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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카라마조프 가네 형제들>과의 만남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은 "A classic is something that everybody wants to have read and nobody wants to read"라는 말을 했다. 나는 이러한 고전의 평가가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을 말해 보라면 주저 없이 러시아 문학들을 꼽을 것이다. 나의 첫 러시아 문학과의 조우는 대학 학과에서 진행했던 문학학회의 첫 커리였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었다. 신입생 시절 책을 열심히 읽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죄와 벌>의 발제를 하겠다고 손을 들었었다. 도서관에 가서 <죄와 벌>을 찾았을 때, 방대한 분량과 등장 인물의 이름들을 보고 발제를 신청한 것을 깊이 후회했다. 이래서 마크 트웨인이 고전을 저렇게 평가했구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한 장 한 장 넘겨 가면서, 손에 땀을 쥐는 전개와 강렬한 심리 묘사는 다시금 '아 이래서 고전 고전 하는구나'라고 느끼며, 당시 열심히 읽던 니체의 사상과 연결해서 <죄와 벌>에 대해 발제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학회에서 톨스토이의 <부활>과 <안나 까레니나>, 고골의 <뻬쩨부르그 이야기>, 체홉의 <갈매기> 등을 보면서 대학교 1학년을 러시아 문학과 술에 흠뻑 빠져 보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도스토예프스키의 최고봉이라고 알려진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어야겠단 생각은 많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항상 미루다가 2015년에 책을 샀었다. 그러나 직장인이라는 핑계로 미루고 미루다가 2018년에서야 독서 모임의 도서 목록으로 추천되면서 다시 읽게 되었다.



1. 인물의 개성과 ‘카라마조프가적’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방대한 분량에 비하면 친부 살해 사건을 중심으로 비교적 간단한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간단한 서사 속에서도 “카라마조프가”에 속하는 다섯 명의 개성을 능숙하게 버무리면서 여느 복잡한 소설의 긴장감과 심오함을 소설에 담아 냈다.


나는 소설을 읽는 행위를 ‘서사와 감정의 줄타기’로 이해한다. 다양한 소설들을 조금 거칠게 분류하면 서사가 강한(사건과 대화의 역동적인 흐름 정도로 이해하자) 소설과 치밀한 사상과 감정의 묘사가 중심이 되는 소설이 있다.  예를 들면 조정래 선생님의 대하소설은 책에서 손을 놓을 수 없는 강한 서사 줄기 속에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읽어 가고, 그 속에서 사람의 심리와 감정을 공유한다. 반면에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을 보면 주인공의 심리 속에서 독자는 서사의 방향을 찾아가야 한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서사나 줄거리의 흐름에서 오는 긴장감 보다는 극한 상황에서의 사상과 관념이 갈등이 주가 되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상과 관념의 갈등을 이끌어 가는 장치는 카라마조프 가네 형제들이 갖고 있는 인물적 특성이다. 세속적 욕망과 본능에 충실한 장남 드미트리, 서구의 합리주의와 무신론을 대변하는 차남 이반, 종교적이고 신앙적이며 작품에서 가장 긍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삼남 알료샤, 그들 모두의 성격과 사상을 조금씩 공유하고 있는 것 같은 사생아인 스메르쟈코프까지 강한 개성으로 뭉쳐진 캐릭터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인물들은 최근에 읽은 톨스토이의 인물과는 다르게 만들어진 것 같다. 톨스토이의 인물은 현실에서 쉽게 접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연스러운 인물의 심리를 깊게 묘사한다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인물은 소설에서만 볼 수 있을 것 같은 인위적이면서도 강력한 개성을 갖고 있다. 소설 속에서 이 강한 개성들이 부딪히면서, 그 개성들이 우리 사회에 내재해 있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집약해서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카라마조프 가네 형제들>에서 각 인물들은 그 사회에 내재한 다양한 사상과 관념들의 총집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 모두가 러시아인이며, 도스토예프스키는 그 러시아적인 모습을 “카라마조프가적”인 것으로 지속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차남 이반과 삼남 알료샤가 나누는 대화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대심문관” 편에서 러시아의 미래에 대한 작가의 고민은 “러시아의 젊은 세대”가 갖고 있는 영원에 대한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묘사되고 있다. 즉, 도스토예프스키는 <카라마조프 가네 형제들>을 통해서 러시아 사회를 끊임 없이 조망하고 있는 것이다.  


2. <카라마조프 가네 형제들>과 현대 사회, 그리고 나


<카라마조프 가네 형제들>의 얘기가 러시아 사회의 단면만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지금과 같은 찬사를 받고 있진 않을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러시아를 이야기하면서 그와 동시에 인간 전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최고의 소설이란 평가를 받고 있을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카라마조프 가네 형제들>에서 설정한 주요 인물 사이의 갈등은 21세기가 된 지금에도 의미가 있다. 왜냐면 카라마조프가의 다섯 남자들(스메르쟈코프를 포함)의 합집합은 감히 인류 전체를 표현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삼형제 중 가장 매력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차남인 이반 카라마조프를 선택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무신론자이자 합리주의적인 인물임을 자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이해하는 이반이 아무리 매력적이라고 하더라도 현대 사회에 내재한 갈등을 풀어내는 데에 이반의 방식이 옳다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 사회는 20세기에 세계 대전과 수 많은 갈등을 거치면서 서구 합리주의에 대한 회의를 느껴본 경험도 있으며, 21세기에는 훨씬 더 복잡한 행태의 갈등이 서구 합리주의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 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정치적 옳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갈등이 중요하게 떠오르고 있다. 각종 이슈에 대해서 합리적이라 생각되는문제의 해결과 인간으로서 바람직하다고 느끼는 방식에서 많은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의 양상들이 마치 알료샤와 이반의 대화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최근 한국에서도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 난민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 알료샤와 같은 신성으로 인간의 삶을 사랑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을 돌봐야 한다는 입장과, 현실적인 이유를 통해서 그들을 외면해야 한다는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반은 소설 속에서 정신적으로 크게 흔들리면서도 자신의 합리주의와 무신론을 "대심문관"을 통해 멋지게 독자들에게 설파했다. 나 역시불완전 하면서도 평소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춘 이반의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 그러나 최근의 정치적 옳바름에 관한 사회 갈등 구조를 살펴 보면 난 언제나 알료샤의 입장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사회적으로 진보적인 가치를 지양하면서도 합리성 보다는 가슴 뜨거움을 먼저 떠올려야 한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었다.


소설에서 보여주는 인간의 양면성이 소설을 읽는 나에게서도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혼란스럽고 고민하기 때문에 인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알료샤는 너무 인간 같지가 않아서 이반에게 훨씬 더 매력을 느겼는지도 모르겠다. 키릴로비치 검사가 이야기하는 러시아인 심리의 극단적인 모순과 서로 다른 두 심연이 나에게도 존재하고 잇으며, 나 역시 "카라마조프가적"인 특성을 갖고 있는 이 시대의 "카라마조프 가네 형제들"의 일부인 것이다. 


3. 나가며


이 소설은 1600쪽 이상(민음사 기준)의 방대한 분량으로 책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며칠 밤을 새워서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종교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마지막 재판 과정에서의 논리 구성이라든지, 또는 인간의 죄의식이라든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수 많은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대한 대답을 조금씩이나마 주고 있는 <카라마조프 가네 형제들>을 2018년에 이르러서야 완독하게 된 것은 참으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서두에서 얘기했듯이 고전이란 쉽게 다가가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라마조프 가네 형제들>을 통해서 다시금 새로운 고전에 도전하겠다는 의욕이 충만하고 있는 것은 이 책을 읽은 또 하나의 소득이라면 소득일 것이다. 이 책을 함께 읽는데 도움을 준 독서 모임 구성원들에게 많은 고마움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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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꽃나무 (한정판) - 우리시대 소금꽃나무들을 응원하는 한정 특별판
김진숙 지음 / 후마니타스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어제 썰전을 보는데 유시민이 말하길
박근혜는 청와대에서 농성 중이라고 했다.

농성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2011년 노동운동가 김진숙씨의 크레인 고공농성이 떠올랐다. 추위와 공포 속에서 김진숙씨는 300일에 가까운 농성을 했다.

네이버 국어 사전을 쳐보니 '농성'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1. 적에게 둘러싸여 성문을 굳게 닫고 성을 지킴
2.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한자리를 떠나지 않고 시위함.

지금 한 사람은 적에게 둘러 싸여 청와대를 자신의 성으로 만들고, 경찰차벽이란 성문을 굳게 닫고 숨어 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해고 당한(당시 사측이나 언론에선 이를 희망 퇴직이라는 미사여구로 포장했다.) 약자들을 위해 대신 위험을 감수하며 모두가 보이는 곳에 자신을 드러냈다.
국민을 위해 스스로를 낮추고 희생해야 하는 사람은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고,
혼자 잘 살아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을 일개 자연인은 스로를 희생하며 삶의 불씨를 스스로 끄고 있었다.

다행히 김진숙씨는 300여일의 농성을 마치고 정말 믿기지 않겠지만, 해맑은 표정으로 내려왔다. 친구가 말하길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느냐고... 청와대에서 근라임씨가 해맑은 표정으로 돌아 다니면서 입으로는 자괴감을 표출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되는 해맑음의 품격.
우리는 정말 품격 없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책 홍보를 잠깐 하자면, 김진숙씨의 <소금꽃 나무>를 한 번 쯤 읽어보길 바랍니다. 감히 얘기하지만 대한민국에서 2000년 대에 나온 책 중에서 가치 있는 책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평가합니다.

감히 이 책에 대해서 가타부타 하는건 의미가 없습니다. 읽어야만 하는 책입니다.
본인의 페이스북에서 퍼왔습니다.
https://www.facebook.com/ganghyeon.oh?fref=nf&pnref=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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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테크 세상을 열다 - 30편의 카툰으로 만나는 핀테크 이야기
김동우.김진영 지음 / 한빛미디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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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이 저자가 기고하는 글을 읽을 때가 있는데, 기고 글보다 못한 책이 나온 것은 좀 당황스럽다. 가볍고 쉽게 읽으면서 핀테크가 이런 것인가? 라는 정도의 감을 잡긴 좋으나 깊이는 부족함.

그리고 역시 밑도 끝도 없는 규제 완화는, 필요한 규제를 가볍게 만드는 부작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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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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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소설의 소재가 518에 관한 것인만큼 작가의 부담이 엄청났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을 내면서 일부 골때리는 인터넷 키워들의 공격을 받았다고...

여튼 민감한 소재를 어떠한 방식을 풀어낼 것인가를 줄타기 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일 듯.


소설을 읽다 보면, 조금 러프하게 분류하면 서사가 강한 부류(사건과 대화의 역동적인 흐름 정도로 이해하자)와 치밀한 심리 묘사가 강한 부류가 있다. 예를 들면 조정래 선생님의 대하소설의 경우 책에서 손을 놓을 수 없는 강한 서사 줄기 속에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읽어 가고, 그 속에서 사람의 심리와 감정을 공유한다. 반면에 까뮈의 <이방인> 같은 것을 보면 주인공의 심리 속에서 독자는 방향을 찾아가야 한다. (사실 한국 소설 중에서 그런 의미로 훌륭한 소설을 그렇게 쉽게 찾지 못해서 까뮈를 예로...) 


한강의 경우 <채식주의자>도 그렇고 <소년이 온다> 역시 강력한 서사 보다는 감정선의 흐름을 시점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가 중요한 독법이라고 본다. 중간 중간 드러나는 518의 증언을 전달하는 작가의 말은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것이다. 


518이라는 사건 하나만으로 강력한 서사의 줄기를 형성할 수 있고, 거기에 매몰될 수 있지만 한강이란 작가는 서사에 매몰되기 보다는 인물 하나 하나에 집중함으로써 사건의 폭력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보다는, 사람의 심리를 통해서 간접적이지만 강력하게 드러낸다. 이제까지 518에 대해서 다루었던 영화 및 소설과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그 표현에 지나친 '오버리즘'이 드러나지 않았다. 말도 안되는 비극성을 강조하기 위한 신파로 흐르기 보다는 시점을 변경하면서 조용히 취재하는 것 같은 그런 기법들. <채식주의자>에서도 느꼈지만, 한강이란 작가의 오버하지 않으면서도 담백하게 전달하는 그런 전개가 인상적이다. (나의 기본적인 독서의 범주에서 벗어난 부류에 속한 작가임에도 인상적인 것은 사실이니) 


518에 관한 문학 및 영화에 대해 언급하다 보면 항상 비교하게 되는 두 영화가 있다.

이요원이 나왔던 <화려한 휴가>와 임창정과 엄지원이 나왔던 <스카우트>.


<화려한 휴가>는 정말 '화려하게' 작품을 망쳐버렸는데, 이는 518이라는 강력한 서사에 감독이 벗어나지 못하고 매몰되어 단순한 총질과 신파의 감정만 남겨놨기 때문이라는게 나의 생각이다. 노골적으로 사건을 끌어 올리면서 좀 더 복잡했을 것인 감정선을 죽여 버렸다. 그래서 인기 배우를 쓰고 돈을 많이 썼음에도 불구하고 어설프기 그지 없는, 그러면서도 518을 느끼지도 못하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


반면 <스카우트>는 518과는 무관한 서사의 축(광주의 야구 영웅 선동렬을 스카우트하기 위한 대학 야구부 스카우터들의 이야기)을 두면서, 그 서사의 축이 518에 어떻게 엮여가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518에 종속된 서사가 아니라, 독립된 하나의 영화로 존재하면서 엄지원과 임창정 사이의 감정을 진부한 사랑 속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의미에서 고민하게 만든다. 


화려함과 화면의 스펙타클함에 있어서 당연히 <화려한 휴가>가 총격전도 벌어지고 하기에 앞설지 모르지만, 서사라는 측면과 서사에서 반드시 생길 수밖에 없는 감정의 깊이가 <스카우트>가 압도적이었다.


여튼 소설을 리뷰하면서 영화의 리뷰를 함께한 것은 518이라는 소재도 소재거니와, 소설과 영화를 모두 서사의 한 장르라고 바라보면서 읽어 간다는 측면에서 <소년이 온다>가 소설로서 취하고 있는 서사의 기법을 곱씹으면서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번에 친구랑 얘기했던 내용인데, 미국의 소설은 서사가 매우 강해서 정말 흥미롭게 글을 읽을 수 있지만, 한국의 소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 소설의 경우 내면 심리 묘사가 뛰어난 편이라 매니악한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지만, 일반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 사실 <소년이 온다>도 내 기준으로는 약한 서사에 기반을 두고 있어서 조금 아쉬웠다. 물론 서사의 강도를 조절하는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판단이고 작가의 작품관이겠지만, 최근의 많은 한국 소설들이 서사 보다는 뭔가 '중2병'스러운(달리 표현할 말이 없어서, 이런 단어를 사용합니다. 실제 한국 소설가들의 소설 내 인물들에 대한 심리 묘사는 꽤 훌륭합니다.) 심리 묘사와 변화에 주목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아서 조금 아쉬움을 토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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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hika 2016-08-16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줄 나도 공감

Sapere Aude 2016-08-16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종일 북플 보고 있냐?ㅋㅋㅋ

ethika 2016-08-16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림이란 기능이 있음 바보야

ethika 2016-08-16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읽은책을 칭구가 글쓰면 알람이 옴

Sapere Aude 2016-08-16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읭 그런 것도 있나ㅋㅋ방학 언제까지?
 
창의성을 지휘하라 - 지속 가능한 창조와 혁신을 이끄는 힘
에드 캣멀.에이미 월러스 지음, 윤태경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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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을 지휘하라>는 꽤나 훌륭한 책이다. 길거리 지나가면 보이는 핸드폰 판매장 마냥 넘치고 넘쳐나는 성공 신화에 대한 뻔하디 뻔한 방법론적 경영 지침서의 수준과 비교도 안되는 수준의 성찰과 픽사라는 훌륭한 기업의 성공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에드 캣멀의 자서전이라고 봐도 무방하지만 사업 경영에 대한 독특한 관념, 어찌 보면 한국 사회와 어울리지 않는 그런 면들을 소개해주는 훌륭한 경영 도서다. 


한국인(아니 한국의 경영자 및 위정자들이라고 하자)은 항상 창의성이니 창조니 하지만, 항상 그렇게 되지 못함에 대해서 아쉬워 하고 창의성을 강요 받는 일반 시민들은 스스로 날카로운 비수로 자책하는 쳇바퀴를 굴린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지도 못한 채, 뜬금 없이 정부가 지원 정책을 마련해서 창조경제를 한다고 하고, 노벨상급 과학자를 매년 수십명씩 나오게 육성한다고 한다. 


이 책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창의성을 지휘하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창의성이라는 것은 절대로 한국 식으로 형성되지 안는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한 한국 사회에서 창의성이 발현되지 않는 가장 큰 문제는 단기 성과주의이다. 내가 속했던 조직이나, 신문을 통해서 보는 정부 및 기업들을 보면 어느 곳 하나 장기 성과와 장기 비전에 대해 고민하면서 현재의 부진을 용납하는 곳이 없다. 매번 장기 비전과 같은 속에도 없는 말을 하면서, 미친듯이 단기 성과를 쪼으는 상황이다. 단기 성과를 위한 수 많은 노력들이 장기 비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무 관심이 없고 당장의 돈만 벌 수 있다면 만사 ok인게 한국의 고질적인 병폐니깐. 


얼마전에 삼성전자 임원이 삼성전자 직원들 실력이 부족하다면서, 많이 바꾸어야 나간다고 자서의 목소리를 낸 것이 신문에 보도되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헛소리다. 사원들의 실력이 부족하고 그들의 창의성이 떨어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장기를 위해 준비하지 않으면서, 매번 1년 마다 신제품을 출시하고, 얼마의 돈을 벌며, 이윤을 따지는 마당에 어떻게 그런 창의성이 나오겠는가? 당장에 회사에서 재미있는 기획을 해도 가장 먼저 돌아오는 첫 질문은 항상 똑 같다. 


"그래서 돈은 어떻게 벌건데?" 


소비자 입장에서 혁신적인고 비효율을 줄인 기획이라도 당장에 돈이 안되는 일은 도무지 추진할 수가 없다. 삼성 역시 마찬가지다. 그 기사에서는 소프트웨어 실력이 떨어짐을 얘기하는데, 솔직히 삼성은 하드웨어 중심으로 모든 업무 공정이 돌아가는데, 어떻게 삼성이 안드로이드나 윈도우 같은 창의적인 것들을 만들 수 있겠는가? 당장에 돈이 되는 하드웨어 판매를 위해서 매년 플래그십 스마트폰 하나, 탭 혹은 노트 하나씩 내면서 거기에 맞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라고 직원들을 맷돌 돌리듯 갈아 넣으면서 혁신적인 소프트웨어 만들어라니. 


이를 구조적으로 막는 몇 가지를 알려주자면, 임원들 계약은 1년 단위이다. 1년 안에 성과를 못 내면 당장 모가지가 댕강. 그러니 창의적인 것보다 당장 돈 버는게 급한 것 아닌가. 요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넥슨을 보라. 괜히 돈슨이라 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 넥슨 그 외에 한국의 많은 게임 회사들은 꽤나 괜찮은 역량을 갖추었다. 정말 게임 개발회사로서 '게임'에 집중하며 이용자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창의적인 작품들을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그들이 게임을 개발하나? 성과에 매몰되어 어떻게 하면 돈을 벌지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니, 정말 보면서도 놀라울 정도의 과금 구조만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가? 과금 구조로만 본다면 세계에서 제일 창의적인 곳이 한국의 게임 회사들이다. 


난 단언한다. 성과라는 것이 한국을 망친다고. 

비전이나 사회적 올바름에 대한 추구, 가치에 대한 열정이 있으면 언제든지 혁신은 다가올 것이고 이런 혁신이 사회적 부를 크게 증가시킬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한국은 사회적 부를 크게 증가시키고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에 관심이 없다. 작은 부를 증가시키기 위해서 악순환만 되풀이 하고 있다. 


성과주의가 창의성을 해친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작가 자체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믿는 편이다. 아무리 서정주의 시가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서정주라는 친일파이자 군부 독재에 아첨하면서 개인의 영광을 누렸던 사람의 시는 도무지 아름답게 읽히지 않는 것이니깐.


에드 캣멀이 정말 멋진 픽사를 지휘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내 정치적 올바름의 기준에서 애니메이터들의 임금을 동결하는데 카르텔을 형성한 것은 역시 비판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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