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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설득
메그 월리처 지음, 김지원 옮김 / 걷는나무 / 2019년 9월
평점 :
대학생이 되고나서부터, 정확히는 강남역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난 이후부터, 페미니즘에 관련된 글들과, 책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그 중 대부분의 책들은 가볍고(담고 있는 주제가 가볍다는 것은 아니다.), 에피소드 형식이었는데 이렇게 두꺼운 관련 서적 리뷰는 '시네페미니즘', '못생긴 여자들의 역사'이후 참 오랜만이다. 앞서 말한 두 책은 그때의 내가 읽기에, 전공과 관련되어 흥미롭기도 했지만, 많이 어려웠다. 그래서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 두께가 주는 중압감에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들었던 것 같다 .뭐, 생각보다 금방 읽어 놀라기도 했지만! 처음 책이 주는 느낌보다 다 읽고 나서 책이 주는 느낌이 많이 달랐기에, 상당한 두께에 두려워말고 일단 읽어보라 추천하고 싶다.
책 표지는 다양한 원색을 사용해 상당히 화려하다. 이는 책의 내용과도 연결되는데 최대한 스포일러를 배제하고 말을 해보자면, 마치 무지개색 같은 표지처럼 다양한 가치관과 성격의 인물들이 나온다. 주요 인물은 지, 그리어, 페이스라고 볼 수 있지만 그녀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부모님, 코리, 에밋의 이야기 또한 흥미진진하다. 한 사람의 시점에서 모든 이야기가 쓰이는 것이 아닌 여러 사람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상황을 다방면으로 이해할 수 있었고, 또 그 안에서 일어나는 대립과 갈등, 연대 등을 통해 여성으로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될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나에게 페미니즘은 두 가지 측면이 있어요. 첫 번째는 내가 나 자신의 인생을 형성하는 데 이용한 개인주의적 페미니즘이에요. 나를 정형화된 관념에 맞춰야 할 필요가 없고, 엄마가 말하는 대로 하거나 여자가 어때야 하는지 다른 사람의 개념에 맞춰야 할 필요가 없다는 주의죠. 하지만 두 번째 측면도 있어요. 여기서는 좀 구식 표현인 '자매애'를 사용하고 싶군요. / 자매애라는 건 모든 여성이 자신이 원하는 각각의 선택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걸 목표로 다른 여성과 연대하는 걸 말해요. 우리가 서로 분열된 채 딱 한명만 공주가 될 수 있는 어린애들 게임 같은 경쟁에만 달려든다면, 그러면 결국 여자는 어때야 한다는 사회의 관념에 속박되고 제한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책의 처음 부분에 나오는 페이스의 연설이다. 나 자신의 인생을 만드는데 필요한 개인주의적 페미니즘과, '자매애'라고 말하는 다른 여성과 연대하는 페미니즘을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나는 항상 나의 취향과 어떠한 신념이 확고히 되지 않은 상황에서, 변해가는 사회와 인식에 모든것을 맞춰가야 하는 것인지, 개인적인 삶에 집중하는게 더 중요한지에 대한 혼란을 겪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구절은 그 두 개의 사실을 나누고, 그 두 가지 모두 페미니즘이라는 큰 틀 안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줬기에 그동안 복잡하던 마음을 놓고 좀 더 시야를 넓혀 생각할 계기를 마련해 주었던 것 같다.
"우린 왜 자신에게 이렇게 엄격할까요?"/ 누군가가 엄청나게 구슬프게 말했다. 난 나 자신에게 그렇게까지 엄격하지 않아요, 그저 남자들의 시선을 나 자신의 시선처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을 뿐이죠, 페이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혐오 : 싫어하고 미워함(네이버 국어사전).
유독 자존감과 관련된 얘기는 여성들이 많이 한다. 왜? 왜 그럴까? 이 책에서는 남자들의 시선을 나 자신의 시선처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라고 답한다. 이 말에 적극 동의한다. 우선 외형에 관련해서만 적어보다. 물론 남자들도 외모품평과 지적을 많이 들었겠지만, 여성들이 듣는 것은 그 영향력부터가 다르다. 우리는 스스로를 검열하고, 표준에 맞게 살을 빼고, 살을 찌우고 자신을 꾸민다. 화장 또한 마찬가지다. 화장을 하면서 느끼는 자기 만족감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조차도 화장을 많이 하는 편이기에-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왜, 화장을 하게 됐는지 파고들다보면 (일단 나의 경우는)내가 나를 사회적인 미모 조건에 맞춰 남들에게 잘보이기 위해, 정상처럼 보이기 위해, 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여기서 정상은 사회적으로 여성에게 요구하는 무언의 무엇을 달성했을 때 찍히는 낙인의 의미로 정상이라 표현하였다. 점점 화장을 하지 않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한편에선 그 여성들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세상이다. 화장을 하지 않는 여성은 여자가 아니라고,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성"이 되기 위한 조건엔 우리가 의식했건 못했건 간에 남성의 시선이 존재한다. 부디 그 시선의 중압감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오로지 내가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길. 나 또한 이런 부분에 대해 미진한 것 같아 반성하게 된다.
책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페이스 프랭크"는 상당히 매력적이고,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가진 힘있는 여성으로 나오며, 그리어는 소극적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에서 자기의 의사표현을 정확히 할 수 있는 성격으로 발전하는 여성으로 나온다. 이 둘의 관계는 소설적이면서도 굉장히 현실서 있었다. 그리어에게 최고의 우상은 페이스였고, 그녀와 함께하는 순간은 그리어가 성장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뒷내용에서(자세한 이야기는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생략하고), 둘이 서로 의견이 충돌하고 페이스가 분노를 표출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정말 완벽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읽었던 페이스의 모습에서 일단 충격을 받았고, 시간이 지난 후에는 그 행동 하나로 그녀가 쌓아온 업적들, 그리어와 직원들에게 했던 수많은 따듯한 말들을 깡그리 배제하고 그 일만을 생각하는 나에게 소름이 돋았다. 세상은 바뀌고 어제 옳았던 것들이 오늘은 옳지 않을 수 있는 것이며, 그 어떤것도 옳고 그름을 논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나에게 페미니즘과 불평등에 맞서 싸우는 그 모든 행위들은 옳고 그름을 논할 수 없는 것 중 하나이다. 중요한 건 계속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것, 그것이 이어지다보면 사회는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다는 것, 더디더라도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스스로도, 자매애를 가지고도 노력해야한다는 점이다. 아마 서로 의견이 맞지않은 페이스와 그리어가 추구한 것도 이런 것이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