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모네이드 할머니
현이랑 지음 / 황금가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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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도란마을은 돈 많은 사람들이 지내는 치매 노인 요양병원이다. 도란마을에 영아 사체 유기 사건이 발생한다. 아이의 사체가 발견됐는데도 경찰에서는 조사도 하지 않고 신문에도 보도되지 않는다. 이를 밝히기 위해 움직이는 할머니와 아이들의 괴롭힘을 피하기 위해 할머니를 따라다니는 꼬마는 한 팀이 되어 사건을 밝혀나간다.

 

도란마을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힘들어도 살아야 하니까 일을 계속하고, 입에 경련이 날 정도로 웃는 모습을 보인다. 도란마을 방문객들은 직원들을 존중하지 않고 함부로 대한다. 인턴직원은 고시원에서 눈을 떠 너무 피곤해 일하러 가기 싫지만 무거운 몸을 일으켜 출근한다. 출근 후 원장의 호출을 받고 가자 원장은 모르핀 도난 사건을 이야기한다. 습관처럼 웃는 얼굴인 직원은 그로 인해 의심을 받게 된다. 방문객들은 사회지도층이므로 의심하지 않고 노인들은 힘이 없기 때문에 범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가장 어리고 가난한 비정규직 인턴직원을 범인으로 몰아간다.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자신에게 누명을 씌우는 원장에게 화가 난 인턴직원은 소리를 지르면서 대들고 결국 도란마을에서 쫓겨난다. 사람 좋은 얼굴로 웃고 다니던 원장은 자기 욕심만 채우는 사람이다. 도란마을의 모든 것을 자신이 통제하길 바라는 원장에게 레모네이드 할머니는 눈에 거슬리는 사람이다. 땅 주인인 할머니에게 땅을 사는 조건으로 도란마을에 받아들였지만 원장은 할머니를 내쫓고 싶어 한다. 대드는 인턴직원을 해고하고 난 다음 날 빈 모르핀병과 주사기가 치매 노인에게서 발견되지만 원장은 쓰레기통에 버리고 사건을 감추려 한다. 그런 원장에게 서이수 선생은 인턴에게 사과하고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건 아닌지 묻는다. 원장은 잘리고 싶으냐고 협박하면서 서이수 선생의 입을 막는다. 원장은 정부에서 나오는 지원금과 입주하는 사람들에게서 받는 돈을 빼돌리고 마약을 팔아 돈을 벌고 있다. 원장이 키우는 하얀 비둘기는 약을 운반하는 역할을 한다. 도란마을 원장 딸은 친구들과 어울리다 임신을 한 후 자퇴한 상태로 지낸다. 아이는 죽은 채 태어나고 딸은 혼자서 아이를 낳은 후 요양병원에 버린다. 도란마을 요양병원의 죽은 아이는 원장 딸의 아이였던 것이다. 딸은 자신이 괜찮은지 묻지 않고 사람들의 평판만을 생각하는 부모와 책임지지 않고 자신을 비난한 아이 아빠와 그의 부모 모두에게 화가 나 복수를 결심한다. 복수를 포기하려던 딸은 할머니의 죽음 이후 원장의 딸을 설득하라는 유언을 지키기 위해 찾아온 꼬마를 보고 모든 것을 밝히기로 마음먹는다. 영아 사체를 유기한 범인인 원장의 딸은 모두가 자신을 비난하고 외면한 것에 분노해 아버지와 자신을 비난한 이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모든 사실을 밝히고 자수한다. 자수한 딸은 모든 것을 밝히고 원장과 그 일당들의 범죄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다. 레모네이드 할머니의 지시를 받은 윤비서의 도움으로 서이수는 전남편에게서 밀린 양육비를 받아내고, 꼬마와 서이수는 도란마을을 떠난다.

 

철거민을 쫓아내고 부를 쌓은 부동산 업자였던 할머니는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했지만 치매에 걸리고 말기 암으로 죽어가는 순간 돈이 삶은 편하게 지켜줄지 몰라도 삶을 구원해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많은 돈을 벌었지만 치매와 말기 암으로 죽어가던 할머니에게 꼬마는 삶의 마지막에서 만난 친구다. 꼬마는 할머니와 함께 하면서 자신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을 듣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는다. 도란마을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비싼 월세를 지불하고 이곳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의 자식은 부모를 유산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만 바라본다. 도란마을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치매가 심해지는 노인들을 돌보고 요양병원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시달림을 당하면서도 일자리를 잃을 수 없어 참고 견딘다. 인턴 직원은 정규직 직원이 되기 위해 힘들어도 참고, 웃는 얼굴로 지내지만 누명을 쓰고 쫓겨난다. ‘돈을 노리는 자식들과 아내와 아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 웃는 얼굴로 서로를 공격하는 후원회 여자들, 비정규직 인턴직원에게 갑질 하는 상사, 사회적 평판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모 등’, 이들은 더 많은 것을 가졌다는 이유로 자신들보다 더 약한 이들에게 상처 주는 사람들이다. 이혼 후 양육비를 주지 않던 꼬마의 아빠는 할머니의 비서가 찾아가 협박하자 바로 양육비를 내놓는다. 자신보다 약한 이들에게 상처주고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의 민낯을 들여다보게 하는 책이다. 할머니는 죽어가는 순간 자신으로 인해 상처 받은 이들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마지막 순간까지 꼬마를 걱정한다. 할머니는 암의 통증을 참지 못해 자신이 훔친 모르핀으로 인해 누명을 쓰고 쫓겨난 인턴직원에게 보상을 한다. 하지만 직원이 받은 상처까지 보상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할머니의 말처럼 인간으로 인해 받은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 받아야 한다. 할머니와 꼬마의 우정은 사람을 불신한 할머니의 마음과 꼬마의 상처를 치유한다. 아이를 싫어했던 할머니가 다가온 꼬마를 외면하지 못했던 것도 사람의 정이 그리웠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표지와 제목만 봤을 때는 꼬마와 할머니가 어떤 일을 해결해가는 단순한 이야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다르게 책은 많은 사회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치매 노인 문제, 데이트 폭력, 가정 폭력, 아동학대, 미혼모, 사회지도층의 윤리문제, 매수된 공권력, 비정규직, 청년 주거와 일자리 문제 등한 작품에서 이야기하는 사회문제들을 접하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어두운 현실 속에서 꼬마와 할머니는 우정으로 서로를 치유했고, 사회적 불의를 물리쳤다. 나이를 초월한 두 사람의 우정은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었다.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모두에게 힘을 주고 희망이 된다. 작은 마음은 누군가의 삶을 완전히 바꾸는 빛이 된다. 레모네이드 할머니는 많은 사회문제 속에서도 희망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레모네이드 할머니는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책이다.

 

발췌글

15

레모네이드의 신맛이 입안에서 침샘을 폭발시키고 시원하면서도 새콤달콤한 맛이 정수리까지 닿으면 머리가 훨씬 잘 굴러가는 게 느껴지거든요.

 

43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나누면 오히려 혼선만 일으킬 수 있어.”

 

45

여긴 모든 게 다 가짜다. 바다처럼 보이려고 바다색으로 칠한 수영장, 잠금장치도 없는 가짜 방문, 마을도 아니면서 마을이라고 붙인 가짜 이름, 여기 사는 사람인 척하지만 돈 받고 일하는 어른들, 어른들의 가짜 웃음, 아이들의 가짜 친한 척, 이젠 아기가 되어 버린 가짜 할아버지 할머니들······.

 

59

남들에겐 흔한 비극이라도 자기가 당하면 서러워지는 게 인간이지.”

 

64

친절로 포장되어 있지만 서로를 향해 날아가는 말 곳곳에는 바늘이 박혀 있다.

 

99

이 미친 세계에서 혼란은 정신이 온전한 자의 몫이다.

 

114~115

여기가 그렇다. 이게 일상이다. 깨끗이 씻겨 놓은 노인들은 아기 같이 예쁘지만 그 똥은 아기의 것이 아니다. 아무리 자주 씻겨 준다 해도 죽음과 고통의 냄새는 가시지 않는다. 여기 일하는 모두가 말한다. 나는 이 병에 걸린다면 상태가 악화되기 전에 죽겠노라고. 아무리 좋은 환경에 있어도 치매는 치매다. 누구도 도망가지 못한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다. 뇌는 날로 쪼그라들고, 몸은 날이 갈수록 약해진다. 더 괴로운 건 내가 누군지도 모르게 되는 것이다. 그땐 흘릴 눈물조차 없어진다. 왜 슬퍼해야 하는지 모르니까.

 

117

애초에 이 마을도 자식들의 즐거움을 위해서 만들어졌는지도. 직원들의 돌봄은 그들의 죄책감을 떨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124~125

인간의 인생은 희한하다. 아기가 자라서 청소년기를 지나 어른이 되었다가 늙어가면서 다시 천천히 아기가 되어 간다. 어쩌면 치매 환자들은 남들보다 조금 더 빠르게 생의 과정을 거꾸로 밟아나가는 중인지 모른다.

 

127

아무도 안 보는, 자기 자신조차 보지 않는 어둠 속에서만 얼굴에 힘을 풀 수 있는 인간이 나다.

 

129~130

외부와 단절된 동네에 비정상적으로 돈이 많은 치매 환자들과 그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 겉으로는 나처럼 웃고 있지만 뒤에서는 무슨 짓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직장동료이기에 마주치는 얼굴들이지 사실 어느 누구도 서로를 믿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130

빛나고 아름다운 청춘. 잘 모르는 사이인 나이 든 사람들이 20대인 나를 만나면 늘 하는 말이다. 그 말을 들으면 늘 나는 어리둥절해지곤 한다. 누구나 사는 건 엿 같은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사는 게 엿 같다고 느끼는 내가 이상한 놈인 것 같았다.

 

199~200

하이에나가 어미 원숭이를 잡아먹고 죄책감에 새끼원숭이를 돌봐준다고 해서 하이에나가 아닌 건 아니다.

 

225

돈이 나를 지켜줄 수 있을 줄 알았어. 하지만 돈이 내 생활을 지켜줄 수는 있어도 나를 구원할 수는 없어······.

 

280

마치 파도가 쓸려가듯이 사람들은 앞의 뉴스를 잊어버리고 앞에 새롭게 놓인 고기들을 물고 뜯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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