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오는 국민학교 시절에 할머니 신금이에게 되물은 적이 있었다.
"일제시대에는 그랬다 치고, 왜 우리 식구들은 힘센 쪽에 붙지못하고 맨날 지는 쪽에만 편들었어요?"
"왜, 약한 쪽 펀드는 게 싫으냐?"
"물론이지요. 너무 손해잖아요?"
그러면 할머니는 감실감실 주름살 잡힌 눈을 더욱 가늘게 뜨고웃으면서 말했다.
"그때에는 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약한 이들이 이기게 되어있다. 너무 느려서 답답하긴 했지만."
그리고 신금이는 덧붙였다.
"오래 살다보면 알 수 있단다. 서로 겉으로 내색을 안 할 뿐이지속으론 다들 알구 있거든." - P564
"그런데 가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세상은 우리가 바라던 대로 이루어지진 않고 늘 미흡하거나 다른 모양으로 변하는 게아닌가. 그것도 시간이 무척 오래 지나서야 그러더군요. 장구한 세월에 비하면 우리는 먼지 같은 흔적에 지나지 않아요." - P585
"언제 와요? 소식은 어떻게 전해요?" 신이는 남편에게 물었던 그렇게 어리석은 마지막 말에 대해서내내 후회했다. 그 짧고 소중한 시간에 해줄 수 있던 말이 그뿐이었다니. 모든 이별은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바람처럼 언뜻 사라지는 서로의 표정이 아련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오래 걸리진 않을 거요." 금이는 남편이 돌아서서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계단 아래 서있었다. 이십만이 몇걸음 더 조카를 따라 걸어갔다. - P588
이 고통의 기간을 줄이거나 늘리는 것은 오로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방대한 우주의 시간 속에서 우리가 살던 시대와 삶의 흔적은 몇점 먼지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상은 느리게 아주 천천히 변화해갈 것이지만 좀더 나아지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고 싶지는 않다. - P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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