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를 오해하는 현대인에게
남종국 지음 / 서해문집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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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암흑기. 종교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억압하던 시대에 중세 문화는 퇴보했다고 생각했다. 현대를 살아가는 나와 같은 이들에게 남종국 교수는 중세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문을 열어준다.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 남종국 교수는 중세 지중해 문명 교류의 역사, 중세 이탈리아 상인들, 몽골 평화 시대 동서 교류사, 자본주의 형성, 중세 기독교 순례, 이자의 역사 등에 대해 연구한다. 이렇게 연구한 자료를 바탕으로 중세를 오해하는 현대인에게가 완성된다. <중세라는 이상한 세계>, <그리고 신의 이름으로>, <Miscellanea, 역사의 상상>으로 나누어 중세에 대해 이야기한다. 중세의 특징과 종교가 중세 문화에 미친 영향, 중세에 영향을 준 역사적 사건 등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중세라는 이상한 세계>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중세 시대는 질병에 대해 잘못된 생각들이 퍼져있었다. 불임의 원인을 악마와 마녀에게서 찾았고, 성을 억압하기 위해서 성에 대한 잘못된 의학적 지식을 주입시키기도 한다. 결핵균으로 인한 염증으로 발병한 연주창이라는 병은 자연적으로 상태가 호전되거나 없어지는 경우가 있었지만 왕의 기적이라 믿게 만들어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흑사병이 시작된 것과 치료법 등에 대해 수많은 속설들이 등장했고, 잘못된 가짜 뉴스는 사람들을 공포에 빠트린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코로나로 전 세계인들이 고통 받고 있다. 수많은 기사들과 정부 발표가 쏟아져 나온다. 정확한 뉴스들 사이에 공포감을 조성하는 가짜 뉴스들이 섞인다. 어떤 뉴스가 가짜 뉴스인지 어느 순간 혼동이 될 때도 있다. 중세 시대와 마찬가지로 현대에도 가짜 뉴스는 사회를 혼란에 빠트린다. 잘못된 뉴스를 가려낼 수 있는 이성적인 판단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1348년 아비뇽에 흑사병이 퍼지고 많은 사망자가 나오면서 교황 클레멘스 6세가 아비뇽을 떠난다. 이때 교황의 주치의 기 드 숄리아크는 도시에 남아 환자를 돌본다. 코로나로 전염 환자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수많은 의료진들이 쉬지 못하고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이 시대의 수많은 기 드 숄리아크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현재 프랑스 몽펠리에대학병원은 기 드 숄리아크 병원으로 불리고 있고, 몽펠리에에는 그의 이름으로 불리는 거리도 있다고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의 의료진들에 대한 대우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이 분들에게 어떻게 감사를 전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신의 이름으로>

유럽 역사에서 대표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의 여성을 상징하는 것은 판도라와 이브다. 제우스의 선물 단지를 열어 질병, 가난, 슬픔, 증오, 전쟁 등의 모든 불행을 인간 세상에 나오게 만든 여인 판도라는 모든 불행의 원천으로 평가 받았다. 모든 신들로부터 선물을 받은 최초의 여성 판도라는 제우스의 복수의 도구로 이용되고, 사람들의 비난의 대상이 된다. 최초의 여성 이브는 에덴동산의 선악과를 따먹고 낙원에서 추방된다. 신의 명령을 어기고, 아담과 함께 추방된 이브는 비난의 대상이 되고 만다. 이때부터 여성 차별과 혐오라는 긴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판도라 신화와 이브 신화는 여성에게 원죄의 책임을 묻는다. 여성을 남성에 비해 열등한 존재로 생각한 이들은 여성이 유혹에 더 쉽게 넘어간다는 이유로 마녀로 몰아 심판했다. 16~17세기에 마녀 사냥으로 많은 여성들이 살해된다. 마녀사냥 안내서까지 출간되었고 당대의 베스트셀러였다는 것이 더 충격적이다. 교회와 성직자들이 만들어낸 어이없는 마녀 이미지를 사람들이 믿었다는 것도 소름끼치게 무섭고 어처구니가 없다. 마녀사냥은 잘못된 믿음이 얼마나 무서운 일을 일으킬 수 있는지 일깨워주는 살인사건이다.

 

죽음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기에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모든 종교에는 사후 세계가 등장한다. 중세 유럽에서 천국과 지옥으로 구분되던 사후세계가 천국, 연옥, 지옥으로 구분되는 세계로 세분화된다. 중세 유럽 기독교인들은 지옥이 실존하는 공간이라 믿었다. 이러한 믿음은 그림과 문학작품으로 표현되어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한다. 교회는 이러한 공포심을 극대화시켜 자신들의 힘을 키우는 도구로 사용했다. 중세 유럽 기독교인들은 지상 낙원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동양 어딘가에 있을 지상낙원을 찾아 항해를 떠난 유럽인들은 미지의 땅에 도착해 원주민들을 착취한다. 중세 유럽 기독교인들의 지상낙원은 원주민들에게서 삶의 터전을 빼앗는 요인이 되었다.

 

<Miscellanea, 역사의 상상>

유럽 역사에서 큰 사건들과 인물을 다루고 있다. ‘로마 황제 네로에 대한 엇갈린 평가’, ‘약탈로 시작된 로마 건국 초기 역사’, ‘중세 유럽 사회를 뒤흔든 가짜 뉴스’, ‘중세 유럽 역사에 영향을 미친 위조문서’, ‘사상의 자유를 위해 순교한 브루노’, ‘중세 유럽의 중심 베네치아 공국’, ‘지식의 전달 수단 번역의 중요성’, ‘피렌체 메디치 가문’, ‘역사의 진정한 주인공은 누구인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중세 유럽에서 이슬람에 대한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가짜 뉴스가 퍼져나간다. 토마스 만은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로 만드는 것은 궁극적으로 모두 폭력”(토마스 만, 183페이지)이라 말하며 가짜와 위조가 판을 쳤던 중세 유럽 사회를 비판한다. 가짜뉴스는 중세 유럽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역사에서 무엇인가를 선동하고 왜곡된 이야기를 퍼트리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프랑스 고대 왕조인 메로베우스 시기에 작성된 문서의 반이 위조문서였고, 이를 위조한 사람들이 성직자였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중세 최악의 위조문서는 콘스탄티누스 기진장이다. 로마제국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나병을 치료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교황 실베스테르 1세에게 로마 서부의 통치권을 양도했다는 내용이 적힌 문서다.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하기 어려운 이유는 역사적 사료에 역사가의 주관적 편견과 왜곡이 들어가 과거를 사실 그대로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역사가는 중요하다고 생각한 사건과 인물을 선택해 기록한다. 역사가의 선택은 역사가의 철학과 가치관이 담겨 있기 때문에 객관적이지도 않고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만약 역사가가 중세 시대에 위조된 문서를 역사적 사료로 선택한다면 위조된 내용이 사실처럼 기록된다. 사실을 알지 못한 이들이 이렇게 쓰인 역사서를 읽는다면 잘못된 역사 인식을 갖게 될 수도 있다. 과거의 역사는 왕이나 귀족, 성직자 등의 위로부터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었지만, 20세기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그 시대를 살았던 다수의 농노와 노동자, 여성 등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다.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더 많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알 수 있게 됐다. 역사 속에서 소리 없이 잊혀져간 수많은 이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중세를 오해하는 현대인에게를 읽으면서 중세에 대해 알고 있었던 내용을 다시 확인하고, 몰랐던 내용을 새롭게 알 수 있었다. 책은 중세 유럽의 모습을 그린 그림과 책, 영화 등을 소개해 중세의 모습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중세의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현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를 바로 보게 된다. 책을 읽다보면 중세는 암흑의 시대가 맞는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계속해서 꽉 막힌 틀을 깨부수기 위해 벽을 두드렸다. 조금씩 생긴 틈으로 빛이 들어와 중세를 살아가는 이들을 비춘다. 중세에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역사는 우리를 근대의 세계로 안내한다. ‘어둠의 중세에서 벗어나 중세의 또 다른 면인 빛의 중세를 바라보아야 우리가 중세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책이다.

 

조금 더 알려고 하고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대상을 바라보면 더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205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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