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학과 심리학은 하나였다 |

행동경제학에 있어서 심리학, 특히 인지심리학의 영향력은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하지만 현실의 인간행동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경제적 인간만을 취급하는 주류경제학은 심리학적 분석과는 인연이 멀다. 이런 경향은 주류경제학이 확립된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경제학은 원래 심리학과 연관성이 깊었다. 경제학이 확립된 18세기 무렵, 심리학은 아직 과학으로서 독립적인 입지를 마련하지 못해 당시의 경제학자는 심리학을 겸업했다고 할 수 있다.

아담 스미스(Adam Smith)는 『국부론』(1776)에서 리스크나 불확실성이 인간의 경제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누구나 이익을 얻을 기회는 약간이라도 과대평가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실을 볼 기회는 조금이라도 과소평가한다.’는 합리성에 반하는 심리적 요인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스미스의 최초 저작물은 『도덕감정론』(1759)이며, 이 책에서는 자제심이나 공감, 이타심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렇지만 스미스는 ‘이기심’의 추구야말로 인간의 모습이며, 이기심의 추구가 실제로 희망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한 것처럼 후세 사람들은 그렇게 알고 있다.

스미스가 서술한 다음과 같은 글을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우리들이 식사를 기대하는 것은 정육점이나 술집, 빵집 주인들의 자비심이 아니고, 그들 자신의 이해(利害)에 대한 관심이다. 우리들이 원하는 것은 그들의 인류애가 아니라 이기심이며, 우리들이 그들에게 말하는 것은 결코 우리의 필요가 아닌 그들의 이익에 대해서이다.’ 이는 분업과 시장의 활동에 대한 언급으로서 이기심을 가져야 한다거나, 이기심만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다른 요소보다 이기심이 강조되어 있는 것이다.

그 원인이 물론 스미스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주류경제학이 수립되어온 역사 속에서 경제학과 심리학이 각기 다른 길을 걸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동기(動機)와 시장에 대한 스미스의 복잡한 견해가 잘못 해석되고, 감성과 행동에 관한 윤리적 분석이 간과된 것은 현대 경제학의 발전과 함께 발생한 윤리학과 경제학의 괴리라고 말할 수 있다’는 센(Amartya Sen)의 견해는 ‘윤리학’을 ‘심리학’으로 바꿔놓아도 그대로 꼭 들어맞는다.

스미스 이후의 경제학자들 중에서도 인간 심리의 중요성에 대해 통찰한 경제학자는 적지 않다. 알프레드 마샬(Alfred Marshall)은 『경제학원리』 첫머리에서 ‘경제학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에 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개인적·사회적 행동에서 물질의 획득과 그 사용에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 측면을 다루는 것’이라고 서술하였고, 경제학은 일종의 심리과학이자 인간과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경제학은 어떤 면에서는 부(富)에 관한 연구지만 다른 중요한 측면으로 보면 인간 연구의 일부이다.

인간 심리를 경제학에 도입한 점에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는 걸출한 인물이다. 그는 인간의 비합리성이 경제행동이나 경제의 운용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저서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1937)은 인간행동에 관한 혜안으로 가득 차 있다. 예를 들면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일부 검토한 인지 바이어스(bias, 편향), 답례성, 공정, 군중행동, 사회적 지위나 감정, 야심 등의 심리학적·사회학적 사실의 역할이 반복하여 등장할 뿐만 아니라 강조되고 있다. 사이먼은 케인즈의 『일반이론』은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기업가가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을 갖고 있다는 기술(記述)만큼은 매우 감탄했다고 한다.

또한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on Hayek), 베블런(Thorstein Bunde Veblen), 어빙 피셔(Irving Fisher) 등과 같은 경제학자들의 저서에는 수많은 심리학으로부터의 통찰을 엿볼 수 있다. 베블런은 제도파(制度派) 경제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 제도란 ‘개인과 사회의 특정 관계나 특정 기능에 관한 지배적인 사고습관’이다. 하이에크의 저서 『감각질서』(1951)는 거의 심리학 영역에 들어가도 좋을 만한 작품이다.

그 후 경제심리학자라고 자칭한 사람이 바로 미국의 조지 카토너(G. Katona)이다. 그의 주요 저서는 『경제행동의 심리학적 분석』(1951)인데, 이 책에서 그는 ‘우리들이 알고 싶은 것은 인간행동`―`소비자나 경영자의 동기·태도·희망·걱정 등`―`이 경기상승, 인플레이션, 경기후퇴 등의 출현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이다. 이런 상태로부터 경제불안을 완화시키거나 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며 경제적 요인과 심리적 요인의 상호관계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카토너의 연구는 그다지 영향력을 갖지 못했고, 사회학자 닐 스멜서(Neil Smelser)에 의해 ‘카토너는 전체적으로 소비행동의 일반이론에 대해 제대로 논하고 있지 못하다.’는 혹평을 받기에 이르렀다.

< 출처 : 행동경제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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