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광유년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자음과모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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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쓰마란은 사람들이 왜 살다가 죽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힘든 일을 하더라도 살아 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면서 쓰마란은 죽음을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 , 쓰마성을 가진 사람들이 죽어가기 시작한다. 바러우 산맥 가장 깊은 곳에 자연적으로 생겨난 작은 마을 산싱촌 사람들은 최근 100년 동안 평균 수명이 마흔 살을 넘기지 못하고 목구멍이 막혀서 죽었다. 서른아홉 살이 된 쓰마란은 서서히 죽어간다. 관과 수의를 만드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으면서 누워 있던 쓰마란이 밖으로 나온다. 죽어가던 쓰마란은 란쓰스에게 수술비를 부탁하고 란쓰스는 쓰마란과 두주추이가 헤어지는 조건으로 쓰마란의 큰 딸 텅과 함께 마을을 떠난다. 돈이 모여져 수술을 받고 마을로 돌아온 쓰마란은 마을 사람들에게 수로 건설을 강요한다. 마을 사람들은 쓰마란의 퍼런 눈빛과 그의 뒤에 몽둥이를 들고 서 있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두려움에 빠진다. 쓰마란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공사에 필요한 것들을 징발한다. 열여섯 살 이상의 남자들은 모두 공사 현장으로 가야 했다.

 

또 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물거품처럼 조용히 사라졌다.’(211페이지)

쓰마란을 살리고 링인수 공사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했던 란쓰스는 사람들의 외면 속에서 홀로 죽음을 맞았다. 그녀가 죽고 난 후 파리와 모기, 하얀 구더기만이 란쓰스 곁에 남았다. ‘새까맣게 모여든 파리와 모기’(267페이지), 죽은 란쓰스를 먹어치우는 벌레들의 모습은 흡사 란쓰스를 이용했던 쓰마란과 마을 사람들의 모습 같다는 생각을 했다. 충격을 받아 멍하게 앉아 있던 쓰마란은 링인거 수로 건설에 나갔다가 죽은 이들을 위해 연주되는 장례 음악을 들으면서 피곤한 몸으로 란쓰스의 옆에서 아주 깊은 잠에 빠진다.

 

링인거 수로가 개통됐어요!(277페이지)’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물에는 오염되어 검게 변한 풀과 물에 젖어 팽팽하게 부푼 죽은 쥐, 진흙탕이 잔뜩 들어간 비닐봉지와 낡은 치마와 모자, 죽은 가축의 붉은 배, 더러워진 모피(301페이지)’가 함께 떠내려 오고 있었다. 수로를 방류하러 갔던 다바오가 두류의 시체와 함께 돌아온다. 링인거 물이 이미 심각하게 오염된 것을 본 두류는 물에 몸을 던져 죽고, 두류의 시체를 옮기기 위해 다바오는 오염된 물을 방류해 산싱촌으로 물이 흘러 들어왔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때서야 촌장을 찾고, 촌장이 죽은 것을 발견한다. 죽은 사람들의 매장이 끝난 후 두바이의 목구멍이 부어오르기 시작한다.

 

쓰마, , 씨 성을 가진 이들이 모여 사는 산싱촌은 대대로 촌장이 마을 사람들을 이끌었다. 쓰마란이 촌장이었던 시절을 시작으로 란쓰스의 아버지 란바이수이, 쓰마란의 아버지 쓰마샤오샤오, 두옌의 아버지 두상이 촌장이었던 시절로 이야기는 거슬러 올라간다. <1부 천의에 추석을 달다><2부 낙엽과 시간>은 란바이수이가 죽고 난 후 촌장이 된 쓰마란의 이야기다. <3부 갈황민요>는 쓰마란의 아버지 쓰마샤오샤오가 죽고 난 후 촌장이 된 란바이수이, <4부 젖과 꿀>은 두상에 이어 촌장이 된 쓰마란의 아버지 쓰마샤오샤오, <5부 가원의 역사>는 두옌의 아버지 두상이 촌장이었던 시절의 이야기로 쓰마란의 유년시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산싱촌에서 촌장은 절대적인 존재다. 작은 산골 마을에서 촌장은 타지 사람들이 바라볼 때는 보잘 것 없지만 산싱촌에서 촌장은 절대 권력으로 마을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힘을 갖고 있다. 작은 마을에서 휘두르는 권력은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촌장이 되려고 한다. 권력과 장수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거대한 몸집을 키워 마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마을 사람들을 착취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산싱촌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해야 더 오래 살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두상은 마을 사람들에게 더 많은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말하고, 쓰마샤오샤오는 유채 기름이 장수의 비법이라 생각해 유채를 키우는 데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 란바이수이는 전답의 땅을 갈아엎는 공사를 시작하고, 쓰마란은 수로 공사로 물을 끌어오는 공사를 진행한다. 촌장들은 마을 사람들을 더 오래 살 수 있게 해준다는 명분으로 마을 사람들의 재산과 노동력을 착취한다. 공사 대금과 물품을 마련하기 위해 남자들은 도시로 나가 피부를 팔고, 여자들은 자신의 몸을 팔아 돈을 벌어야 했다. 마을 사람들은 모든 것을 쏟아 부었지만 마흔 살 이전에 죽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부족한 산골 마을 사람들은 세상과 단절되어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오래 살겠다는 강한 욕망에 사로잡혔다. 하나의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는 오직 그것만 보일뿐이다. 메뚜기 떼가 출몰해 대기근이 올 것이라는 두옌의 경고를 귀담아 듣지 않아 마을 사람들은 끔찍한 대기근을 겪게 된다. 모든 식량이 떨어진 순간, 남자들은 끔찍한 선택을 하게 된다. 반대하는 여자들을 속이고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내다버린 것이다. 버려진 형들을 찾아간 곳에서 어린 쓰마란은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고, 마을 아이들과 함께 죽은 아이들의 장례를 치러준다. 무엇이 어른들에게 이렇게 잔인한 선택을 하게 만들었을까? 과연 그들의 선택이 마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정당화 될 수 있을까? 대기근이 계속되면서 사람들은 주변에 먹을 수 있는 것을 모두 먹어치우고, 최후의 순간 인육까지도 먹어 생존했다. 이러한 이야기는 역사에서 반복되어 기록되어 있다. 인간이 살기 위한 몸부림 앞에 도덕성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주장한다는 것이 의미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어디까지 인간의 선택이 정당화 될 수 있을까?

 

산싱촌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지금도 우리는 수많은 것들을 욕망한다. 집착적인 욕망은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까지도 망가트린다. 지금 나는 이 순간 무엇에 집착하고 욕망하는가에 대해 생각한다. 일광유년은 너무나 극단적이고 끔찍한 이야기이지만 현실에서 충분히 있었을 것 같은 이야기라 더 끔찍하고 무섭다. 끔찍하고 무서운 이야기를 담담하게 읽고 있는 나 자신도 무섭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떤 생각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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