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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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가 치던 골짜기에서 시신이 발견된다.’

 

유나는 딸 지유를 데리고 전 남편 준영과 함께 청연 할아버지 집으로 향한다. 할아버지 집에 도착한 후 지유와 준영은 늪으로 산책을 떠나고 유나는 저녁을 준비한다. 3년 만에 아빠를 만난 지유는 앞으로 자주 볼 수 있을 거라 말하는 아빠와 함께 저녁을 먹고 잠이 들었다. 깨어난 지유에게 엄마는 아빠가 떠났다고 말한다.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도는 사람들’(342페이지)

서민영을 만난 은호는 아내와 서민영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철저하게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 타인의 감정이나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고 가는 사람들, ‘듣고 싶은 것만 들리고, 듣기 싫은 건 안 들리게 만드는 초능력’(370페이지)이 있는 사람들이다. 유나의 휴대폰 속 가족사진을 본 은호는 신유나와 졸개들의 구도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내가 가장 앞에 있거나 가장 중심에 있고 나머지 가족은 배경 같다는 점에서 셀카와 비슷하다고 느낀다. 유나는 인간을 승자, 패자, 모르는 자로 분류한 뒤 승자에겐 입안의 혀처럼 굴고, 패자에겐 송곳니로 군림한다. 모르는 자는 입 냄새쯤으로 취급했다.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112~113페이지)

은호는 여행지에서 만난 유나에게 첫눈에 반한다.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만남을 이어가던 중 청혼하는 은호에게 유나는 자신이 원하는 걸 상대도 원해야만 결혼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유나는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 대답한다. 행복한 순간을 더하면 행복한 것이라는 은호의 말에 유나는 행복은 뺄셈이라고 이야기한다.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는 것이 유나가 생각하는 행복이다. 결혼을 하고 서로의 아이들과 함께 살기 위해 이사를 했지만 지유를 서지유가 아닌 차지유로 만들려는 유나의 요구를 은호가 들어주지 않으면서 아이들을 데려오려는 계획이 미뤄졌다. 은호 어머니의 통보로 노아를 데리고 와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가족이 모두 모인 저녁 식사가 끝난 후 잠이 든 은호는 다음 날 자신에 의해 숨이 끊어진 아들을 발견한다.

인간은 자신의 믿음에 따른 우주를 가진다. 결함도 결핍도 없는 완전성이 아내의 우주였다. 행복은 가족의 무결로부터 출발한다고 믿고 있었다. 이 믿음은 신앙에 가까웠다.’(115페이지)

은호가 바란 행복은 네 식구가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평범하게 사는 것이었다. 하지만 노아의 죽음으로 은호의 행복은 무참히 깨진다. 은호의 행복이 깨지는 순간 유나의 행복은 시작된다. 빼야 완전해지는 유나의 행복은 모든 것이 자신의 통제 아래 놓여야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유나는 빼는 것을 선택한다. 충격에 빠져있던 은호는 유나의 과거를 하나씩 알게 되면서 아들의 죽음에 의혹을 갖게 된다. 아들의 죽음의 진실을 알기 위해 함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유나를 따라 여행을 떠난다. 소시오패스가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났을 때 3단계의 작전을 사용한다고 한다. 자신이 그런 짓을 왜 하겠느냐며 무죄를 주장하고, 비난하는 상대방에게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다고 동정 연극을 한다. 마지막으로 고발자 협박을 하면서 분노를 터트린다고 한다(<<그저 양심이 없을 뿐입니다>> 참고). 유나는 자신이 잘못된 행동을 하는 이유는 상대방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노아를 죽인 것도 모두 은호의 잘못이고, 자신과 헤어지려는 남자들이 잘못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은 그들의 죽음에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생각한다. 소시오패스의 특징 중 하나는 겉으로 볼 때 너무나도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은호의 친구 진우가 유나를 처음 봤을 때 친구를 공포에 빠지게 할 사람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다.

 

자신은 착하고 어른스러우며, 지혜로운 맏딸이어야 했다.

적어도 아버지에게만큼은.’(160페이지)

소시오패스와 함께 자라야 하는 형제자매들은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고, 소시오패스의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내가 보는 유나는 전형적인 소시오패스다. 마사 스타우트는 <<그저 양심이 없을 뿐입니다>>에서 감정적인 애착과 양심의 결핍, 죄책감과 수치심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소시오패스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입힐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이러한 감정을 갖지 못하는 원인은 심리학적, 신경학적 결함으로 인한 감정과 공감의 결핍 때문이라고 한다. 유나의 감정적인 결핍으로 인해 재인은 부모의 사랑과 관심이 결핍된 환경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 엄마의 병 때문에 혼자 할아버지 집에서 살아야 했던 유나는 언니 재인이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았다고 생각한다. 집으로 돌아온 유나는 재인을 언니라 부르지 않고 재인의 것을 모두 빼앗는다.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엄마에게 매일 누구를 더 사랑하는지를 묻는 유나에게 엄마는 유나라고 대답하고 재인은 상처를 받는다. 자신의 것을 뺐었다고 말하는 유나에 대한 분노와 자신으로 인해 유나가 할머니 집에서 살았다는 죄책감이 충돌하지만, 죄책감이 더 컸기 때문에 재인은 유나의 행동을 참고 견뎠다. 아빠에게만은 착한 딸이길 바랐던 재인은 유나의 행동을 말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훔쳐갔다고 비난하며 증오를 쏟아 붓던 유나로 인해 받은 상처와 공포는 재인의 안에 남아 곪아갔다. 자신을 죽이려는 유나를 보면서 자신도 유나처럼 어린 시절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재인은 자신 안의 착한 아이를 죽이기 위해 유나에게 온 힘을 다해 저항한다.

 

괜찮아. 꿈이야. 아침에 잠을 깨면 다 사라져 버릴 꿈.’(14페이지)

유나가 준영과 이혼을 하고 양육권 분쟁을 하는 과정은 소시오패스가 아이를 사랑하지 않지만 상대방을 괴롭히기 위해 양육권 소송을 하는 것과 비슷했다. 소시오패스는 법률 제도를 악용해 상대방 배우자의 아이를 키울 수 없는 귀책사유를 들어 양육권을 빼앗아 온다. 양심이 사라진 이들은 약자를 선택해 자신이 통제하고 복종하게 만든다. 유나는 딸 지유를 자신의 소유물이라 생각해 철저하게 자신만을 바라보고 복종하게 만든다. 모든 것을 통제하고 모든 것이 자신의 소유물인 상태를 꿈꾸는 것이 유나가 생각하는 완전한 행복이다. 이를 방해하는 것은 그것이 딸이라도 용서하지 않았다. 살해 현장을 목격한 딸 지유에게 유나는 자고 일어나면 사라져 버릴 꿈이라고 말한다. 지유는 너무 큰 충격에 현실과 꿈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 다락방에 갇힌 이모를 구한 순간 지유는 모든 것을 기억해내고 이모에게 현장을 목격했음을 이야기한다. 양육권과 친권을 모두 가지고 온 유나는 딸 지유를 통제하고 철저히 자신의 말만 듣는 아이로 키웠다. 엄마가 비밀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에게도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세뇌당한 지유는 끔찍한 기억 속에서 모든 것이 꿈이라 생각하면서 혼자 괴로워했다. 유나는 지유가 온전히 자신에게만 의존하는 아이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를 통제했다.

 

문간에 발 들여놓기’(143페이지)

민영의 메일을 읽고 유나의 과거에 대해 알게 된 재인은 아버지의 죽음에 의문을 갖게 된다. 준영의 실종신고가 접수되고 경찰이 유나를 찾아온다. 은호와 유나의 언니 재인은 유나의 과거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유나와 관련된 이들의 죽음의 과정을 알게 된다. 유나는 예민하고 약한 대상을 찾는다. 마음대로 조정하고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대상을 찾으면 우선 발을 들이민다. 문간에 발을 들인 후 거침없이 침범해서 들어온다.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을 빼앗기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유나에게 반해 사랑을 시작했던 남자들은 유나를 두려워하게 되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나 곁을 떠난다. 떠나는 순간 그들에게 찾아온 것은 죽음이었다. 자기를 떠나는 남자들과 횡령 사실을 야단치며 해고하는 아버지에게 수면제를 먹여 운전하던 중 사고로 사망하게 만들고, 지유를 데려가려는 전남편 준영을 잔인하게 살해한다. ‘눈먼 미혹의 대가’(454페이지)는 죽음으로 끝이 난다. 남편 은호도 자신을 떠나려 하자 살해를 시도했지만 실패한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선택한 것은 스스로를 죽이는 것이었다. 골짜기에서 뛰어내린 유나는 시신으로 발견된다.

 

지유에게 말한 것처럼 유나에게 이 모든 것은 사라져 버릴 꿈이었을까? 자고 일어나면 잊어버리는 꿈이라 생각해 자신을 떠나려는 소유물을 죽였을까? 완전한 행복을 읽고 난 후 유나로 인해 상처 받은 이들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너무나 큰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그 누구보다도 지유가 가장 안쓰럽고 걱정된다. 소설이라는 것을 알고 읽으면서도 자꾸 현실 속 사건과 연결해서 읽게 된다. 지금 이 순간 현실에서 악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를 상상하게 된다. 악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공포다. <<그저 양심이 없을 뿐입니다>>에서 마사 스타우트는 타인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소시오패스가 평범한 모습을 하고 우리 곁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유나와 같은 사람도 처음 봤을 때는 선량한 시민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내가 생각했던 악의 고정관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참고한 책 : <<그저 양심이 없을 뿐입니다>>, 마사 스타우트, 사계절,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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