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박물관 1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27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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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진정한 위안을 주는 듯한 첫 대면의 순간인 일이 초가 지나면, 내 이성의 한편에서 이 환영은 퓌순이 아니라 불행한 내 영혼의 허상일 뿐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하지만 그녀를 눈앞에서 보게 되면 내 마음속에 너무나 달콤한 감정이 솟구쳤기 때문에, 그녀의 환영과 마주칠 만한 붐비는 장소를 습관적으로 찾게 되었다. 내 머릿속에 있는 이스탄불 지도에도 그런 장소들을 표시해 좋은 것 같았다. 퓌순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그림자들이 더 많이 보이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이 도시는 이제 그녀를 떠올리게 하는 신호들의 세계가 되고 말았다. 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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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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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여행기는 작가가 겪는 이런저런 실패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오는 그런 여행기가 있다면 아마 나는 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을 것이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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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즉,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에만 직면해도 인생의 가르침을 배울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고, 죽을 때 내가 인생을 헛산 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삶이 아닌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이란 매우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체념하고 싶지도 않았다.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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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생활 연구는 어찌 보면 매우 단순한 작업이다. 기본 발상은 관찰자들이 직접 돌아다니면서 잘 보는 것, 핵심은 ‘관찰‘이다. 수단은 간소하고 저렴한 것으로 충분하다. 성실한 관찰은 체계로부터 공공생활과 공공공간의 상호작용에 대해 흥미로운 정보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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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의 리듬은 생각의 리듬을 낳는다. 풍경 속을 지나가는 일은 생각 속을 지나가는 일의 메아리임 자극제이다. 마음의 보행과 두 발의 보행이 묘하게 어우러진다고 할까, 마음은 풍경이고, 보행은 마음의 풍경을 지나는 방법이라고 할까. 마음에 떠오른 생각은 마음이 지나는 풍경의 한 부분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는 일은 뭔가를 만들어내는 일이라기보다는 어딘가를 지나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보행의 역사가 생각의 역사를 구체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마음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두 발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은 가능하잖은가 말이다. 걷는 일은 곧 보는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보명서 동시에 본 것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고, 새로운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 속으로 흡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느긋한 관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색하는 사람에게 걷는 일이 특별히 유용한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여행의 경이와 해방과 정화를 얻자면, 서계를 한 바뀌 돌아도 좋겠지만 한 블록을 걸어갔다 와도 좋다. 걷는다면 먼 여행도 좋고 가까운 여행도 좋다. 아니, 여향이 아니라 몸의 움직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제자리를 걷는 것도 가능하고, 좌석베트에 묶인 채 전 세계를 도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보행의 욕구를 만족시키자면 자동차나 배, 비행기의 움직임으로는 부족하다. 몸 자체의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마음속에서 일이 일어나려면 몸의 움직임과 눈의 볼거리가 필요하다. 걷는 일이 모호한 일이면서 동시에 무한히 풍부한 일인 것은 그 때문이다. 보행은 수단인 동시에 목적이며, 여행인 동시에 목적지다.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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