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도 왜 다른 남자들과 잠자리를 함께했는지, 아내가 살아 있는 동안 그 이유를 마음먹고 물어봤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는 자주 그렇게 생각했다. 

실제로 그 질문을 입 밖에 낼 뻔한적도 있었다. 

당신은 대체 그들에게서 뭘 원했어? 
도대체 내가뭐가 부족했어? 

그녀가 죽기 몇 달 전의 일이었다. 하지만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며 죽음과 싸우는 아내를 향해 차마 그런 말을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어느 것 하나 설명해주지 않은채 가후쿠가 사는 세계에서 사라졌다. 
하지 못한 질문과 듣지 못한 대답. 

그는 화장터에서 아내의 뼈를 수습하면서 말없이 그런 생각에  잠겼다. 
누군가가 귀에 대고 건네는 소리도 듣지 못할 만큼 깊이. - P27

상상하고 싶지 않았지만 상상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상상은 예리한 칼날처럼, 시간을 들여 사정없이 그를 저몄다. 끝까지 아무것도 몰랐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아는 것이 모르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 그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이자 삶의 자세였다.

설령 아무리 극심한고통이 닥친다 해도 나는 그것을 알아야 한다. 이는 것을 통해서만 인간은 강해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상상보다 더 괴로운 것은 아내가 품고 있는 비밀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안다는 걸 아내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는 것이었다. 가슴이 갈기갈기 찢겨 속으로는 보이지 않는 피를 흘리면서도 얼굴에는 항상 온화한 미소를 짓는 것. - P28

"그래서 가후쿠 씨는 이해했어요? 부인이 왜 그 사람과 잤는지."

가후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해하지 못했어. 그는 가졌고 나는 갖지 못한 것이 몇 가지 있었을 거야. 아니, 아마 많이 있었겠지. 하지만 그중에 어떤 것이 아내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그것까지는 모르겠어. 인간이 그렇게 세세한 핀포인트 수준에서 행동하지는 않으니까.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다는 건, 
특히 남자와 여자가 관계를 맺는다는 건, 
뭐랄까, 보다 총체적인 문제야. 
더 애매하고, 더 제멋대로고, 더 서글픈 거야." - P37

 "그런 분과 인연을 맺고, 함께 살고, 
가후쿠 씨는 정말 행복하셨겠어요"
"그랬지. "가후쿠는 말했다. 

"당신 말이 맞아. 분명 행복했다고 생각해. 
하지만 행복했던 만큼 괴로운 일도 있었어."

"이를테면 어떤 일이죠?"

가후쿠는 온더록스잔을 들어 커다란 얼음을 빙글 돌렸다. 

"언젠가 그녀를 잃을지도 모른다, 그런 상상을 하면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팠어." - P48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가후쿠는 말했다. 

"내가 그녀를 적어도 중요한 일부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거야. 그리고 그녀가 죽어버린 지금, 그건 아마도 영원히 이해되지 못한 채 끝나겠지. 
깊은 바다 밑에 가라앉은 작고 단단한 금고처럼. 
그생각을 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아."

다카쓰키는 그 말을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가후쿠씨, 우리가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설령 그 사람을 깊이 사랑한다 해도"

가후쿠는 말했다. "우리는 이십 년 가까이 함께 살았고, 친밀한 부부이자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친구라고 생각했어. 어떤 일이든 솔직하게 이야기한다고 말이야.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어.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는지도 모르지.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나에게 치명적인 맹점 같은 게 있었는지도 몰라."

"나는 그녀 안에 있는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쳤는지도 몰라. 아니, 눈으로 뻔히 보면서도 실제로는 그걸 보지 못했는지도 몰라." - P49

"내가 아는 한, 가후쿠 씨 부인은 정말로 멋진 여자였어요. 물론 내가 안다고 해봐야 가후쿠 씨가 아는 것의 백분의 일에도 못미치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렇게 확신해요. 

그런 멋진 사람과 이십 년이나 함께할 수 있었던 걸 가후쿠 씨는 뭐가 어찌됐건 감사해야 한다.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잘안다고 생각한 사람이라도,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타인의 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본다는 건 불가능한 얘깁니다. 그런 걸 바란다면 자기만 더 괴로워질 뿐이겠죠. 

하지만 나 자신의 마음이라면,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분명하게 들여다보일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나 자신의 마음과 솔직하게 타협하는 것 아닐까요? 

진정으로 타인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나 자신을 깊숙이 정면으로 응시하는 수밖에 없어요. 

나는그렇게 생각합니다." - P51

"하지만 분명히 말해 그리 대단한 놈은 아니었어. 
성격은 좋은지 모르지. 
핸섬하고, 웃는 얼굴도 근사해. 
적어도 약아빠진 인간은 아니었고. 
하지만 경의를 품을 만한 인간도 아니야 솔직하지만 깊이가 부족해. 
약점이 있고, 배우로서도 이류였어. 

그에 비해 내 아내는
의지가 강하고 속 깊은 여자였지.
시간을 들여차근차근 조용하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었어.

그런데 왜 그런아무것도 아닌 사내에게 마음을 빼앗겨 그 품에 안겼는지, 그 의문이 지금도 가시처럼 마음을 찔러."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가후쿠 씨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도 느껴진다, 그런 말인가요?"

가후쿠는 잠시 생각하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 P58

"여자한테는 그런 게 있어요." 미사키가 덧붙였다.
아무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가후는 침묵을 지켰다.

"그건 병 같은 거예요, 가후쿠씨. 생각한다고 어떻게 되는 게아니죠. 

아버지가 우리를 버리고 간 것도 엄마가 나를 죽어라들볶았던 것도, 모두 병이 한 짓이에요. 

머리로 아무리 생각해봤자 별거 안 나와요. 
혼자 이리저리 굴려보다가 꿀꺽 삼키고 그냥살아가는 수밖에요."

"그리고 우리는 모두 연기를 한다." 가후쿠가 말했다.

"그럴 거예요. 많든 적든."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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