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즈만이 희망이다 - 디스토피아 시대, 우리에게 던지는 어떤 위로
신영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 상황이 지금처럼 악화되기 전인 1월에 해외여행을 다녀왔는데, 이제는 그것이 마치 전생의 기억처럼 느껴진다. 며칠이면 나아지겠지, 몇 주 후에는 좋아지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버텨왔지만, 이제는 사태가 호전되리라는 희망을 쉽사리 품지 못하겠다. 앞으로는 상황이 나아질 날을 마냥 기다리기보다는 이미 닥쳐온 뉴노멀에 대비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코로나19의 여파는 전 세계 구석구석까지 미치고 있고,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일하던 곳이 문을 닫는 바람에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어찌어찌 생활을 연명하고는 있지만, 우리 사회에는 그조차 버거운 사람들도 많다. 저자 신영전은 그들을 우리 사회의 '퓨즈'라고 일컫는다.

『퓨즈만이 희망이다』는 저자가 지난 15년 동안 쓴 짧은 에세이를 묶어낸 것으로, 우리나라의 의료 체계의 문제점을 요목조목 짚은 사회비평에세이다. 총 여덟 개의 장으로 구성된 책은 가장 최근 대한민국의 의료 이슈를 면밀하게 다루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정권이 바뀌고, 정책이 변하는 동안에도 저자는 '복지는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일관된 주장을 펼친다. 그 안에서 의료민영화, 규제샌드박스법 등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 가장 먼저 피해를 준다는 이유 등으로 비판의 대상이 된다.


저자는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취약계층을 퓨즈에 빗대었는가? 그것은 약자가 곧 현대의 모순을 가장 농축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퓨즈'는 과전류가 흐르면 제일 먼저 끊어져 전기 장치를 보호하고 합선으로 인한 화재를 방지하는 장치다.그런 의미에서 퓨즈는 탄광의 카나리아와도 같다. 그러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소외 계층은 잘못된 의료 정책 때문에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 정권이 바뀌어도 변화는 미미하고, 한국의 공공의료는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퇴보하는 것만 같다. 규제샌드박스법이나 데이터3법, 규제프리존 등 의료계의 악법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중 가장 문제적인 것이 의료민영화와 관련된 사안이다. 자본은 국민의 공포와 불안을 이용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질병을 명명하고, 의료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해 이득을 취한다. 그 안에서 한 사람의 건강, 더 나아가 삶과 생명은 상품 가치를 지닌 거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나 저자는 이와 같은 흐름이 단순히 자본의 책임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는 정부와 기업, 시민을 포함한 우리 사회 전체의 책임이며 모두가 함께 움직이지 않으면 사회는 변하지 않고 상황은 악화되기만 할 뿐이다. 저자는 이와 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끊임없이 저항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끝이 없어 보이는 투쟁의 길, 그 끝에 기다리는 것은 희망일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패배는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만파식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에 도달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이 중요하며, 만파식적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헤겔의 정반합처럼 정과 반이 만나 더 나은 합으로 가는 것이다. 우리는 '경계 짓기'가 아닌 '경계 허물기'를 통해 더 나은 공공의료 환경을 이룩하고 이웃과 더불어 살 수 있을 것이다.

* 해당 글은 한겨레출판 서평단에 선정되어 단행본을 제공받은 후 작성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