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든 호감을 줄 법한 그 단정한 인상 덕분에, 희미하게 얼굴에 배어 있는 그늘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 P151
석달 전 그녀의 여동생 영혜가 발견되었다던 숲이 저 산기슭 어디쯤이었을까. - P152
거의 기적이라고 동생의 담당의는 그녀에게 말했다. 깊은 산비탈의 외딴 자리에서 영혜는 마치 비에 젖은 나무들 중 한그루인 듯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고 했다. - P153
이제는 수요일마다 영혜의 경과를 보러 가지만, 그 비내리던 날 영혜가 실종되었다가 발견되기 전에는 한달에 한번쯤 지나던 길이다. - P157
영혜는 그녀보다 네살 어렸다. 터울이 제법 져서인지, 그녀들은 자매간에 흔히 볼 수 있는 티격태격하는 갈등 없이 자랐다.
손이 거칠던 아버지에게 차례로 뺨을 맞던 어린시절부터 영혜는 그녀에게 무한히 보살펴야 할, 흡사 모성애와 같은 책임감을 안겨주는 존재였다.
발뒤꿈치에 새카만 때가 끼어 있고 여름이면 콧잔등에 땀띠가 빨긋하게 돋던 여동생이 성장하여 결혼하는 것을 그녀는 신기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다만, 나이를 먹을수록 동생의 말수가 적어진 것이 내심 안타까울뿐이었다.
그녀 역시 신중한 성격이긴 하지만 분위기에 따라밝고 싹싹한 편인 데 반해, 영혜의 심중은 어느 때건 들여다보기 어려웠다. 너무 어려워 때로는 타인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 P158
그것은 남편의 우울한 태도와는 전혀 닮은 데가 없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동일하게 그녀를 좌절하게 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 다 비슷하게 말수가 적어서였을까. - P159
그냥 저런 걸 넣게 돼. 넣고 나면 마음이 편해져 그러고는 익숙한 침묵이었다.
결코 관통할 수 없을 것 같은 침묵에 싸여 있던 남편의 실체를 과연 그녀는 만난 적이 있었을까.
그의 작업이 그것을 보여줄지 모른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는 짧게는 2분에서 길게는 한시간 분량의 비디오작품을 만들어 전시했는데, 사실 그녀는 그를 알기 전에 그런 미술분야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을 이해할 수도 없었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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