽 해안의 P읍을 경유하는 급행 일주버스가 들어왔다.P읍과 마을을 연결하는 작은 지선버스가 한 시간에 석 대씩 있다고 그녀는 말해줬다.... 또렷하게 떠오른 그 정보들 때문에 그 순간 나는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먼저 도착한 일주버스를 타고 P읍에 도착한 뒤 지선버스로 갈아타고 인선의 마을까지 들어가는 것. 그러나 문제는 이 섬의 해안선이 동서로 긴 타원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P읍에서 인선의 마을로 들어가는 작은 버스의 운행이 눈 때문에 중단될지도 모른다.
터미널에서 한라산을 가로질러 인선의 마을 인근을 바로 통과하는 노선도 있지만, 배차 간격이 길어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해서 나는 그 일주버스에 올라탔다.62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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