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경제학 1장 - 경제학과 심리학의 만남 - | 경제적 인간 가설에 대한 옹호론 |
| 경제적 인간 가설에 대한 옹호론 |
앞에서 살펴본 경제적 인간에 대한 전제는 일상 경험에서 또는 수많은 실증연구에서 거의 모두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렇지만 주류경제학에서는 합리성과 이기심의 가정(假定)을 기초로 유효한 이론을 구축할 수 있다는 옹호론이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 다음 4가지 옹호론을 살펴보자.
첫 번째는 경제학자 밀톤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 주장한 ‘마치 ∼인 것처럼(as if)’ 행동한다는 이론이다.
합리성 가정은 주체가 합리적일 필요는 없고 ‘마치 ∼인 것처럼(as if)’ 합리적으로 계산하여 선택한 것처럼 간주하면 되므로 주체가 합리적이라는 가정 아래 이론 모델을 수립한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은 없다는 주장이다. 이론 모델의 타당성 여부는 그 예측 가능성, 즉 그 이론 모델을 통해 경제나 경제행동에 관한 적절한 예측을 할 수 있으면 되기 때문에 전제 그 자체의 실현 타당성을 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프리드먼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고 있다. 즉 나뭇잎이 ‘마치 각각의 잎이 광합성을 위한 빛의 양을 최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위치에 자리잡는’ 것처럼 나뭇가지에 붙어 있고, 숙련된 당구 선수 자신이 ‘마치 공이 구르는 코스의 가장 적합한 방향을 결정하는 복잡한 수학적 공식을 알고 있으며, 공의 위치를 가리키는 각도 등을 눈으로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고, 공식을 이용해서 재빠르게 계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식에 의한 방향으로 공을 굴러가게 할 수 있는 것처럼 공을 친다.’는 것이다.
나뭇잎이 실제로 받아들이는 빛의 양을 최대화하는 계산법이 있을 리 없고, 아무리 숙련된 당구 선수라 하더라도 실제로 공이 구르는 상태에 관한 수학적 계산을 하지는 않는다. 이치로나 마쓰이 같은 야구 선수가 미적분을 풀어가면서 베팅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as if)’ 그러한 최적의 계산을 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간주해도 문제 될 것은 없다. 당구공이 포켓에 들어간다는 예측, 이치로나 마쓰이가 공을 칠 것이라는 예측은 잘 맞기 때문에(7할은 빗나가지만) 합리성의 전제에 문제는 없다. 요컨대 예측 결과가 좋으면 가정의 현실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그러면 경제적 인간을 가정한 주류경제학의 예측은 정확할까? 이것은 실증적 문제이지만 그 반대 사례는 간단하게 발견할 수 있다. 도시 근교에서는 야채나 과일을 무인 판매소에 진열해두고 판매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시스템이 유지되는 것은 감시자가 없어도 사람들이 나쁜 마음을 먹지 않을 것이라는 판매자의 예측이 있고, 실제로 그런 사례에 의한 확증이 있기 때문이다.
제`8장에서 자세히 검토하겠지만, 주류경제학에서는 무료 봉사자나 헌혈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무인 야채 판매소 역시 성립할 수 없다고 본다. 즉 주류경제학은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측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인 가정을 하고 있는 주류 경제학의 ‘as if`’ 이론은 현실에서는 실제로 적용될 수 없을 것이다.
두 번째 옹호론은 시장에서의 도태론이다.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주체는 시장에서 배제되기 때문에 경제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주체뿐이며, 경제나 시장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합리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이 시장에서의 도태론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렇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예를 들면 러셀(Russell, T.)과 세일러(R. Thaler)는 효용의 최대화에서는 벗어나지만 전혀 규칙적(random)이지 않은 행동을 준합리적 행동이라 부르고, 합리적 주체와 준합리적 주체가 공존하는 경제에서는 모든 주체가 합리적일 때 존재하는 균형과는 다른 균형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러한 시장에서는 완전 합리적인 경우와 같은 균형이 성립하는 조건을 추구하고 있지만 매우 한정적으로만 나타난다. ‘개인의 비합리성은 시장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카머러 C. F. Camerer)고 충실히 믿는 것은 경제학에서 구전되는 주요한 내용일 뿐이다.
세 번째 이론은 경제적 인간에 대한 가정이 너무 심하지만 적당한 다른 이론이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잠정적으로 합리성 이론에 따라 경제적 인간 가설을 옹호한다는 잠정론이다. 이 주장은 옹호론 중에서 가장 일리가 있다.
초기의 행동경제학은 주류경제학에 대한 비판으로서는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었지만, 주류경제학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현재의 행동경제학도 아직 주류경제학 이론을 전면적으로 대체할 만큼 이론체계를 잘 갖추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많은 경제학자가 행동경제학의 연구에 충분한 자원을 투입한다면 표준적 경제이론을 대체할 이론체계가 성립될 것이며, 머지않아 그 날이 올 것이라 예상된다.
네 번째 경제이론은 규범(規範)이론이고 기술(記述)이론이 아니라는 옹호론이다. 즉 경제이론이 대상으로 하는 것은 사람들의 실제 행동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나타내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이론을 규범이론이라 한다. 이 이론의 핵심은 사람이 경제적 인간일 경우, 인지나 판단을 내릴 때 합리적이고 순수하게 사익을 추구하는 것이 ‘행동해야 할 일’의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트버스키와 카너먼은 규범적 접근은 실패로 끝났다고 주장한다. 왜냐 하면 우월성(두 개의 선택대안이 있고 한 대안이 다른 대안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할 때 우월한 대안을 선택한다)이나 불변성에 반하는 것, 즉 규범적인 것과 동떨어진 선택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떠한지’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장하는 것은 유효한 이론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표준적 이론을 옹호하는 견해는 붕괴됐다고 말해도 좋다.
< 출처 : 행동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