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와 거짓말 : 금기 속에 욕망이 갇힌 여자들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이현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은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었다.
피곤해 죽을거같았지만 열심히 일해보겠다고 샷 추가한 커피를 마셔가며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부장님이 호출을 하더니 업무를 바꾸기로 했다고 통보했다. 의견을 묻는 것이 아닌 일방적인 통보. 이유는 내가 단축근무를 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육아휴직이 끝나고 나와서 풀타임 근무를 할 예정인 다른 직원에게 현재 내 일을 주고, 나는 업무가 바뀌게 되었다.

 

바뀐 업무의 좋고 싫음과 업무량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업무가 하루아침에 바뀌게 된 이유가 단지 내가 아이를 낳고 돌아와서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 단축근무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불쾌했다. 지금 현재 업무를 펑크내지 않기 위해 나는 아침 댓바람부터 유모차를 끌고 거리를 전력질주하고 커피와 약을 매일 먹어가며 시간을 쪼개고 쪼개며 살고 있었는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거였다. 어차피 바뀔 업무 죽어라 일하면 뭐하나, 내일부터 다른 업무가 왕창 쏟아질 것을.

p.118
이 나라에 사는 여자들의 삶이란 도무지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돈이 있거나 교육받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지 않은 이상 별 수 없죠.
p.175
모로코 여성들의 인내심이라는 건 어쩌면 어리석음의 다른 모습이 아닐까 하고 생각할 때도 있죠. 결코 받아들여선 안 되는 것을 묵묵히 받아들이니까요.
p.219
이 책에 실린 모든 증언들은 또한 모든 문제 속에서 여성의 자리가 차지하는 중심 역할을 확인해준다. 법률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진화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몸은 여전히 집단의 억압에 묶여 있다. 여자는 한 개인이기 이전에 어머니, 누이, 아내, 딸인 것이다. 여성은 가족의 명예, 또 더욱 나쁘게도 국가의 정체성을 책임지는 존재인 것이다.

전통적으로 이슬람교를 국교로 삼으며, 여성들은 외부인들에게 신체 일부를 드러내는 것을 치욕이자 오욕으로 간주하여 머리에 히잡을 써야 하는 나라. 모든 미혼 여성은 처녀막을 간직해야 하고 혼전 성관계가 금지되는 나라. 내연 관계도 동성애도 성매매도 법으로 금지하는 나라, 결혼을 앞둔 여성에게 순결 증명서를 요구하는 나라, 세계 5위의 포르노그래피 소비 국가이면서 여성들에게 만큼은 절제와 정숙과 침묵을 강요하는 나라 모로코. 공쿠르상 수상작가 레일라 슬리마니는 르포이자 증언록 형식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바탕을 둔 이 모로코식 전통과 법률이 가진 위선과 모순, 그 속에서 고통받는 여성들의 인권에 대해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_
모로코에 비하면 훨씬 여성의 인권이 존중되는 나라에서, 직원 중 여성의 비율이 높고 비교적 아이를 키우며 다니기 좋다고 알려져 있는 회사를 다니고 있는 나는 오늘 이런 경험을 하고 이 책을 마저 읽었다. 삶의 모습과 기준은 많이 다를지라도, 여자로 살아가는것은 여기서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것은 내가 딸을 바라면서도 바라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딸을 키우면서도 염려가 되는 점이기도 하다. 그래도 세상은 계속 바뀌고 있으니 우리 은총이는 엄마보다 더 나아진 삶을 살 수 있겠지. 그렇게 되길 바랄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중록 1
처처칭한 지음, 서미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리즈물을 읽었던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최근 몇 년동안은 읽지 않았던 것만은 확실하다. 개인사도 너무 바빴고 읽어야 할(혹은 읽고싶은) 책도 산더미처럼 쌓여있는지라, 시리즈물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내 성격상 일단 시작을 하면 끝을 봐야했기에.

 

아르테 2기의 마지막 책으로 잠중록1권을 받았을 때 ‘아 하필...’이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읽다 만 책처럼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것이 없는데 무려 시리즈물을 1권만 읽다 말거라니. 처음부터 안 읽는게 낫지 않을까? 재미가 없으면 또 2권을 읽기도 애매하고.

 

겨울이 끝나감과 동시에 나의 얼마 되지 않는 육아휴직도 끝이 났고 벚꽃잎이 하나둘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봄날, 고민 끝에 결국 출근길에 잠중록을 읽기 시작했다. 만성피로에 두통에 입안이 다 헐어 구멍이 숭숭 뚫린 쾌적한 상태로.

 

아버지를 도와 여러 사건을 해결하며 인재로 이름을 날렸던 열일곱 소녀 황재하는 어느 날 일가족을 독살한 살해범으로 수배당하는 처지가 된다. 도망자가 된 그녀는 몸을 숨기려 올라탄 마차에서기왕 이서백을 만나게 되고, 그녀의 정체를 눈감아 주는 대신 이서백은 미해결 사건을 풀 것을 제안한다.


황재하가 환관 양숭고로 변장하고 이서백의 곁에서 좌충우돌 사건을 풀어나가는 모습에서 <조선명탐정>이 생각나기도 하다가, 두근두근 설레는 장면에서는 한 때 열광하던 <구르미 그린 달빛>도 생각나면서...그리고 오랫만에 잠자던 나의 본능에 불이 붙었다. 전혀 어떤 장르인지 모르고 펼친 이 책은 하필 로맨스가 가미된 추리소설이었던 것이다. 나는 한 때 추리소설 매니아였다. 애거서 크리스티를 시작으로 추리소설만 찾아 읽어대다가 나중에는 추리소설 작가가 되겠다고 노트에 친구들과 함께 추리소설을 써 대던 시절도 있었다. 비록 한 친구는 1장에서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고, 다른 친구는 추리소설에서 로맨스물로 장르가 바뀌었으며, 나의 경우는...야심차게 등장시킨 탐정을 모두가 범인이라고 지목하였지만;

 

당연히 멋있을 것이 분명한 이서백과 또 당연히 예쁘고 지혜로울 것이 뻔한 황재하 콤비가 살짝살짝 설레는 분위기도 만들어가면서 황실의 기이한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는 잠중록은 일단 중독성이 끝내줬다. 이런 책을 육아와 회사일에 치여 감질나게 한두장씩 읽으려니 힘들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_
_ “소인의 생각으로 범인은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추리소설의 백미, 황재하가 사건의 실마리를 풀며 모두의 앞에서 범인을 지목하는 순간 나 또한 결심했다. 읽을 것이 넘쳐나다 못해 책에 깔리고 있는 요즘이지만 잠중록은 어떻게해서든지 짬을 내어 4권까지 읽기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키크니의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 - 일러스트레이터미네이터 키크니의 주문제작 만화
키크니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3월
평점 :
품절


 

그림과는 담을 쌓고 스마트폰을 핑계로 이젠 글씨도 못쓰겠는 똥손에
창의력이라고는 쥐어짜봐도 한방울도 없는 나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원하는 걸 쓱쓱 표현해내는 사람을 보면 그렇게 부럽다.
인스타를 보다 우연히 알게된 키크니님의 피드를 보면서도
늘 감탄했었다. 나같으면 이런 리퀘스트 자체가 스트레스일텐데
어쩜 이렇게 쉬워보이지.
조금 보태서 한컷 일러스트계의 밥아저씨를 보는 느낌이었다.
자 어때요, 참 쉽죠?
이렇게 육퇴 후 즐겨보던 키크니님의 만화를 모아모아 엮은 책이 나왔다.
 
<일단은 해보겠지만 안되면 안해보겠습니다>
프롤로그부터 만화의 느낌과 꼭 닮은 마인드에 웃으며 공감하게된다. 이런 자세, 격하게 닮고 싶다. 매일 복직타령을 하는것 같지만 그만큼 엄두가 안나기에 매일 주절거리게 되는 복직 D-6과 독박육아+재활치료를 모두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만개하는 요즘이기에, 나도 이런 자세로 임하고 싶었다. 일단 해보고 잘 안되면 말고. 나한테는 정말 힘든 이런 마인드.

나도 모르게 낄낄거리게 되는 재치있는 아이디어도,
웃다 말고 울컥하게 되는 감동도 있는 만화들이라 더 좋았다.
사실 어제 뒷부분을 보다가 울컥해서
혼자 방구석에 들어가서 울고 나왔는데..어느 만화때문에 그랬을까요? 아무도 안 궁금한데 나 혼자 질문하기.
원래 이렇게 SNS로 쉽게 접근이 가능한 만화들은
딱히 책으로 챙겨보거나 소장하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두고두고 옆에 놓고 보고싶다.
힘들고 지쳐서 쥐어짜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때,
키크니님의 만화를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텅 빈 마음을 충전해야지.
역시 만화는 넘겨서 봐야 제맛이죠.

참 쉽게 유명세를 타고 성공한 것으로 생각했던 키크니님도
긴 터널을 지나왔음을 알고 또 쉽게 판단한 내 자신을 반성했다.
마지막한마디는 또 왜 그렇게 와 닿던지. 정말 그런 것 같다. 삶이란.

그런 것 같다
사는 건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위로도 가고 아래로 가다가
결국은
제자리로 가는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버드 스트라이크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위저드 베이커리, 단 하나의 문장, 파과..
구병모 작가는 알고 있고 늘 위시리스트에 그의 작품을 올리긴 했었으나, 어쩌다보니 단 한 작품도 아직 읽지 못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블라인드북의 해시태그 만으로 사람들이 어떤 작가의 작품인지 예상을 하고 맞추기 시작했을때 좀 당황스러웠다.
#새인간 #작은날개 #영어덜트소설
생각해보니 내가 애정하는 하루키는 저렇게 세 가지 힌트만 주어져도 내가 모를리가 없는 것을..
이 작가의 작품세계나 특징을 전혀 알지 못하는 나는 #눈가리고책읽는당 이라는 모토에 매우 충실하게 백지의 상태로 가제본책을 읽어나갔다. 메이즈 러너 이후 영어덜트+판타지소설을 너무 오랫만에 읽어서인지 집중하는데 다소 시간이 걸리긴 했으나, 등장인물의 이름들도 다 눈에 익고 아 꽤 재미있네라고 생각하게 되자 순식간에 책이 끝나버렸다. 뭔가 아쉬울만큼.

도시의 인간들과 날개를 가지고 고원 지대에 사는 익인들이 공존하는 세상. 익인들이 어느 날 도시의 청사를 기습하는 일이 벌어지고, 다른 익인들과 달리 작은 날개를 가져 붙잡히게 된 비오는 청사의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인 루를 인질로 삼아 탈출에 성공한다.

익인들이 도시를 습격한 이유, 시행의 혼외자인 루와 익인과 도시 사람의 혼혈인 비오가 서로에게 끌리게 되는 과정, 단순히 악인인줄 알았으나 운명의 장난처럼 얽힌 뜻밖의 관계등...영어덜트 소설답게 가독성도 좋고 독특한 설정과 흥미진진한 전개는 영화로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와일라잇이나 헝거게임처럼...그리고 역시나 이런 작품들처럼, 후속편이 나와도 재미있지 않을까? 루와 비오, 탄과 마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좀 궁금해져서...작가님 후속편 쓸 생각은 없으신지요.

p.58
익인들은 나와 미래의 발걸음을 함께해 달라는 의미로, 청혼 상대에게 자신의 가죽신을 벗어 내민다. 대개는 꼭 맞지 않게 마련인 상대방의 신을 신고, 훗날 고난이 닥쳤을 때 배우자의 입장에 서서한 번 더 고민하고 이겨 내겠다는 다짐을 부탁하는 과정이다. 신체적 특성상 날개를 꺼내서 깃털이라도 한 장 뽑아 주는 게 더 어울리겠지만, 하늘을 자유로이 날되 살아가기 위해서는 언제고 땅에 발을 디뎌야 해서다. 땅에 두 발을 내려놓고 걷는다는 것은 날 줄 아는 인간들에게도 각별한 의미다.

인용한 부분은 뭔가 뜻밖에 설렜던 익인의 청혼법. 이런 멋진 의미가 담긴 청혼은 우리 도시인들에게도 감동.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이언, 내 곁에 있어줘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전승환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_
p.234
살면서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한다. 돌이켜봤을때 그 선택이 과연최선이었는지 아닌지는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어떤 선택이든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약간의 후회가 남기 마련이니까. 사소하든 아니든 우리는 시시때때로 갈림길에 선다.
어떻데 해야 후회 없이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사는 것이 아쉬움을 남기지 않는 방법인 것 같다. 내 삶에 집중하겠다는 선택이 후회보다 더 믿음직하게 날 이끌어줄지도 모르니까.
지금의 나는 내가 매 순간 내린 선택으로 성장해온 것이니까.
_

학창시절에는 아이돌만큼이나 예쁜 캐릭터를 엄청 좋아했다. 캐릭터가 그려진 편지지에 열심히 편지를 써서 친구에게 건네기도 하고, 스티커를 잔뜩 붙인 다이어리를 가지고 다니기도 했다.
지금도 예쁜 소품들을 좋아하지만 예전만큼은 캐릭터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캐릭터나 아이돌이나 새로나오는 것들(?)을 알아가기 귀찮아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헉 나도 나이를 먹는구나 싶었다.
그래도 아직도 애정하는 캐릭터가 있었으니 카카오프렌즈, 특히 라이언이다. 카톡 이모티콘을 거의 사지 않는 내가 라이언은 가끔 돈주고 살 때도 있다. 연애시절 크리스마스 한정판 라이언 인형을 가지고 싶어 부들부들하다가 이제 이런 인형 살 나이는 진짜 아니지 않나 싶어 참기는 했지만;
“나에게 고맙다”라는 말랑말랑한 책으로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었던 전승환 작가가 무려 라이언과 콜라보 한 책이라니. 글도 삽화도 당연히 기분좋다. 귀여운 라이언이 가득가득, 지친 마음을 위로해주는 글도 사이사이에 넉넉히 들어있다. 책장을 넘길수록, 책읽기가 끝나갈수록 좋았다. 복직을 앞두고 아이 어린이집을 일찍 보내며 아이도 나도 또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야 하는지라 은근히 예민해져있었던 내 신경을 토닥토닥 눌러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