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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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은 열 살 때 외할머니 영옥이 살고 있는 희령에서 열흘을 보냈다. 서른두 살이 된 지연은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결정한 후 희령으로 내려온다. 희령으로 이사하고 며칠 후 몇 번 얼굴을 마주쳤었던 할머니가 사과 한 알을 건네면서 지연이 손녀딸을 닮았다고 말한다. 손녀딸의 이름은 이지연, 딸의 이름은 길미선이라 말하는 할머니는 지연의 외할머니 영옥이었다. 열 살 이후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지연은 할머니를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할머니는 자신의 엄마를 닮은 지연이 손녀임을 알아보았지만 지연에게 부담이 될까봐 아는 체를 안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할머니와 손녀는 조금씩 가까워진다. 같은 아파트 10층에 있는 할머니의 집에 갔을 때 증조외할머니와 새비 아주머니가 함께 찍은 사진을 보게 된다.

 

할머니는 지연에게 증조외할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연의 증조외할머니 이정선은 백정의 딸로 태어나 사람들의 천대와 멸시를 받고 자랐다. 백정은 양민들 앞에서 고개도 함부로 들지 못했던 시대에 호기심 많고 장난기 많았던 정선은 항상 고개를 들고 사람들을 관찰한다. 증조외할아버지 박희수는 양민인 자신의 눈을 바라보면서 말을 걸어온 정선에게 호기심을 갖기 시작한다. 희수는 군인에게 끌려갈 위기에 처한 정선을 설득해 함께 개성으로 떠난다. 하지만 가족과 떨어져 힘든 생활을 하면서 정선을 원망하기 시작한다. 딸 영옥이 태어났지만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랑을 주지 않고, 백정의 딸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의 멸시와 이유 없는 공격을 당하는 정선의 고통과 외로움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백정의 딸이라는 이유로 당했던 부당함을 체념하라 말했던 엄마의 말에 화가나 반발했던 정선은 남편의 무관심 앞에서 모든 것을 체념해버린다. 외로움으로 힘들어 하던 중 남편의 친구 새비 아저씨와 그의 부인 새비 아주머니가 개성으로 올라오고, 정선은 새비 아주머니를 돌봐준다. 자신이 백정의 딸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 태도가 달라진 사람들로 인해 상처 받았던 정선은 새비 아주머니도 그럴 것이라 생각해 자신이 먼저 백정의 딸이라 말한다.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는 새비 아주머니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해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정선은 새비 아주머니를 통해 자신이 귀한 존재이고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의지했던 새비 아주머니가 떠난 후 며칠을 앓아눕는다. 정선와 새비 아주머니는 서로에게 빛과 같은 존재로 힘든 삶을 견딜 수 있게 해준 소중한 사람이었다.

 

지연은 증조외할머니와 새비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남편과 부모에게서 받았던 상처를 치유해 나간다. 함께 한 후 이별하는 고통을 당하는 것보다는 아예 만나지 않았으면 좋지 않았을까라는 지연의 물음에 할머니는 그럼에도 증조외할머니는 새비 아주머니와의 만남을 선택했을 것이라 답한다. 증조외할머니에게 새비 아주머니는 스스로를 사랑하고 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고, 지연에게 지수는 너는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자신의 편을 들지 않고 혼자된 남편을 더 걱정하는 엄마와 한 번의 바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딸을 책망하는 아빠에게 어떤 위로도 받지 못해 상처 받은 지연을 위로해준 건 친구 지수뿐이었다. 정선과 지연에게 귀하다고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 존재라 말해주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고통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 부모 자식 간의 사랑도 있지만 친구간의 사랑도 소중하다. 단 한사람, 나를 사랑하고 귀하다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다.

 

밝은 밤은 이혼 후 힘든 과정을 겪고 있는 지연과 할머니가 함께 하면서 과거의 증조외할머니를 회상하는 이야기다. 이야기에는 일제시대 강제 징용과 위안부로 끌려갔던 아픈 역사가 등장한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목격한 새비 아저씨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에 의해 자행되는 전쟁의 참상을 비판한다. 전쟁은 현실 속에서 일어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고통 받았던 이들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고 있다. 밝은 밤을 읽고 난 후 기억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할머니는 새비 아저씨 이야기를 손녀 지연에게 하면서 네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니까, 새비 아저씨는 그만큼 더 사는 거잖아.’(80페이지)라고 말한다. 지연은 할머니의 말을 듣고 난 후 한 번도 본적 없는 새비 아저씨의 모습을 그려본다. 하지만 지연은 세상에 머물다 사라진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은 기억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새비 아저씨는 피폭 후유증으로 고통 받다가 죽음이 다가온 순간 원자폭탄이 터지고 난 후 목격한 히로시마의 참상을 아내에게 이야기하고, 자신이 죽은 후에도 꼭 기억해주라는 말을 남긴다. 새비 아주머니는 지연의 증조모 정선에게 보낸 편지에 새비 아저씨를 꼭 기억해달라고 부탁한다. 일제의 억압 속에서 고통 받았던 수많은 조선인들이 기억에서 잊혀져가고 있다. 밝은 밤은 우리에게 기억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새비 아저씨와 새비 아주머니, 그리고 증조외할머니 이정선의 이야기는 할머니 박영옥의 기억과 새비 아주머니와 증조외할머니의 편지로 후손 이지연에게 전해진다.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해야 하는 것의 의미를 알지 못했던 지연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이들의 삶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고난의 시간을 견딘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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