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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 - 산월기(山月記) / 이능(李陵)
나카지마 아츠시 지음, 명진숙 옮김, 이철수 그림, 신영복 추천.감역 / 다섯수레 / 199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호랑이가 되어 버린 이징(李徵)의 고백 - <산월기 山月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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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詩)로 명성을 얻으려 하면서도 스스로 스승을 찾아가려고도, 친구들과 어울려 절차탁마(切嗟琢磨)에 힘쓰려고도 하지 않았다네. 그렇다고 속인들과 어울려 잘 지냈는가 하면 그렇지도 못했다네. 이 또한 나의 겁 많은 자존심과 존대한 수치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걸세. 내가 구슬이 아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애써 노력해 닦으려고도 하지 않았고, 또 내가 구슬임을 어느 정도 믿었기 때문에 평범한 인간들과 어울리지도 못했던 것이라네. [...] 지금 생각하면 나는 내가 갖고 있던 약간의 재능을 허비해 버린 셈이지. 인생은 아무것도 이루지 않기에는 너무도 길지만 무언가를 이루기에는 너무도 짧은 것이라고 입으로는 경구를 읊조리면서, 사실은 자신의 부족한 재능이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비겁한 두려움과 고심(苦心)을 싫어하는 게으름이 나의 모든 것이었던 게지. 나보다도 훨씬 모자라는 재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그것을 갈고 닦는 데 전념한 결과 당당히 시인이 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말이야. 호랑이가 되어 버린 지금도 가슴이 타는 듯한 회환을 느낀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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