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경제학 1장 - 경제학과 심리학의 만남 - | 경제적 인간의 조건 |

| 경제적 인간의 조건 |
경제적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우선 ‘합리적’이란 말부터 따져보자. 도대체 이 말은 무슨 뜻일까? 일상적인 또는 사전적인 사용법으로 합리적이란 말은 이성적, 논리적, 손익계산의 교묘함 등을 뜻하지만, 경제학에서는 합리성이라는 말에 상당히 한정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우선 자신의 기호(취향)가 명확하며, 거기에는 모순이 없고 항상 불변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호를 토대로 자신의 효용(만족)이 가장 커질 수 있는 선택대안(예를 들면 상품)을 선택하는 것이다.
언뜻 보면 타당하고 납득이 가는 가정이라고 생각되지만 실은 상당히 엄격한 조건이다.
쇼핑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합리적이기 위해서는 모든 상품에 관한 지식을 갖고 있고, 진열된 상품이 어떻게 편성돼 있는지를 고려해야 하고, 그 상품을 소비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효용을 재빨리 계산하고, 효용을 최대화할 수 있는 상품 편성까지 알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의사결정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입수하는 일은 비용으로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설령 모든 정보를 입수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분석하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
예를 들면 백화점에는 20만 점 정도의 상품이 진열된다고 한다. 모든 상품의 리스트를 손에 넣는 일은 혹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상품 각각에 대해 소비를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효용을 계산하는 일은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시오자와 요시노리(鹽澤由典, 경제학자)에 의하면, 초고성능 슈퍼컴퓨터를 사용하더라도 가장 적합한 해답을 찾는 데 상품 수가 10가지일 때에는 0.001초로 끝나지만 30가지일 때에는 17.9분 걸린다고 한다. 상품 수가 40가지이면 12.7일로 늘어나고, 50가지일 경우에는 놀랍게도 35.7년을 들이지 않으면 계산이 끝나지 않는다. 슈퍼컴퓨터로도 이 정도니 일반인들이 계산을 한다면 얼마나 걸릴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뿐인가. 경제적 인간은 언제라도 커피와 홍차 가운데 어느 쪽이 좋다고 명확히 말할 수 있고, 취향은 시간이나 상황에 따라 변해서도 안 된다. 커피와 홍차에 대한 취향이 아침과 밤에 다르다든지, 어제는 커피만 10잔 마셨으니 오늘은 홍차를 마시겠다는 식은 배제된다.
더욱이 의지가 강해서 금연이나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몸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젊었을 때부터 담배는 피우지 않고, 다이어트를 하게 만드는 지방분이나 당분 같은 것은 과잉섭취를 하지 않는다. 경제적 인간은 애초부터 금연, 금주, 다이어트라는 단어와는 인연이 없다.
경제적 인간은 지각, 주의, 기억, 지론, 계산, 판단 등 뇌나 마음이 실행하는 인지작업에 관해서는 무한한 능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일단 결심한 것을 반드시 실행하는 초월적 자제력을 갖춘 의지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슈퍼맨이지 않는가.
경제적 인간에 대해 소스틴 베블런(Thorstein Veblen)은 ‘쾌락과 고통의 번개 계산기’라고 말했다. 허버트 사이먼(Herbert Alexander Simon)은 ‘전지전능한 신과도 같은 존재’라고 정의하면서 ‘전지전능한 모델은 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모델이라면 모를까……. 인간의 마음을 나타내는 모델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탄식했다.
경제적 인간에게는 합리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다른 중요한 개념이 하나 더 첨가된다. 타인에 대해서는 일절 돌보지 않고 자신의 물질적 이익만을 최대화하려는 이기적 인간이라는 점이다. 오로지 사익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만일 이타적 행동을 한다고 해도, 그 행동은 어떤 보답을 기대하는 것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경제적 인간에게는 윤리나 도덕이라는 개념은 갖춰져 있지 않은 것이다.
이 두 가지 특징만 보더라도 경제적 인간은 사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어떤 작은 기회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성격이 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익을 얻을 기회가 있으면 범죄가 아닌 한 그것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경제적 인간이다. 경제적 인간은 법을 지키지만(물론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법의 틀을 벗어나는 윤리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
만일 여러분이 경제적 인간이라면 문제`1∼5의 정답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정답을 얻는 과정은 설명할 수 없더라도, 직감으로라도 괜찮으니 정답을 찾기 위해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정답은 제`2장에서 살펴본다.
< 출처 : 행동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