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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이윤 리 지음, 정혜윤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9월
평점 :
와르르 무너질 만큼 감정적인 글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많이 슬프지도 않을 것이며, 커다란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라고
내 멋대로 재단하며(실은 조금 겁을 먹었던 게 아닐까) 책을 폈다.
슬픔은 모두 제각각이지 않은가.
무엇보다도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보다 내 슬픔이 더 클까 싶었다.
그러나 몇 페이지 넘기기도 전에
지난여름에 세상을 떠난 가족과 남겨진 가족이 떠올라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죽음은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떤 사실보다 더 객관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말로 뱉어내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죽은 사람은 과거에 남아있고, 나머지 가족들은 자꾸 반대쪽으로 멀어진다.
그래서 ‘죽은’ 가족이, 저기 저쪽에 있다고.
더 이상 여기에 없다는 것을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말하지 못할수록 괴로움은 조용히 무거워진다.
죽음은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며,
흐릿하고 기이한 현상이나 환상도 아니다.
그 어떤 것보다도 분명하고 명확한 사실이어서
오히려 뚜렷한 사실의 세계에서
내가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언어를 찾아 애쓰게 되는 것,
그래서 현실에 강력하게 존재하고 있는 고통이다.
...
“그 어떤 삶의 극한에도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살아가게 된다”
작가는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랄 뿐이라는 사실을 예로 들어,
두 아들의 죽음과 남겨진 어머니(인 자신)의 살아감을 설명하고자 한다.
정원은 희망이나 재생의 비유가 아니고, 식물은 그저 자란다.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명징한 사실이자 현실인 ‘죽음’을 대할 때에는
비유적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살아남은 자들은 그저 살아가야 한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완벽한’ ‘종결’이나 ‘종착점’으로 연결될 수 없다.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라듯
살아남은 자들은 그저 살아갈 뿐이다.
그리하여 ‘죽음’이란
산 자들의 삶 속에서 떠올려지고, 슬퍼하고, 기억하게 되는 ‘존재’ 같은 것.
커다란 슬픔 뒤에 애도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저 우리는 살아가고, 살아내고,
살았기에 살아지는 삶 속에 있는 것이다.
“나는 내 서식지인 심연 속에 부러 슬픔의 자리를 배정하고 싶지 않다. 만약 슬픔이 그곳에서 자라기로 마음먹는다면 그것은 마치 제멋대로 피어나는 장미동자꽃이나 향기로운 제비꽃 또는 매발톱꽃처럼 자라날 것이다.” (pp.112-113)
(♧) 출판사로부터 가제본 도서를 제공받은 서평단 참여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