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데니스 존슨 외 지음, 파리 리뷰 엮음, 이주혜 옮김 / 다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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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문학잡지’(7페이지, <타임>)

<파리 리뷰>는 출판 산업과 문학 교류의 중심지였던 파리에서 1953년에 창간된 영문학 계간지다. 작가의 경력, 출신국, 성별, 장르에 제한을 두지 않고, 좋은 작가들의 작품을 찾아낸다.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파리 리뷰>에서 엮은 책이다. 열다섯 명의 작가가 <파리 리뷰>에 실렸던 단편소설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선택해 그 소설이 탁월한 이유를 서술해 한 권의 책으로 완성한다.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 데니스 존슨

폭우가 쏟아지던 날, 한 남자가 고속도로에 서 있다. 가족을 태우고 지나가던 운전자가 남자를 차에 태워준다. 잠시 후 차는 달려오던 차를 들이받고, 상대편 남자가 심하게 다쳐 병원에 실려 가지만 결국 사망한다. 몇 년이 지난 후 중독 치료센터에 들어간 남자는 현실과 환상 속에서 비가 내리는 환영을 본다.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남자에게 실제로 일어난 사고를 적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중독센터에 갇힌 남자가 물이 흘러내리는 소리와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어쩌면 처음 약에 취하고 사고가 났다는 것도 남자가 환영을 본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혼란스러웠다. ‘그들에게 거짓말하는 것이 나의 성향(24페이지)’이라고 자신의 성향에 대한 남자의 평가를 읽을 때 이건 남자가 본 환영이라는 생각을 더 강하게 하게 됐다.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의 비평을 적은 작가 제프리 유제니디스속죄의 증언(29페이지)’이라고 적고 있다. 사고 현장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돕지 않았던 남자가 그로 인한 죄책감으로 환각에 빠진 이야기일까? 유제니디스는 시간과 어조의 기록을 하나로 합함으로써 어느 비 오는 밤에 일어난 한 사건 혹은 사고를 통해 개인적인 것과 영원한 것이 부딪치는 하나의 서사를 전달(30페이지)’한다고 평한다. 이야기 속 남자에게 일어난 사고가 환각인지 아닌지는 솔직히 지금도 헷갈리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남자는 삶에 대한 의욕이 희미하다는 것이다. 남자는 왜 살아갈 의지를 잃었을까?

 

< 어렴풋한 시간 >, 조이 윌리엄스

자동차 냉각수를 마시고 죽은 남자가 있다. 한 아이의 아버지이지만 아이를 안아주지 않고 사랑하지 않았던 남자의 죽음 후 아이는 엄마와 단 둘이 오두막에서 살아간다. 아이를 사랑했던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검시관은 엄마의 죽음을 사고사로 발표하고, 맬 베스터는 혼자 남겨진다. 사랑을 주는 존재가 사라지고 사랑의 결핍에 상처받은 맬은 외로움을 견디면서 살아간다. 맬이 배수로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늙은 여인을 구해주지만 그 여인은 다음 날 죽은 채로 발견된다. 검시관은 늙은 여인의 죽음을 머리에 외상을 입은 흔적은 없다. 중추신경계는 검사하지 않는다.(55페이지)’라는 두 문장으로 정리한다. 맬의 아빠와 엄마의 죽음도 검시관은 몇 문장으로 정리해 결론을 지었다. 죽음이라는 것은 생명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살아 있는 이에게는 세상의 끝과 같은 절망이지만 서류상의 죽음은 한 페이지도 되지 못한 몇 문장으로 정리된다.

 

늙은 여인을 구해준 것을 보상한다는 명분으로 시장은 맬을 미국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태운다. ‘완벽히 두려움에 빠져 힘없이 가라앉은 채로 온순하게 경사로를 따라 하늘로 올라갔다(58페이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맬은 두려움에 빠져 고향을 떠나 낯선 미국으로 떠난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공항터미널에서 생활하던 중 신고를 받은 경찰이 맬에게 일행은 어디 있는지 묻는다. 대답할 수 없어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한 여자가 나타나 일행이라 말하고 맬은 여자를 따라간다. 엄마를 잃고 홀로 된 맬에게 여자는 유일한 가족이 되었다. 어느 날 큰 차들이 들어오고 판자집이 무너진다. 안전하게 지켜주던 판자집이 사라진 순간, 맬은 누구도 안전하지 않았다(86페이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해변을 달리고 또 달린다. 호주에서 엄마와 함께 할 때 맬은 외롭지 않고 안전했다. 엄마가 사라진 순간 맬은 세상에 홀로 남겨져 지독한 외로움과 사람들의 외면 속에서 안전하지 않았다. 갑자기 떠나게 된 미국에서 맬은 여자와 함께 하는 동안 외롭지 않았다. 맬의 안전한 생활은 판자집이 무너지는 순간 위기에 처한다. ‘해변은 끝이 없었고 맬은 달리고 또 달렸다(86페이지)’, 끝이 없는 해변의 어디쯤에서 맬은 안전할 수 있을까?

 

< 춤추지 않을래 >, 레이먼드 카버

남자는 가구를 마당에 내놓았다. 지나가던 남자애와 여자애는 남자에게 마당에 내놓은 물건을 사고 싶다고 말한다. 이야기를 하던 이들은 남자의 집으로 들어가 함께 술을 마시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몇 주일 후 여자애는 친구들에게 마당에 물건을 내놓았던 남자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얼마 후 여자애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뭔가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다 말로 할 수는 없었다(102페이지)’, 남자애와 여자애는 그 날 남자의 무엇을 보았을까? 남자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여자애의 침묵은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궁금증을 유발하고, 그 상황을 상상하게 한다.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가제본에 실린 세 편의 이야기는 밝지 않다.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를 짧은 단편 소설 속에 응축해서 담아 독자에게 전달한다. 무거운 이야기를 읽는 동안 나의 공감의 부재를 느꼈다. 어둡고 슬픈 이야기인데 마음이 전혀 울컥하지 않고 너무나 담담하게 책을 읽었다. <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 >에서 교통사고로 사람이 다치고 사망한다. 사고에서 살아남은 남자는 시간이 지나 중독센터에 갇혀 환청을 듣고 있다. < 어렴풋한 시간 >에서는 자동차 냉각수를 잘못 마신 아빠의 죽음과 해변에서 사고로 죽은 엄마,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음에도 담담하게 책을 읽었다. 마치 <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 >의 검시관이 죽음에 대해 몇 문장으로 보고서를 작성하듯 그 모든 죽음을 멀찍이서 떨어져 보고 있었다. < 춤추지 않을래 >는 남자의 밝지 않은 분위기를 통해 좋지 않은 일이 남자에게 일어났다는 것을 짐작하게 된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궁금했지만, 남자의 가라앉은 감정까지는 공감이 되지 않았다. 나의 공감능력에 이상이 생긴 걸까? 아니면 세 작품의 작가들이 이렇게 읽히게 쓴 것일까? 작가의 의도인지 혹은 나의 공감능력의 부재로 인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작품 모두 몰입해서 읽게 된다. 짧지만 강한 세 편의 소설은 작품 속 이야기와 뒤에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까에 대해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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