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화해하기 - 관계가 내 마음 같지 않을 때, 그림이 건네는 말
김지연 지음 / 미술문화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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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닥쳤던 가장 고통스러운 일들을 극복해 내기 위해 괴로움을 극복하고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품을 고백 예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164페이지)

그림으로 화해하기<관계가 내 마음 같지 않을 때, 그림이 건네는 말>이라는 부제와 함께 한다. 사람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 함께 살아가면서 맺게 되는 관계는 사람에게 행복이 되기도 하지만 불행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나 자신과의 화해>, <타인과의 화해>, <사회와의 화해>의 소제목으로 김지연 작가의 이야기와 화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가장 힘든 것이 관계 맺기이다. ‘내 맘 같지 않아라는 말처럼 사람과의 관계는 내 맘처럼 모든 것이 되지는 않는다. 나와 타인, 그리고 사회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와 고통스러운 경험을 예술가는 작품으로 표현하고,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되찾는다. 고통을 이겨낸 예술가들과 작품을 보면서 나와 타인, 사회와 화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 자신과의 화해>는 오즈번, 로트레크, 젠틸레스키, 뭉크, 고흐, 로스코, 카라바조, 루소, 쿠르베, 렘브란트의 이야기가 실렸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불멸의 화가 아르테미시아를 통해 더 많이 알게 된 화가다. 처음에 젠틸레스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을 보면서 시작된다. 클림트의 그림 <유디트>(40페이지)를 통해 황금색 화폭 안에 그려진 적장의 목을 벤 유디트의 모습에 매료되었고, 젠틸레스키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유딧)>(38페이지)의 강렬함에 충격을 받았다. 같은 주제라도 화가가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에 따라 전혀 다르게 표현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화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젠틸레스키를 보면서 우리나라 서양화가 나혜석이 생각났다. 여성이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 존중받고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남성들에게 저항했던 나혜석과 남성들로 인해 고통을 당했지만 삶을 포기하지 않고 그림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젠틸레스키는 여성이 아닌 한 인간으로, 화가로 살았던 인물이다.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당당하게 살아갔던 젠틸레스키와 모두에게 버림받고 무연고자로 홀로 죽어갔던 나혜석이 비교된다. 무엇이 한 인간으로 살고자 당당하게 목소리를 냈던 두 화가의 삶의 마지막을 다른 길로 이끌었을지 궁금하다.

<나무 뿌리>에 대해 온 힘을 다해 열정적으로 대지에 달라붙어 있지만, 폭풍으로 반쯤 뽑혀 나온 시커멓고 울퉁불퉁한 옹이투성이의 뿌리들 속에 살아가기 위한 발버둥을 담아내고 싶었다.”(73페이지)라고 말한 고흐는 폭풍으로 인해 반쯤 뽑힌 상태에서도 생의 끈을 이어가는 나무뿌리를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도 그림을 그리고 삶을 이어가려는 자신의 모습과 생의 의지를 표현하고 싶었던 건 아닌가 생각한다.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누구보다 더 생을 사랑한 화가 고흐는 인간을 사랑하고 풍경과 그림과 색과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살아감을 사랑한 화가다. 고흐의 <나무 뿌리> 안에 넘치는 생명력과 뻗어나가려는 뜨거운 열정이 느껴지는 것 같다. 사람과 풍경에 감정을 이입할 줄 알고 공감할 줄 아는 고흐는 사람을 사랑했기에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해 더 괴로웠을 것이다. 고흐와 제주도 풍경을 찍은 김영갑 작가처럼 어떤 대상을 깊이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은 그 삶이 평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행복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다. 나는 어떤 대상을 사랑하고 있고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대상을 통해 위로받고 위로할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인가를 돌아본다.

마크 로스코의 그림은 처음에 봤을 때는 색깔만 덩그러니 있는 그림이 왜 가치 있는거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솔직히 미술 교과서에 실린 몬드리안이나 잭슨 폴락의 그림도 처음 봤을 때 이 생각을 했었다. 이해되지 않아 계속 들여다보게 됐고 여러 번 반복해서 보고 한참을 들여다보다 마음이 뭉클해지는 경험을 했다. 그때부터 그림을 보는 시각과 마음이 조금 변화하기 시작했다. 색은 단순하지만 강렬하다. 강렬한 색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그 속에 빠져 들어간다.

대학 졸업 후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작가의 선배는 뮤지컬 배우가 되었고, 정규 회화 수업을 받지 않았던 앙리 루소는 22년 동안 세관원 생활을 하다 화가가 되었다. 선박 통행료를 징수하는 단순한 업무를 담당했던 루소는 주말에만 그림을 그리다 사십의 나이가 넘어서야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한다. 세관원을 퇴직한 후 전업화가로 전향한 것은 49세의 늦은 나이였다. 늦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전문적인 그림 교육을 받지 못했던 루소는 원근법이나 명암법도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독학으로 터득한 그림을 자신의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그렸다. 서툰 기법으로 인해 그림은 사람들에게 악평을 받기도 하고 인정받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루소는 좌절하지 않고 그림을 계속 그린다. 그 덕분에 우리는 <잠자는 집시 여자><>을 만날 수 있었다. 뮤지컬 배우 박은태와 앙리 루소는 사람들이 늦었다고 생각할 때 무모하다 생각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갔고, 꿈을 이룬 사람들이다. 무엇이 우리의 꿈을 향한 도전을 막고 있는지 고민하게 한다.

<나 자신과의 화해>에 실린 화가들의 공통점은 살아가는 동안 겪은 고난과 고통에 좌절하지 않고 예술을 통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이겨낸 화가들이다. 사람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했던 화가는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도 희망과 사랑의 끈을 놓지 않고 그림을 통해 자신을 위로하고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었다.

 

<타인과의 화해>는 부르주아, 드가, 오차드슨, 호퍼, 칼로, 벨라스케스, 샤갈, 토레스, 피카소와 세잔의 이야기다.

삼성 리움박물관에 전시됐었던 <마망>의 작가 루이즈 부르주아는 아버지와 믿었던 가정교사의 불륜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어머니가 그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것에 절망한다. 부르주아는 자신의 예술의 원천은 관계에 대한 허무함과 고민이라고 고백한다. 알을 품고 있는 거미 <마망>은 알을 품은 어미거미이다. 아기 거미를 위해 부화할 때까지 지켜주고 아기 거미들이 부화한 후 탈진해 죽은 어미 거미는 새끼들의 먹이가 된다. 모성을 거대한 거미로 표현한 루이즈 부르주아는 아이를 낳고 작품을 만들면서 아버지의 불륜을 눈감았던 어머니를 이해하게 된다. 자식을 위해 고통스러웠을 삶을 이겨낸 어머니의 모습을 아기 거미를 위해 자신의 고통을 이겨낸 어미 거미로 표현한다. 어머니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어머니와의 화해와 더불어 부르주아 자신과의 화해의 과정이기도 하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그 관계를 들여다보고 화해할 때 결국 자신의 마음과 화해하게 된다.

발레리나를 주로 그렸던 드가가 그린 <발렐리 가족> 초상화는 화목한 모습을 보여주는 가족 사진과 달리 현실의 불행한 가족 관계를 그대로 나타낸 그림이다. 가족 간의 미묘한 감정을 읽을 수 있는 그림이다. 현실 속 가족은 가족사진 속 모습처럼 서로 화목한 모습만을 하고 있지 않다. 서로 반목하고 화합하거나 혹은 이별하는 과정을 통해 가족은 해체되기도 한다.

불행한 결혼을 묘사한 윌리엄 퀼러 오차드슨의 삼연작은 귀족 사회의 정략결혼으로 인한 불행한 결혼 생활을 표현한다. 결혼 삼연작으로 불행한 결혼 생활을 표현했다면, <아내의 목소리>는 노래 부르는 딸의 목소리를 듣고 아내를 그리워하는 신사를 그려 서로 사랑했던 부부의 모습을 표현한다.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결혼은 할 수 있다. 하지만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 사랑이 함께 해야 한다. 오차드슨은 그림을 통해 상류사회의 사랑 없는 정략결혼의 실태를 비판하고 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 가장 그리운 것은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아무도 없이 조용한 곳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잠을 자고 싶다.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오히려 더 많이 외로울 때가 있다. 그렇기에 호퍼의 <밤을 새는 사람들>과 다른 작품들을 보면서 그곳에 혼자 있는 사람들에게서 편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늦은 밤 외딴 식당에 홀로 등을 지고 앉아 있는 남자와 홀로 사무실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는 남자를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봤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또 그만큼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나에게 홀로 외따로 떨어져 보내는 시간은 쉼의 시간이다.

<타인과의 화해>는 살아가는 동안 맺게 되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에게 위로를 받고 사람으로 인해 상처를 받는다. 관계란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기에 더 힘들다. 타인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들을 소개하는 <타인과의 화해>를 읽고 작품을 보면서 나와 내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관계는 계속 된다.

 

<사회와의 화해>는 밀레, 로댕, 메리안, 콜비츠, 고야, 조던, 해링, 무리요, 가우디의 이야기다.

로댕의 작품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가 있다. 너무 늦게 안 것일까? 내가 알았을 때는 로댕 작품의 마지막 전시였다.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아 아이들을 데리고 <지옥의 문><칼레의 시민>을 보고 왔다. 지금도 다시 보러 가고 싶지만 볼 수 없어 아쉽다.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은 영국군에게 항복한 칼레의 시민을 대표해 죽음을 맞이하러 가는 인물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표현되어 더 마음을 흔드는 작품이다. 우리와 닮은 인간적인 그들의 모습에 그들의 용기가 더 깊이 있게 다가온다. 죽음의 두려움에도 시민을 대표해 앞으로 나선 그들의 모습에서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현모양처의 대명사로 알려진 신사임당은 이 이미지로 인해 시서화에 능했던 능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뛰어난 능력이 있더라도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양 여성들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환경에서도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은 무능력한 남편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면서 생계를 책임졌다. 남자들만이 정부나 기업의 후원을 받을 수 있었던 시대에 스스로 자금을 마련해 52세의 나이에 딸과 함께 생태를 관찰하기 위해 정글로 향한다. 이 연구를 수리남 곤충의 변태로 출간한다. 메리안은 정글에서의 생활을 통해 식민지민들의 비참한 생활을 목격하고 이를 비판하는 보고서를 쓰기도 한다. 여성이 자유롭게 교육을 받고 움직이기 어려웠던 시대에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준 두 여인은 자유로운 환경에서 살아가면서도 아무 도전도 하지 않고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고 사형선고를 받은 아들의 수의를 만들어 보낸다. 케테 콜비츠는 노동자의 아픔을 외면하지 못했고, 전쟁으로 아들과 손자를 잃은 고통 앞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반전운동을 펼친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와 같은 제목의 조각 케테 콜비츠의 <피에타(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 앞에서 비통한 어머니의 모습을 표현한다. 아들의 죽음 앞에 의연한 어머니는 없다. 잃어버린 새끼를 찾아 배를 쫓던 어미 원숭이는 새끼를 잃은 고통으로 인해 창자가 모두 끊어진 채 죽었다는 고사가 있다. 그렇듯 어머니에게 자식의 죽음은 창자가 끊어지는 것처럼 고통스럽다. 이런 고통을 견디면서 아들을 잃은 조마리아 여사는 아들의 뜻을 이어 독립운동가가 되었고, 케테 콜비츠는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일을 계속했다. 조국의 광복과 전쟁이 끝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조마리아 여사와 콜비츠는 같은 시대를 살면서 자식 잃은 고통을 견디고 더 나아가 모두를 위해 살다 간 위대한 어머니다.

고야는 자식을 잡아먹는 사티루누스의 그림으로 강렬하게 각인된 화가다. 그림을 통해 권력자들의 오만함과 전쟁의 참상을 알린 화가 고야는 마지막 순간까지 붓을 놓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시대를 외면하지 않고 그림 속에 메시지를 담아 전달한 고야와 같은 사람들이 있어 전쟁의 무자비한 폭력은 묻히지 않고 전해질 수 있었다.

<사회와의 화해>의 화가들은 자신과 타인과의 화해를 넘어 사회를 위해 작품 속에 메시지를 담는다. 사회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잘못된 것을 비판하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작품을 통해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킨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루소는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사람이 되었고, 미술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못했다는 작가 김지연은 전문가 못지않은 작품해석과 자신의 일상을 접목시켜 그림과 심리를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의 저자가 되었다. 그렇기에 루소의 그림과 김지연 작가의 해석이 더 가깝게 다가오고 더 쉽게 이해되고 읽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김지연 작가가 자신의 시선으로 해석했듯 내가 그림을 보고 평가하는 기준은 철저히 내 위주다. 그림에 대한 지식도 얇고 좁아 그림을 평가한다는 것은 감히 엄두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림을 보고 감상하는 건 즐겁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마음과 눈이 가는대로 따라가면서 그림을 보고 마음에 드는 그림을 찾는다. 매료된 그림을 소유하고 싶은 강렬한 열망이 들 때가 많지만 주머니 사정이 허락지 않아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발걸음을 돌린다. 마음 속 주머니에 그림과 화가와 나의 마음을 차곡차곡 담아 놓는다.

 

그림으로 화해하기를 읽고 그림과 화가의 삶을 통해 나, 타인, 사회와 화해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세상은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책은 예술가의 삶과 마음을 작품과 함께 설명한다. 미술과 심리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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