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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중록 1
처처칭한 지음, 서미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4월
평점 :
시리즈물을 읽었던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최근 몇 년동안은 읽지 않았던 것만은 확실하다. 개인사도 너무 바빴고 읽어야 할(혹은 읽고싶은) 책도 산더미처럼 쌓여있는지라, 시리즈물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내 성격상 일단 시작을 하면 끝을 봐야했기에.
아르테 2기의 마지막 책으로 잠중록1권을 받았을 때 ‘아 하필...’이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읽다 만 책처럼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것이 없는데 무려 시리즈물을 1권만 읽다 말거라니. 처음부터 안 읽는게 낫지 않을까? 재미가 없으면 또 2권을 읽기도 애매하고.
겨울이 끝나감과 동시에 나의 얼마 되지 않는 육아휴직도 끝이 났고 벚꽃잎이 하나둘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봄날, 고민 끝에 결국 출근길에 잠중록을 읽기 시작했다. 만성피로에 두통에 입안이 다 헐어 구멍이 숭숭 뚫린 쾌적한 상태로.
아버지를 도와 여러 사건을 해결하며 인재로 이름을 날렸던 열일곱 소녀 황재하는 어느 날 일가족을 독살한 살해범으로 수배당하는 처지가 된다. 도망자가 된 그녀는 몸을 숨기려 올라탄 마차에서기왕 이서백을 만나게 되고, 그녀의 정체를 눈감아 주는 대신 이서백은 미해결 사건을 풀 것을 제안한다.
황재하가 환관 양숭고로 변장하고 이서백의 곁에서 좌충우돌 사건을 풀어나가는 모습에서 <조선명탐정>이 생각나기도 하다가, 두근두근 설레는 장면에서는 한 때 열광하던 <구르미 그린 달빛>도 생각나면서...그리고 오랫만에 잠자던 나의 본능에 불이 붙었다. 전혀 어떤 장르인지 모르고 펼친 이 책은 하필 로맨스가 가미된 추리소설이었던 것이다. 나는 한 때 추리소설 매니아였다. 애거서 크리스티를 시작으로 추리소설만 찾아 읽어대다가 나중에는 추리소설 작가가 되겠다고 노트에 친구들과 함께 추리소설을 써 대던 시절도 있었다. 비록 한 친구는 1장에서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고, 다른 친구는 추리소설에서 로맨스물로 장르가 바뀌었으며, 나의 경우는...야심차게 등장시킨 탐정을 모두가 범인이라고 지목하였지만;
당연히 멋있을 것이 분명한 이서백과 또 당연히 예쁘고 지혜로울 것이 뻔한 황재하 콤비가 살짝살짝 설레는 분위기도 만들어가면서 황실의 기이한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는 잠중록은 일단 중독성이 끝내줬다. 이런 책을 육아와 회사일에 치여 감질나게 한두장씩 읽으려니 힘들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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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소인의 생각으로 범인은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추리소설의 백미, 황재하가 사건의 실마리를 풀며 모두의 앞에서 범인을 지목하는 순간 나 또한 결심했다. 읽을 것이 넘쳐나다 못해 책에 깔리고 있는 요즘이지만 잠중록은 어떻게해서든지 짬을 내어 4권까지 읽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