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식과 무게
이민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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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과 무게>를 읽는 동안 줄곧 차분하고 편안했다. 때로 몽롱한 듯도, 알쏭달쏭한 듯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이 혼란스러움과는 달랐다. 오히려 나는 이민진 작가님의 소설에서 만큼은 더없이 안전하게 등장인물과 스스로의 내면을 탐사할 수 있으리라 믿게 되었다. 아마 작가님의 사려 깊은 글 쓰기 덕분인 듯하다.


이 소설들은 어느 한때 무언가에 대해 함부로 단정을 내리기를 원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의 가치관이나 상황이 바뀌면서 그런 단정이 무용해진다는 것만이 진실이기 때문일까. <장식과 무게>에서 사건의 앞뒤는 중요하지 않다. 실종된 이모가 그 전까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장식과 무게'), 만날 때마다 은근히 소외감을 느끼게 될 만큼 가까워보였던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 그중 한명은 정말 이제 이 세상에 없는지('RE:')... 


상황을 확실히 이해하기 위해 공백을 채우고 싶은 마음이 본능적으로 들지만, 소설은 그보다는 독자들이 공백 자체를 받아들이도록 유도한다. 나는 이것이 곧 삶을 받아들이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 보면 우리가 결코 완전히 알 수 없고 채울 수 없는 공백들이 생겨 버겁기 마련인데, 사실 그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고, 우리는 그 사실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된 기분이었다.


특히 '프루스트가 쓰지 않은 것'이라는 단편이 내게 많은 위로를 주었다. 이 소설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술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으려던 청춘들이 조금씩 꿈의 형태를 바꾸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등장인물들 중에 원하는 것을 제때 원하는 형태로 손에 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시차가 있을 뿐,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들의 삶 속에 분명히 자리해 있었다.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쓰며 지녔던 열망이 그가 기대하지 않은 형태로 이루어졌듯이. 그래서 예술가로 불리기 위해 분투했던 시절이 가장 예술적이었다는 아이러니는 마냥 슬픔만을 남기지 않는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을 텐데, <장식과 무게>는 나의 약한 모습을 투영할 수 있는 존재를 거울처럼 세워놓음으로써 내게 안정감을 주었다. 혼자서는 털어놓을 수 없었던 감정을 나 대신 드러내주고 깊이 파헤쳐 이해하게 해주는 존재를 만난 것만 같았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작가의 말을 읽었을 때 더욱 마음이 따뜻해졌다. 작가와 내가 같은 마음으로 이어졌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앞으로 안정이 필요한 날 이민진 소설을 손에 쥐면 혼자서는 얻기 어려웠던 위로와 안정감을 느끼게 되겠다는 믿음이 생겨서.


나는 당신이 이 순간 감내하고 있는 삶의 무게를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사람이라면 일정한 체온 범위 내에 있을 것이며 우리의 관계는 그 온도에서 시작될 거란 믿음 혹은 열망이 내 안에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나는 그런 당신과 악수를 나누고 싶다.


만나서 반갑습니다.(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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