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종료
사카이 준코 지음, 남혜림 옮김 / 사계절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과거의 가족은 부모, 조부모, 자녀 등 3대 이상이 모여 살아가는 대가족의 형태가 많았다. 현대에는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핵가족(소가족), 한부모, 조손, 일인 등으로 가족의 규모가 축소되고 가족의 형태도 다양해졌다.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 젊은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가족이 이어지지 않고 끊기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가족종료는 독신여성 사카이 준코 작가의 가족 이야기와 함께 가족이란 무엇인가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가족의 의미 등에 관해 에세이 형식으로 이야기한다. 18장으로 구성된 가족과 관련된 에피소드 중 몇 개에 대한 나의 생각을 간단히 적어보았다.

 

태어나서 자란 가족을 생육가족’, 결혼 등으로 인해 새로 생긴 가족을 창설가족이라고 한다.(4페이지) ‘가족의 의미란 무엇일까?‘, 나에게 가족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고 존중해주는 사람들이다.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도 부모와 형제와 자녀, 조카들 외에는 딱히 가족이라는 개념으로 연결이 되지 않는다. 결혼으로 이어진 창설가족은 나에게 어렵고 거리를 두고 싶을 뿐 가족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며느리들의 당연한 의무만을 강요하고 나의 인격이 존중되지 않는 나에 대한 사랑이 1도 없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고통일 뿐 가족은 아니다.

 

<‘아내또는 며느리라는 이름의 트랜스포머>는 한 가족 내에서 창설가족 멤버인 며느리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한집에 삼대가 함께 사는 게 당연했던 시절, 며느리들은 하루 24시간 그 집의 며느리’(49페이지)였다는 말에서 며느리들의 고달픔이 느껴져 화가났다. 현대의 기혼 여성은 며느리보다 아내로 존재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며느리로의 시간은 명절이나 연말연시 정도이다. ‘아내로의 시간보다 며느리로서의 시간이 더 길었던 옛 시절에 태어나지 않았음에 감사한다. 아들만을 귀하다 생각하고 며느리는 쉬지 않고 가족을 먹이고 입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앞에서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마음속은 들끓는다. 시댁에서 딸들은 귀하게 앉아 있고 먹고 놀다 간다. 며느리는 이들을 먹이기 위해 손에 물이 마르지 않는다. 지금은 며느리로서의 시간보다 아내로서의 시간이 더 길어 다행이라 생각하며 위안을 얻는다. 시간이 지나도 며느리 내공은 쌓이지 않는다. 어른들 앞에서 생글생글 웃고 싹싹하게 군소리 없이 일 잘하고, 집안 대소사 모두 잘 챙기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한때는 며느리 내공을 쌓기 위해 나를 죽이고 군소리 없이 말을 들었던 때도 있었지만 모두가 부질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왔고 더 이상 며느리 내공을 쌓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명절에 식구들이 모이면 벌써 피곤해>는 소제목으로도 백만 배의 공감을 불러온다. 어린 시절 명절은 우리 집이 큰 집이라 차례상 준비를 하고 친척들이 방문할 때마다 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해야 해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친구들을 만나 신나게 놀 수 있어 즐거웠다. 결혼 후 명절은 명절 달이 되면 그때부터 몸과 마음에 돌덩어리를 달고 있는 것처럼 스트레스에 빠져 허우적댄다. ‘생육가족은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창설가족들인 시댁 식구들 속에서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낸다. 내 편은 아무도 없는 외로운 섬과 같은 공간과 시간 속에 있을 때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 때도 있다. 명절엔 남편은 말 그대로 남의 편이다.

 

<내 안에 할머니 있다>를 읽으면서 할머니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할머니와 외할머니 모두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어떤 접점이나 추억이 없다. 엄마가 가지고 있는 추억을 통해서만 일부분의 이야기만 알뿐이다. 엄마에게 심한 시집살이를 시킨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며느리가 된 후 더 엄마의 힘듦이 짐작되어 좋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돌아가시기 직전 막내딸 얼굴 보고 싶어 조그만 소리에도 밖의 기척을 살피시다 끝내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이야기는 더 애절하고 마음 아프게 남는다. 할머니와 외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없기에 이 두 분에 대한 감정은 엄마의 추억을 바탕으로 결정된다. 사카이 준코 작가는 며느리 흉을 보지 않고 손자들을 사랑하는 할머니는 신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인생을 글로 쓰면 몇 트럭은 된다는 말이 실감나는 분들의 삶이 있다. 식민지시대와 전쟁 등 역사의 격변기를 살아가면서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으로 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이 억압된 채 아내, 며느리, 어머니로 살았을 할머니들의 삶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꽃다운 나이가 지나고 여자로서의 삶은 사라진 채 자신의 이름을 잃고 살았던 수많은 할머니들이 우리의 할머니들의 모습이고 엄마의 모습이다. 나는 여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나의 정체성을 찾았는지 돌아본다.

 

<이름이 곧 실체다>는 가족들 간 부르는 호칭에 대한 내용이다. 시대별로 가족들을 부르는 호칭은 바뀐다. 부모와 형제를 부르는 호칭도 나이에 따라 수직적인 호칭으로 불리던 것이 요즘은 부모와 윗 형제들을 편하게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다. 부부간의 호칭도 사람들에 따라 다양하게 불리지만, 나는 지금도 남편이 아이 이름을 넣어 누구누구 엄마라 부르는 것이 싫다. 내 이름으로 불러주었으면 좋겠다.

 

<가족이 이어진다는 것의 묘미>은 대를 이어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아직도 남아 있지만 옛날에는 더 심했던 대를 잇는 것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에게 대가 끊긴다는 것은 곧 가문의 멸문을 의미하는 죽음과도 같은 상황이었다. 현대에도 왕족이 존재하는 나라들이 있다. 이런 나라에서는 왕위 세습을 위해 혈통이 중요하고 그렇기에 대가 끊긴다는 것은 왕조의 멸망을 의미한다. 딸의 왕위 세습을 인정하는 나라는 그나마 낫지만, 아들의 왕위 세습만을 인정하는 나라의 경우 왕과 왕비는 대를 잇는 것에 대한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게 된다. 대를 이어 가족이 계속 이어진다면 좋겠지만 그를 위해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한다면 가족은 행복할 수 없다. 가족이 이어진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고민하게 된다.

 

가족을 잇기 위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아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강요할 생각은 없다. 저출산으로 고민하고 있는 국가의 입장에서는 반길 수 없는 생각이겠지만. 가족의 존재는 위안의 존재임과 동시에 고통의 존재다. 우리 모두에게 가족이 고통보다는 위안을 더 많이 주는 존재이기를 희망한다.

 

발췌글

4

태어나서 자란 가족을 생육가족’, 결혼 등으로 인해 새로 생긴 가족을 창설가족이라고 한다.

 

111

내가 사랑한 상대방이 나를 사랑해주기 바라는 마음. 내가 걱정한 상대방이 나를 걱정해주기 바라는 마음. 자꾸만 이런 감정의 등가 교환을 바라게 되는 것도 어찌 보면 인지상정이지요. 그렇지만 실상은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역시 인간사입니다. 예전에는 여자가 몸이 부서져라 아이를 키우다 할머니가 되면 자식 손주들의 극진한 봉양을 받았고 이는 다음 세대, 또 다음 세대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않지요. 아예 자손이 없는 사람도 많고, 있어도 요즘 부모나 조부모는 자식 손주들에게 짐이 되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요.

 

196

어른이 되면 부모 또한 그들의 부모가 키운 자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각자가 자라온 시대와 환경을 감안하면 그런 성격이 되는 거도 무리는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면 내 성격과 인생도 부모, 부모와 부모, 또 그들의 부모, 하는 식으로 다양한 인물들이 엮어낸 인과가 얽히고설켜 빚어진 결과인 거겠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