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미움들 - 김사월 산문집
김사월 지음 / 놀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p.108

그 사람 영원히 내 인생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을 처음 알았던 나이를 나는 넘고 그 사람은 더 무섭고 높은 나이를 넘는다. 우리는 이어지지 않음으로 이어져 있을 것이다.


p.190

학생일 때의 감각이 떠오른다. 4월에는 중간고사, 7월에는 기말고사. 여름에는 방학을 보내고 가을엔 축제를 한다. 교과서의 진도가 모두 나가고 한 학년이 끝나갈 즈음이면 학급 TV로 영화를 보고 입김이 나는 겨울에 다음 학년의 반 배정 발표가 난다. 어른이 되어 이 감각을 흐릿하게 기억하며 나는 계절을 즐겁게 보내기도 시간을 너무 빨리 쓰기도 했다. 더 이상 누가 정해주지 않는 인생을 홀로 노를 저어 사랑하는 곳과 미워하는 곳들을 디뎠구나. 마스크와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는다.


p.205

강하게 쥐면 손에 무엇도 남지 않는 모래를 가지려면 가볍게 손을 오므려 넘치지 않게 찰랑찰랑하게 담기. 나의 몫만큼 가지며 오래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희망하기로 했다.


김사월이 누군지 몰랐다. 한때 늘 이어폰을 끼고 클래식이든 재즈든 가요든 인디음악이든 들으며 살았던 나는 이제 매일같이 상어가족이나 뽀로로, 티라노사우르스나 출동이다를 은총이에게 불러주는 엄마가 되었다. 눈뜨면 아이등원준비와 허겁지겁 출근, 허겁지겁 퇴근하여 집안 정리를 하고 아이 하원을 하고 나면 다시 애가 잠들때까지 헬게이트 오픈인 하루하루에 제대로 음악을 들을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내 방 가득 음악을 틀어놓고 책을 읽고 글을 끄적이던 적이, 분명히 예전에 있긴 있었는데.


내 병원 진료를 위해 휴가를 낸 날이었다. 두군데 병원을 가고 짬을 내어 만나고픈 사람에게 연락해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은행 업무를 보고 청소를 하고 애 하원을 시키고 저녁을 먹이고..분명 휴가를 받았지만 출근한 것보다 더 지치는 하루였다.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인 표지를 한 책을 펼쳐 읽는 내내 나의 20대와 30대가 스쳐지나갔다.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하고 사람에게 많이 의지한 만큼 상처도 많이 받았으며 어떻게든 무엇에 대한 답을 얻고자 몸부림치고 시행착오에 밤 늦도록 음악을 들으며 일기를 쓰던 날들. 혼자 오롯이 서 보고자 부단히 노력했던 날들.

책을 다 읽고 그녀가 궁금해졌고 인터넷을 검색해 그녀의 곡 몇개를 들었다. 너무 좋았다. 정말 오랫만에 듣는 이런 음악.

30대의 마지막 12월이 하루 하루 지나가고 있다. 오늘은 내 친구들이 보고싶다. 함께 30대까지 살아오느라 수고한 사랑스러운 내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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