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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기완을 만났다 (리마스터판) ㅣ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조해진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평점 :
@changbi_insta
* 나 (김작가)
살아남은 자들, 건강한 자들, 그들은 뭘 해야 하는 건지,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명을 찾아내는 것 말고 죽거나 죽을 만큼 불행해진 사람들에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 건지, 그걸 묻고 싶은 거라고요! (p.154)
* 박 (박윤철)
"거기엔 내가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소."
하늘로 날아갈 수도, 땅으로 떨어질 수도 없는 날개가 젖은 새는 오래도록 내 품안에 있었다. (p.224, 228)
* 이니셜 L , 로 (로기완)
살아 있고, 살아야 하며, 결국엔 살아남게 될 하나의 고유한 인생. 절대적인 존재. 숨쉬는 사람. (p.230)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는 쉽지 않은 소설이었다.
사람들 속에 함께 서있지만 어딘지 외로이 부유하듯,
각자의 존재가 가지는 아픔에 고통스러우면서도
살아있기에 살아가야하는 고독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들의 감정이 엔딩이 되기 직전까지 거의 소설 전반을 끌고 가기에 읽고 있는 독자도 쉬이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어머니는 저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살아야 했습니다."
잡지에 실린 탈북자 "이니셜 L"의 한 마디는
죄책감과 자괴감으로 괴로워하던 '나'로 하여금
이후 '로'라고 불릴 이니셜 L을 찾아 나서도록 이끈다.
소설 《로기완을 만나다》는 '나'라는 화자가 로가 경험했던 2년의 장소와 사람들을 가고 보고 만나며 그의 삶 안에 들어가보고 로를 만나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단순히 여정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이유로 고달프고 고독하고 고통스러우나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픔과 응어리를 보여주고 있다.
말 한마디 못하는 이국 땅, 버리고 떠나온 나라에서도 자신이 가려고 했던 나라에서도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철저하게 이방인이었던 한 사람, 로.
상대를 위해, 상대가 원한 선택이었으나 그 선택을 도운 댓가로 마음 속 고통과 외로움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는 박.
자신의 선택으로 초래된 누군가의 불행을 직면하기도 힘들지만 그럼에도 살아야하는 이유를 확인받고자 로를 찾아온 나.
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 중 누구도
보통이라고 할 만한 삶을 보여주고 있는 사람이 없다.
경제적이거나 사회적인 관점이 아니라 내면적으로 그들이 짊어진 삶과 고통의 무게는 절대 보통 수준이 아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다.
사실 개인적으로 로보다 박의 인생에 울컥 했던 것 같다. 그 무게와 세월을 견디고 여러 감정에 무뎌진 듯 보이던 그가 마음 속 질문을 드러내는 그 순간 그 시간들이 얼마나 날카로왔을지 아프게 와닿았다.
그래도 이 소설의 끝, '나'의 여정의 끝
박과 로가 그 삶의 무게를 잠시나마 덜고 또는
그 무게를 함께 할 누군가와 함께 하길 택하여
그래도 희망을 보게 된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문득,
이 소설 속 주요 인물들 나, 박, 로 가 풀네임으로 불리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들이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박윤철, 로기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움을 알아차린다.
언제나 혼자일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장치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고독하고 고통을 혼자 감내해야했던 박과 로는 비로소 끝에 이르러서 박윤철과 로기완이라는 이름과 함께 유령이 아닌 숨쉬는 사람이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끝까지 이름으로 불리지 않은, 김작가로 불리는 '나' 또한 그 여정의 끝,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이름을 찾길 바래본다.
영화 《로기완》이 3월 1일 개봉. 공개된단다.
소설 속 그에게 너무나 차갑고 배타적이었던 그래서 폭력적이었던 사회와 그가 느낀 감정이 어떻게 표현되었을지 기대가 된다.
상자 속 앨범을 한장 한장 들추면서 로기완은 브뤼셀에서 보낸 자신의 2년여 세월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 시절 엄연히 인생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될까. 국적이나 신분증은 없었어도, 그 나라의 언어를 알지 못했어도, 단 한번도 그 자신이 유령인 적이 없었다는 것을 말이다. (p.232)
타인과의 만남이 의미가 있으려면 어떤 식으로든 서로의 삶 속으로 개입되는 순간이 있어야 할 것이다.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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