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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특허 표류기
이가라시 쿄우헤이 지음, 김해용 옮김 / 여운(주)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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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과연 유전자는 ‘누구’의 것인가를 서문으로 이 책은 우리에게 물음을 던진다.

 

이 책을 보기 전까지 유전자에 대해 TV의 교양프로그램이나 여러 과학 잡지를 통해 접해본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솔직히 별로 관심을 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하나의 가쉽거리로 치부해버렸다.

 

우리는 몸이 아프거나 종합검진을 받기 위해서 가끔 병원에 간다. 그리고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며칠 후 A4용지 한 장으로 이 사람은 ‘건강’이라는 확인을 받게 된다.

 

그런데 그 확인을 위해 유전자에 대한 해독을 해야만 하며 그 해독을 하는 방법이 택배 분류처럼 단순한 것이 아닌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유전자란 생명의 모든 기능을 담당하는 인체 설계도 및 DNA를 구축하는 데이터베이스로 해석된다. 즉 인간 GPS로 인간의 고유한 특징을 설명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특허의 조건은 산업성, 신규성, 진보성 등을 갖추어야만이 고유한 특허로 인정될 수 있을 진데 인간의 몸 안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유전자의 해독이 어쩌다 특허로 인정받게 되었을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얻기 전에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인간의 육체를 이루고 있는 유전자에 대한 특허를 가지고 있으면 나의 육신은 과연 내 것이 아니야? 라는 조금 철학적인 물음의 입구까지 가야할 판이다.

 

인간 유전자의 최초 특허신청은 단연히 미국에서 이루어졌단다. 1998년 10월 6일, 그후 특허 적합성에 대한 여러 논란이 불거졌으나 일본도 2000년 10월에 이르러 유전자를 특허의 대상이라고 명시하게 되었다. 즉, 유전자의 기능이 해명되거나 용법이 명시되기만 하면 특허로 인정해주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유전자 해석에 관한 특허가 인정된 사례가 있는지는 과학에 무지한 나로서는 알길이 없지만 한국에서도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이 책에서는 유전자의 의미, 유전자 해석을 이용한 질병예방을 위한 연구, 유전자의 특허를 쟁탈하기 위한 글로벌 기업간의 소송 등을 언급하고 있었지만 ‘유전자’에 대한 특허 표류를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지 못했다.

 

그것은 우리가 이 문제를 단순한 경제적이나 정치적인 문제가 아닌 인류 공동체의 존속을 위한 본질적인 과제이므로 현재의 우리와 미래의 우리가 함께 심사숙고 할 문제여서 그런 것일까?

 

“기구한 운명에 처해있는 유전자” 물론 인체의 유전자를 특허의 대상으로 볼 수 있느냐 하는 점은 지금에 와서는 논란이 개입될 여지가 모두 막혀있는 듯하다. 그러나 단지 하나의 수익창출의 원천으로만 이용된다면 우리 인류를 파괴해 버릴 수 있는, 백신이 존재하지 않는 ‘바이러스’가 될지도 모른다고, 감히 생각하고 싶지도 않는 그런 불안함이 밀려드는 이유는 뭘까?

 

갑자기 몸이 으스스하다. 내 유전자가 내 몸에서 잘 돌아다니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유전자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얕은 지식을 알게 해준 “인체특허 표류기”

유전자에 무지한 독자라면 꼭 읽어 봐야 고등학교 다닐 때 ‘과학’은 배웠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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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 류시화의 하이쿠 읽기
류시화 지음 / 연금술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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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의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먼저 책의 두께가 장난이 아니다. 시라는 것은 한줄 한줄 커피의 향기처럼 코로 들이마시고 뇌로 전달했다가 다시 우리의 온몸으로 느껴야만 하는 아름다운 대상이기에 언제 다 읽나 라는 고민이 먼저 나를 사로잡게 되었다.

 

류시화? 상처, 고독, 방황 등 우리가 별로 느끼고 싶지 않은 단어들의 꾸러미를 항상 주머니에 가지고 다니는 시인! “유명하다.” 아니 “유명하지?” 이게 더 좋겠다.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죠?. 류시화가 “하이쿠”를 번역하여 해석한 책이라기에 꼭 보고 싶었다.

 

“하이쿠”는 일본 전통의 짧고 간결한 시로 “반쯤 열린 문”으로 표현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사물을 바라볼 때 활짝 열린 문으로 보는 것 보다 반쯤 열린 문으로 볼 때 더 신비롭고 함축적이며 강렬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사람에게서도 물론 그렇지만!

 

시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인간과 사물과의 관계를 확인하고 느끼면서 언어로 영원한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는 살아 숨 쉬는 예술행위로 표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이쿠의 언어는 의미보다는 소리, 움직임, 시간, 풍경 등에서 영원속의 순간을 포착하고 그 순간 속에서 영원을 발견하는 짧고 간결하고 함축적인 문학이다.

 

예전에 셰익스피어가 쓴 “소네트 집”을 읽은 적이 있다. “소네트 집”은 고정된 틀과 형식을 벗어나지 않고 자연에 빗대어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고 시간을 초월한 아름다움을 여인에게 부여하는 멋진 사랑의 세레나데들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충격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네트 집”처럼 아름답고 운율적인 시를 본적이 없었기에 말이다. 하이쿠의 시들은 나에게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보면 시인은 자연을 다른 관점에서 독특하게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고 언급한다.

 

우리가 감히 인간이 창조한 언어로 자연을 표현한다는 사실이 무례가 될지도 모르나, 우리는 인간이기에,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도록 누군가가 다리를 놓아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바로 시인이 존재하고 시인은 항상 자연과 언어로 싸워야만 하는 고독한 존재이지 않을까?

 

“백만 광년의 고독~~”이란 책 제목만 보더라도 우리가 감히 가늠할 수 없는 하이쿠 시인들의 극한의 고독이 떠오르지 않는가?

 

 하급무사의 아들로 태어나 인간세상에 회의를 느껴 방랑 시인의 길을 걷는 “마쓰오 바쇼”, 스무살 무렵에 시를 배운 뒤 바쇼의 발자취를 짚어 동북 지방을 여행한 “이가 요사 부손”, 누구보다 불우한 삶을 살았지만 하이쿠에서 만큼은 유머와 인간미를 잃지 않았던 “고바야시 잇사”, 스무살에 폐결핵에 걸려 서른다섯에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잊혀져 가는 하이쿠의 세계를 세상에 알리는 일에 혼과 열정을 바쳤던 “마사오카 시키”

 

방랑과 고독과 삶의 극한의 고통을 느끼며 자연과 일치가 되었던 시인들, 그들은 왜 이렇게 방황하고 유랑해야만 했을까? 비록 자신은 유한한 존재이지만 끝내는 한 줌의 흙이 되어 자연의 영속성으로 스며들기를 원하지 않았을까?

 

바쇼는 인간과 대비되는 자연의 성스러움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나비 한 마리 절의 종에 내려앉아 잠들어 있다”

 

언젠가는 종이 울릴 수밖에 없는 위태위태한 곳에 앉아 있는 나비!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분별심을 버리고 걱정과 번민과 의혹으로부터 자유로운 절대 믿음과 두려움 없는 생을 누리고 있다. 과연 우리도 이렇게 모든 걱정과 고민으로부터 모든 것을 초월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나는 이 시를 읽고 자연의 경이로움에 대해 경탄을 금치 못했다. 그런 안목을 평소에 가질 수 없는 초라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시의 힘은 “세상과 사물에 대해 새로운 것이 아닌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는데 있다.” 라고 하지 않는가?

 

항상 강자를 선호하는 사회!, 하지만 고바야시 잇사는 개구리처럼 약하고 천대받는 존재를 향한 동정심과 연대감을 개구리에 비유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하기도 했다.

 

“여윈 개구리 지지 마라 잇사가 여기에 있다”

 

 

자연은 영원하다. 우리의 삶과 죽음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영원함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사에서의 이별, 헤어짐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자연은 항상 우리 곁에 머물지 않는가?

 

“떠나는 내게 머무는 그대에게 가을이 두 개” 인 것처럼 말이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의미를 느끼지 못하면 죽을 때까지 세상은 거의 아무것도 아닌 일의 연속으로 지나가게 된다. “이름 몰라도 모든 풀마다 꽃들 애틋하여라.(산푸)

      

 

우리는 앞모습을 진짜라고 생각하지만 뒷모습이 실상을 더 잘 보여 줄 때가 있다. 뒷모습은 앞모습이 숨기고 있는 허무와 좌절까지 보여주기도 하지! “나팔꽃의 뒷면을 보여주네 바람의 가을(교리쿠)”

 

 

인간은 자연과 달리 이기적인 존재다. 우리가 스스로 부정하더라도 자연의 스스러움을 평생을 두고 습득한다고 해도. 그래서 인간의 행위에 의해 자연의 존재를 노예화하고 이에 인간의 불행은 시작되고 그 순수한 기쁨은 사라지지 않을까?

 

“오늘이라는 바로 이날 이 꽃의 따스함이여”

 

이 가을 오늘이라는 바로 이날의 따스함을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로 느껴보기 바란다. 가을바람이 더 새롭게 우리의 귀와 몸을 따스하게 스치게 될 것이다.

 

하이쿠를 아름답게 해석해 주신 류시화 시인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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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게 하는 힘
앤디 앤드루스 지음, 김미진 옮김 / 36.5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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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는 항상 무언가의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앤디 앤드루스의 “다시 시작하게 하는 힘”에 끌려 이 책을 “선택”했기에 나는 그 “힘”을 얻게 되었을까?

 솔직히 이 책에 대해서 실망감을 금치 않을 수 없다. 앤디 앤드루스, 미국 대통령의 멘토, 예전에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를 읽은 적이 있었다. 답답함이 가슴속에서 뭉클거린 기억이 아득하게 내 뇌리를 스친다.

존스라는 정체불명의 노인이 등장한다. 여러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하게 되고 그들이 직면하게 되는 어려운 상황들에 대해 존스는 신비로운 미소와 담담한 어투, 모든 것을 초월하여 신의 경지에 이른 아우라를 두른 채 관점을 바꾸면 보이지 않는 것도 보이게 된다고 설파한다.

짜증이 막 밀려왔다. ~ 뭐 이런 책이 다 있어? 집어 던지고 싶었다. 평점이 9점이라니~

 

그래 이것도 나의 선택이지. 관점을 바꾸면 보이지 않는 것도 보인다고 했으니 내가 짜증이 왜 나는지에 대해 관점을 바꾸자!

 존스의 설파 중에 이런 말이 있다.

“평범한 삶을 살고 싶지 않다면 일반적인 생각에서 나오는 결론에 대해 의심해 보고 그에 맞설 수 있어야만 한다.”

우리는 평범한 삶을 원한다. 평범하게 사는게 더 힘들다고 하지 않던가? 근데 평범한 삶을 살고 싶지 않다! 과연 존스의 “평범”이라고 하는 의미가 내가 이때까지 느끼며 내 몸에 관습화되었던 그 “평범”과 무슨 차이가 있지?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을 보면서 딱 한 구절 가슴에 와닿는 말이 있었다. “인간의 가치는 인생의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가치에 의해 평가된다. 더 가치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한다.”

가치는 평가에 의해 생명력을 발휘한다.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이야”, “인성이 바르고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이야!”,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지나치는 수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에 의해 우리는 가치를 평가받게 되고 그 가치의 질을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 그만큼 높은 가치를 가지려면 자신을 열심히 갈고 닦아야 하지 않을까?

여러가지 우리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명언들이 책을 뒤덮고 있지만 꼭 보고싶으신 분은 책을 구입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다시 시작하게 하는 힘” 솔직히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서점에 폐지더미처럼 수북히 쌓여있는 자기개발도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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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세계를 스칠 때 - 정바비 산문집
정바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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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 그룹 줄리아 하트 멤버, 본명 정대욱

이 책을 접하기 전에 뮤지션 “정바비”가 아닌 “정대욱”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었다. 1979년생, 1996년 언니네 이발관 1집 [비둘기는 하늘의 쥐]을 발매했고 그가 책을 내기 전 인터뷰를 살펴보니 “오렌지 성애자 정바비”, 아! 그래서 이 책의 표지가 오렌지 색이였던가?

 

그의 글은 읽으면 눈에 들어오다가 삑사리처럼 튕겨나간다고 해야하나! 그가 전달하려고 하는 의미를 둘러싼 글의 기교들이 처음에는 사실 거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계속해서 읽다보니 눈의 망막을 계속해서 자극하여 눈을 둔감하게 하였던가? 글을 잘 쓴다. 재밌게 쓴다.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소위 말하는 sky 일류대 출신의 인문학 학사!

 

뮤지션으로서 백김치에 감성적인 양념을 버무린 설익은 김장 깍두기라고 해야 할까? 한 입 물면 딱딱하지만 씹다보면 그냥 넘어가는 그런 느낌!

 

뮤지션이라는 것만 빼고 보면 나와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어떤 하나의 이상을 가슴에 품고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계획적이고 모범적인 바른생활사나이와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 감성적인 아웃사이더? 학창시절의 가정통신문에는 “주의산만”이 항상 따라다녔지만 본인은 “유머만발”이라고 우기고 다니는 장난꾸러기

 

정바비는 그의 솔직하고 포장되지 않은 연애담과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뮤지션으로서의 삶과 생각들로 책을 담가 놓았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일이지만 커피전문점에서 마시는 아메리카노의 맛이 항상 다르듯이 구수하고 꾸밈 없는 그의 글이 좋았다.

 

이바라기 노리코라는 일본 시인이 쓴 “나의 카메라”라는 시를 좋아하고 “네 이름의 한자를 사전에서 찾아본다. 마음의 책갈피를 가만히 끼운다.”라는 어린 여자이들의 감성을 좋아하는 것을 보면, 역시 뮤지션들은 감수성이 풍부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정바비의 내면? 아니 책에 고이 기술한 자기가 원하는 삶이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나는 앞으로 죄책감을 느끼는 일 없이 한 사람의 쾌락주의자로서 인생을 흠뻑 즐기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맛있게 먹을 것이며 바다를 보고 싶을 땐 바다로 갈 것이며 좋아하는 책을 읽다가 정거장을 지나칠 것입니다. 키스를 아주 많이 할 것이며 좋아하는 노래를 큰 소리로 따라 부를 것이며 당신을 사지로 몰아넣은 사람들과 그 살풍경한 정신세계들에 대한 신랄한 농담을 아주아주 많이 만들 것입니다.”

 

누군가의 죽음앞에서 이런 생각을 번뜩하면서 떠올리진 않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부터 그가 지향해왔던 삶에 대한 가치관이었겠지?

 

바비는 여자가 예쁘게 사는데 남자란 존재는 도움보다는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 것을 보니 사랑에 대해 많이 아는 듯하다. 아니 많이 겪었다고 해야 하나! 내가 봐도 여자의 삶에 남자란 존재는 도움이 안되는 게 맞다. 아니 반반이라고 하자. 그래 그게 낳겠다.

 

시크하면서도 닥잘지근하고 애틋하고 세련된 포말을 뒤집어 쓸 수 있는 “너의 세계를 스칠 때”, 삶이 지칠 때 읽어도 좋다. 삶이 행복할 때 읽어도 좋다.


최근 일본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독자라면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 일본행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일본 사이트에서 “스낙쿠”를 마구 검색하고 있을지 모른다.

 

정바비의 노래를 듣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인디밴드의 매력에 빠져들고 싶을 때가 내 인생에 바람처럼, “나의 세계를 스칠 때” 한번 감상해보련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다나베 세이코를 아주 좋아하나보다.

 

그가 언급한 작품들, “상실의 시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색체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이하, 하루키),와 “여자는 허벅지”(이하, 다나베 세이코)

 

그가 좋아하는 구절이란다.

 

p-256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 중 하나가 첫장을 펼치자마자 나온다. '무언가를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는 한 나이를 먹는 것은 그렇게 고통스러운 일은 아니다' 한편 "색체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마지막 장에는 이런 예기가 나온다.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에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강하게 믿을 수 있는 마음은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져버리지 않는다.’ ~~(중략)

 

스티비 원더가 "Yesterday-me yesterday-you yesterday -day'라고 노래했던가? 하루하루 ‘지난 나(Yesterday-me)’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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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약함의 힘 - 현경 마음 살림 에세이
현경 지음, 박방영 그림 / 샘터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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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연약함”이란 국어사전에 이르기를 “무르고 약하다”, 라는 의미다. “연약함”의 반대는 “억세고 질기다.”, 이 억세고 질김이 공동체에서 항상 우선적이며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져 왔다.

 

항상 최고가 되어야 하며 그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인생에서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노력”과 “강인함”을 가져야만 했다. 그 것이 사회적인 시스템으로 구조화되어 마치 우리가 목마를 때 물을 마셔야 하는 무의식의 당연함으로 귀결되어 현대 사회에서는 “바쁘게, 빨리, 누구보다 더 잘, 강인하게”라는 단어가 사회에서 성공을 보장해주고 참된 멋진 인생으로의 지름길로 여기게 되었다.

 

요즘 느림의 미학, 느리게 살기, 연약함과 부드러움에 대한 책들이 서점을 점령하고 있다고 한다. 그 만큼 우리가 “여유”라는 단어를 무의식의 금고 한켠에 잠궈 놓아버리고 바쁘게 인생을 달려오지 않았나 생각해 볼 시대가 도래했단 말인가?

 

현경 교수님의 “연약함의 힘", 과연 연약함의 힘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했을까? 우리에게 관습법처럼 당연시 되어왔던 강인함을 어떤 방법으로 다루어야 하는지, 과연 나는 강인한가? 아니면 연약함 속에 내재해 있던 그 힘을 제대로 다룰 줄 알고 있는가?, 아니면 강인함도 가지지 못했고 언제나 연약한 존재였던가? 이 물음에 대해 번뜩 섬광처럼 깨달음을 주리라는 기대로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교수님은 연약함의 힘이란 자기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힘, 참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힘,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공감할 수 있는 힘, 진실대로 살기 위해 모험할 수 있는 힘, 모험에 동반되는 불안과 두려움을 견뎌 낼 수 있는 힘, 자신이 원하는 것과 남이 원하는 것이 상충될 때 관계의 성장을 위해 균형 있게 양보하고 타협할 수 있는 힘이라고 책속에 고이 적어 놓으셨다.

 

이 말의 귀결은 자기 자신의 내면을 진정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는 힘, 이것이 연약함의 힘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다른 이를 진정으로 배려하며 사랑할 수 있듯이 나 자신을 내 몸속에서 꺼내 다룰 줄 아는 힘을 길러야만 모든 상황에서 불안함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비로소 여유롭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혜의 안(眼)을 가지지 않을 까?

 

세상에 대한 불안은 자기 자신에 대한 불안감에서 항상 비롯되는 것이다.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 없다. 항상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그 집단이 추구하고자 하는 공동체의 이념과 인관관계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되고 항상 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 집단에서의 소외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우리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우울증, 불안증세, 자신감 상실 등으로 우리 현대사회가 겪고 있는 모든 병폐가 “연약함의 힘”을 제대로 다루는 방법의 부재, 아니면 그 힘을 애써 외면하려고 하는 우리의 이기적인 모습때문이지 않을까?

 

나는 이 책에서 “Gracias a la vida!” 즉, "내 인생에 감사드린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살아 숨쉬는 자체가 인생이다. 그 인생에 감사드리지 못하며 살아온 독자들이여 이 책을 읽어보라!

 

그리고 이책을 읽고 내가 살아온 인생을 후회할 필요는 없다. 일각 일초를 다투며 불안함과 강인함을 위해 달려왔던 순간은 남은 인생에 있어 여유로움과 연학함으로 무장될 그 순간에 비해 보잘 것 없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현경 교수님의 연학함의 힘, 감사드리며 존경합니다.

Gracias a la vida!~ Gracias a la v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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