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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메론 프로젝트 - 팬데믹 시대를 건너는 29개의 이야기
빅터 라발 외 지음, 정해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6월
평점 :
2020년은 막연한 기대를 품기에 좋은 해였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까진 아니더라도 전기차, 자율주행, 인공지능 같은 말들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매월 늘어가는 여행적금 잔고를 보며 휴가 때 첫 유럽여행을 떠날 생각에 들떠 있었다.
2020년,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고 팬데믹이 전 세계를 덮쳐왔다. 여름이면 괜찮아지겠지, 다시 겨울이 오면 나아질 거야, 내년이면 정말 좋아질 거야... 기대는 닳도록 들은 카세트 테이프처럼 축 늘어져만 갔다.
누군가는 코로나19 앞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이동이 제한되고 경제활동이 위축되는 기간 동안 일자리를 잃거나 빚을 진 사람들, 생계를 위해 출근해야 하는 나같은 평범한 사람들과 타인의 고통을 발판삼아 부를 늘려가는 사람들은 전혀 다른 인류 같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우울한 시대 속에서도 글을 쓰고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데카메론>은 흑사병이 창궐하던 14세기, 피렌체 근교의 저택에 피난해 있던 사람들이 시간을 때우기 위해 서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의 소설이다. 당대 사람들은 이야기의 힘을 빌려 지친 마음을 위로할 수 있었다.
<데카메론 프로젝트>는 700년 전처럼 팬데믹을 주제로, 전 세계의 작가들이 써내려간 단편소설을 엮어낸 책이다. 재난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아닌 엑스트라 1, 2, 3들의 이야기. 어쩌다 재난영화 속에 갇혀 버린 나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숫자가 되어버린 사람들을 1년 넘게 접하다보니 점점 무뎌져간다. 소설을 읽으며 비로소 전 세계 곳곳에서 팬데믹과 맞서고 있는 개개인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순전히 소개글 첫 문장에 끌려서였다. 여기까지 긴 글을 읽은 당신에게도 전하고 싶다.
"힘든 한 해를 보내셨군요. 안 그런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