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명소녀 투쟁기 - 1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현호정 지음 / 사계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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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단명을 끊을 단으로 할 것인지 짧을 단으로 할 것인지 고민했다고 한다. ‘북두칠성과 단명소년설화에서 단명소년이 등장하고 이야기 속 짧을 단이기 때문에 끊을 단으로 쓰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명을 끊는다는 의미가 고통스러워 짧을 단을 선택한다. 단명소녀 투쟁기의 짧은 명을 가진 소녀는 생을 연장하기 위해 어떤 투쟁을 했을까? ‘북두칠성과 단명소년의 소년처럼 명을 길게 해달라고 빌었을까? 현호정 작가가 단명소녀를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찾아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

 

입시를 앞둔 열아홉 살 소녀 구수정은 자신이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는다는 점쟁이 북두의 말을 듣고 죽음을 피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길에서 만난 이안은 수정과 반대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길을 가고 있었다. 둘 앞에 나타난 북두는 저승의 신을 찾아가면 두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말한다. 저승의 신을 찾아간 두 사람은 검은 색과 흰 색의 명부를 받고 바랄희와 바랄망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칼을 받아 명부에 적힌 이들을 죽이기 위해 길을 떠난다. 한 사람은 자신을 죽이는 사람을 죽여야 하고, 또 한 사람은 자신을 살리는 사람을 죽여야 한다. 살고 싶은 수정과 죽고 싶은 이안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서로에게 의존하게 되고 수정은 이안이 살기를 원하게 된다. 자신과 수정이 병실에 누워 있는 모습을 꿈에서 본 이안은 그들이 있는 곳이 꿈의 세계고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깨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건 꿈이야. 꿈에서 깨야 해. 우리에겐 돌아갈 곳이 있어.(94페이지)’

이안은 수정을 깨어나게 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칼을 겨눴지만, 수정이 막아 실패로 돌아간다. 대치하게 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칼을 겨누고, 그 과정에서 이안이 쓰러진다. 저승의 신이 다시 나타나 이안을 데려가려 하자 수정이 저승의 신 등에 올라타 함께 저승으로 가게 된다. 저승에서 이안을 구하려던 수정은 저승이 무너져야 이안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수정이 저승 감옥에 갇힌 모기-인간을 풀어주고, 모기-인간이 풀려나면서 다른 이들도 감옥을 탈출할 수 있게 된다. 저승이 무너져가는 순간 저승의 신은 수정에게 지키려는 것이 오히려 망치는 것이라 하면서 그 결과로 모든 것이 엉망이 될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무너진 잔해 속에서 무질서에 익숙해지고 폐허를 쉼터로, 몰락을 휴식으로 착각하면서 살게 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수정은 자신은 더 이상 두렵지 않다면서 저승의 신이 말한 것들의 이름을 바꾸어 부르겠다고 대답한다.

폐허를 쉼터로, 몰락을 휴식으로···영원히···. 

그러면 그건 더 이상 착각이 아니게 되겠지.(109페이지)’

저승과 저승의 신이 무너진 후 모두가 저승에서 나온 순간 저승의 신을 따르던 소인들은 수정에게 새 주인이라 부르면서 가마를 수정의 등에 올리려 한다. 자신을 쫓아오는 소인들과 자신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이들에게 쫓긴 수정은 의식을 되찾은 내일과 의식을 잃은 이안을 가마에 태우고 도망친다. 이들이 달려가던 방향에 북두들이 나타나고 수정은 피로감을 느끼면서 고꾸라지고 의식을 되찾은 이안은 자신에게 칼을 겨눈다. 내일이 크게 짖기 시작해 이안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수정은 힘겹게 돌아누워 옆에 누워 있는 이안을 바라본다. 병실에서 의식을 되찾은 수정은 자신이 하루 전에 의식을 잃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안을 찾지만 이안을 만나지 못한다.

 

책을 읽은 후 이안이 현실 속 인물인지, 수정의 꿈 속 또 다른 수정이었는지 알 수 없어 헷갈렸다. 수정에게 이안은 꿈에서 만난 존재이지만 수정은 이안이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도 이안의 존재를 믿고 싶다. 왜냐하면 이안은 수정에게 다시 살아갈 힘을 준 인물이기 때문이다. 수정은 내일이라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지만, 여행길을 함께 한 내일이라는 개를 좋아하면서 내일을 좋아하게 된다. 죽음이 자신을 죽이려했던 하루 전과 달리 하루가 지나고 다시 깨어난 수정은 자신의 죽음을 죽일 수 있게 되었다. 단명소녀 수정은 더 이상 단명소녀가 아니다. 수정은 이안의 삶까지 아주 길고 긴 인생을 의미 있게 살아갈 것이다.

앞으로도 세상은 우리를 계속 죽이고 싶어 할 것 같다. 그러니까 우리는 다 단명을 타고난 것이고, 어쩌면 끊을 단으로 끊어야 할 최종 목표는 저 짧을 단인지도 모르겠다. 단단할 것을, 더 단단해질 것을 약속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127페이지)

작가는 짧을 단을 끊어 내고 더 단단하게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주인공 수정은 자신의 삶을 더 단단하게 살아가기 위해 이안과 함께 먼 여행을 떠났고, 짧을 단을 끊어내는 데 성공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생과 삶이 짧고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생과 삶을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지라고 모두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 모두 내일을 사랑하고,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박지리 작가는 2010<<합체>>로 사계절문학상을 받으면서 활동을 시작했고, 일곱 작품을 출간했지만 31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박지리문학상은 참신한 소재와 독특한 글쓰기로 인간 본질과 우리 사회를 깊이 천착해 한국 문단에 독보적 발자취를 남긴 박지리 작가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사계절출판사가 2020년에 시작했다. 단명소녀 투쟁기는 제 1회 박지리 문학상 수상작이다. ‘박지리문학상의 의미와 상을 수상한 후 현호정 작가의 수상 소감을 읽고,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을 읽고 난 후 박지리문학상의 무게를 실감할 수 있었다. 책의 뒷 부분에는 문학평론가 윤경희의 <연명담의 현대적 재구성과 재해석>이라는 제목으로 <<단명소녀 투쟁기>>을 평한 내용이 실려 있어 작품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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