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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산문선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56
조지 오웰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9월
평점 :
영국인 에릭 아서 블레어는 학교를 졸업하고 버마의 경찰이 되었다.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 지배에 회의감을 느끼고 경찰 생활을 그만둔 후 어린 시절부터 예감한 작가가 되어 글을 쓰기 시작한다. 블레어는 조지 오웰이 되어 잘못된 사회와 이념을 비판하고 민주 사회주의를 주장한다. 조지 오웰은 간결한 문체와 정확한 묘사로 『동물 농장』, 『1984』에서 사회의 압제와 독재자들을 비판한다. 최하층민의 삶을 직접 경험하고 자신의 이념을 위해 스페인 내전에 직접 참전했던 행동하는 작가 조지 오웰의 글들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생각이 언어를 오염시킨다면 언어 역시 생각을 오염시킬 수 있다.’(183)
조지 오웰은 <정치와 영어>에서 생각이 언어를 오염시키고, 언어 역시 생각을 오염시킬 수 있다고 한다. 『조지 오웰 산문선』에 실린 글에서 조지 오웰의 생각은 어떤 언어로 나타나는지, 그가 쓰는 언어로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찾아보려 한다.
‘나는 아주 어린 나이에, 아마도 대여섯 살 때부터 내가 자라서 작가가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7페이지)
1946년에 집필한 <나는 왜 쓰는가>(1931년)에서 조지오웰은 글을 쓰는 동기로 ‘순전한 자기만족,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의 네 가지 동기를 말한다. 오웰은 순전한 자기만족,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에 의해 글을 쓰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네 번째 동기인 정치적 목적이 함께 해야 괜찮은 글을 쓸 수 있다고 한다. 글을 쓸 때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글을 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반대 진영의 비난과 무차별적인 공격을 견딜 수 있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나는 왜 쓰는가>와 함께 글쓰기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글은 <정치와 영어>(1946년)다.
최악의 글쓰기는 의미 전달을 위해 단어를 고르지 않고 의미를 뚜렷하게 만들기 위해 심상을 만들어 내지도 않는다. 조지 오웰은 신중한 작가라면 문장을 쓸 때마다 ‘나는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그것을 표현할 단어는 무엇인가’, ‘그것을 더 명확하게 만들 심상이나 관용어는 무엇인가’, ‘효과가 있을 만큼 신선한 심상인가’를 질문해야 한다고 한다. 여기에 더불어 ‘조금 더 짧게 쓸 수 있을까’, ‘피할 수 있는데도 꼴사납게 쓴 부분은 없을까’를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명료한 언어의 가장 큰 적은 부정직함이다. 실제 목표와 겉으로 내세운 목표가 다른 사람은 먹물을 내뿜는 오징어처럼 긴 단어와 낡아 빠진 숙어에 거의 본능적으로 의존한다.-중략-
기성문구들이 우리의 정신에 침입하는 것을 막으려면 끊임없이 경계해야만 한다. 이러한 문구 하나하나는 우리의 뇌를 조금씩 마비시킨다.‘(183~184페이지)
전달하고 싶은 의미를 나타내는 가장 짧은 단어를 가장 적게 사용한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필요한 의미에 따라 단어를 선택하도록 해야지 단어에 따라 의미를 끼워 맞춰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산문에서 단어를 다룰 때 할 수 있는 최악의 행동은 단어에 굴복하는 것이다.(186페이지)
조지 오웰은 정치적 혼돈이 언어의 부패와 관련 있기 때문에 언어 문제부터 바로잡아야 정치적 혼돈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언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본적인 글쓰기 원칙은 다음과 같다.
글쓰기 원칙(187페이지, <정치와 영어>)
1. 글에서 자주 본 은유, 직유, 기타 비유적 표현을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2. 짧은 단어로 충분할 때는 긴 단어를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3. 어떤 단어를 뺄 수 있을 때는 항상 뺀다.
4. 능동태를 쓸 수 있을 때는 수동태를 절대 쓰지 않는다.
5. 같은 뜻의 일상 영어가 생각나면 외래어 문구, 과학 용어, 전문 용어를 절대 쓰지 않는다.
6. 아주 상스러운 말을 하느니 차라리 위의 원칙을 어긴다.
영어를 간결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함을 <정치와 영어>에서 오웰은 주장하고 있다.
<사자와 유니콘 : 사회주의와 영국의 특질>(1941년)은 조지 오웰이 바라본 영국의 모습이다.
조지 오웰이 바라본 영국은 예술적 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나라다. 계급문제가 가장 심한 나라이고, 속물근성과 특권의 나라이며, 늙고 멍청한 자들이 나라를 다스린다. 영국은 위기의 순간 모두가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똑같이 행동한다. 오웰은 영국을 자기들만의 언어와 공동의 기억이 있고 적이 다가오면 일치단결하는 가족으로 표현한다. 영국 사회와 정치, 법률, 지배층에 대해 적고, 무능력한 지배층을 비판하고 영국의 사회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적고 있다. 조지 오웰이 이 글을 쓴 것은 1941년이기 때문에 이 당시의 영국의 모습과 현대의 영국의 모습은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우리의 유산에 무언가를 더 보태지 않으면 잃을 것이고, 더 크게 성장하지 못하면 작아질 것이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뒤로 물러나게 될 것이다. 나는 영국을 믿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리라고 믿는다.(286페이지, <사자와 유니콘 : 사회주의와 영국의 특질>)
<코끼리를 쏘다>(1936년)는 버마 경찰로 근무할 당시 제국주의의 한계를 깨닫게 한 사건이다. 버마 경찰 생활을 하던 조지 오웰은 반 유럽 정서가 강한 지역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괴롭힘의 대상이 된다. 어느 날 코끼리 한 마리가 난동을 부리면서 집을 부수고 사람을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군중들의 무언의 의지에 의해 코끼리를 죽이고 싶지 않았음에도 총으로 코끼리를 죽인다. 그는 지배를 하고 있는 서양인들이 원주민들의 뜻에 따라 떠밀리는 어리석은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고, 결국 백인이 독재자로 변할 때 파괴하는 것은 백인 자신의 자유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식민지를 지배한 백인들은 자신들이 승자라 생각하고 있지만 오웰은 그것이 얼마나 오만한 착각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결국 식민지의 주인은 제국주의자들이 아닌 그 지역의 원주민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난동 부리는 코끼리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제국주의가 결국 빈껍데기에 불구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버마 경찰을 그만둔 후 직접 보고 들은 내용으로 글을 써보라는 지인의 말을 듣고 조지 오웰은 영국에서 부랑자 생활을 하고, 프랑스 파리에서 육체노동을 경험한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직접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부랑자 임시 수용소>(1931년)와 <가난한 이들은 어떻게 죽는가>(1946년)을 쓴다. 조지 오웰은 빈민들을 구제하기 위한 제도의 문제점과 비위생적이고 열악한 환경에 놓인 빈민들의 현실을 고발한다.
<부랑자 임시 수용소>(1931년)는 영국의 부랑자 임시 수용소의 경험을 적은 글이다. 오웰은 부랑자 생활을 할 때 밤이 되면 부랑자 임시 수용소로 향했다. 영국 정부는 밤과 주말에 부랑자들을 임시 수용소에 가둬놓고 열악한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한다. 부랑자들이 임시 수용소에 갇힌 시간 동안 영국은 부랑자 없는 깨끗한 거리가 된다. 오웰은 수용소 안 강제 노역소 부엌에서 버려지는 음식들을 부랑자에게 나눠주지 않는 정부의 정책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같은 부랑자이지만 목수인 남자는 음식을 나눠주면 부랑자들이 더 많이 몰려올 것이기 때문에 버리는 것이 맞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은 공구를 구할 돈이 없어 부랑자로 사는 것일 뿐 다른 부랑자들과는 다르다고 선을 긋는다. 당시의 영국인들이 부랑자들을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오웰은 부랑자 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임시 수용소의 열악한 환경과 잘못된 정책을 비판한다.
<가난한 이들은 어떻게 죽는가>(1946년)는 폐렴으로 파리의 한 병원에 입원했던 경험을 적은 글이다. 긴 병동은 침대들이 다닥다닥 붙어 옆 환자의 악취까지 맡아졌다. 의사와 의대생이 어떤 환자의 등과 가슴에 뜨겁게 데운 진공상태의 잔을 붙이는 부항치료법으로 치료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들은 오웰에게 와서 소독도 하지 않은 잔을 사용해 저항하는 그에게도 부항 치료를 한다. 부항 치료를 한 후 겨자 습포를 가슴에 올리고 구속복으로 묶는다. 무료 진료를 받는 대가로 환자들은 의대생들의 실험 대상이 된다. 이들에게 환자의 동의는 중요하지 않고, 하루에 몇 명의 환자가 죽어나가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병원의 음침함과 삭막함, 역겨운 악취, 병원의 분위기 때문에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오웰은 악명 높은 파리 X병원의 불결한 환경과 비인간적인 행태에 질려 걸어 다닐 수 있을 만큼 나아지자 병원 허가 없이 그냥 도망친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만든 공공의료시설 의료진의 비인간적인 태도와 병원의 비위생적인 환경을 비판한다.
<영국 살인 사건의 쇠퇴>(1946년)는 사람들의 이목을 끈 살인사건을 통해 전쟁의 영향으로 변한 사회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조지 오웰은 전쟁 당시 이목을 끈 <갈라진 턱 살인 사건>은 법적, 사회학적 관점에서는 흥미롭지만 사건 자체는 천박한 사건이라 표현한다. 갈라진 턱 살인 사건의 범죄자는 열여덟 살 여성 웨이트리스 엘리자베스 존스와 미국 탈영병 남자 칼 헐튼이다. 우연히 만나 아무 이유 없이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이 사건 이전의 살인사건들은 범죄자의 대부분이 중산층이고, 피해자는 대부분 살인자의 아내나 남편이고 섹스, 체면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 살인 사건의 경우 살인 동기가 있었고, 그렇기에 살인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사람들은 동정심을 갖게 됐었다. 하지만 이 살인 사건의 경우 사람들은 살인자들을 동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자는 사형, 여자는 징역형의 판결이 내려진 후 분노한 사람들은 여자를 교수형에 처할 것을 요구한다. 대중의 반감으로 인해 줄어들었던 교수형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조지 오웰은 부분적으로는 전쟁의 야만화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안정적인 사회에서 사회에 퍼져 있던 위선은 살인 뒤에는 강렬한 감정(살인 동기)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것이라고 한다. 강렬한 감정이 빠진 이유 없는 살인 사건인 갈라진 턱 살인 사건을 조지 오웰은 천박한 살인이라 말하고, 제목을 <영국 살인 사건의 쇠퇴>라 적고 있다. 살인을 바라보는 대중의 태도는 그 당시의 사회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년 주간지>(1940년)는 소년주간지를 시대별로 나누어 잡지별 차이점과 공통점을 분석해 놓았다. 이 글을 읽고 나면 소년 주간지에 대해 대략적인 것들을 다 알 수 있다. 유통범위가 좁고 주제가 특수한 주간지는 영국 대중의 진정한 감정과 생각을 잘 드러내 준다. 소년주간지는 영국 모든 도시에서 판매되고 글을 읽는 모든 소년들은 주간지를 한 권 이상 읽는다. 소년주간지는 외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내용과 현 시대와 동떨어진 옛 시대와 관련된 내용들만을 적고, 노동자 계급의 현실에 대한 내용은 외면한 채 중요한 사실들로부터는 시선을 완전히 돌리고 있다고 말한다. 소년지를 읽은 소년들은 우리 시대의 중요한 문제들은 존재하지 않고, 자유방임 자본주의는 잘못되지 않았으며, 외국인은 하찮고 우스운 존재이고, 대영 제국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주입 당한다. 조지오웰은 소년 주간지들의 속물근성과 저속한 애국심을 주입시키는 행태를 비판한다. 언론의 역할은 진실을 전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 속 언론은 자신들이 전달하고 싶은 것만을 전달하고, 어떤 언론들은 왜곡된 사실마저도 진실처럼 만들어 전달한다. 조지 오웰은 이러한 언론을 비판한다.
<즐겁고도 즐거웠던 시절>(1947년)은 사립학교에서의 생활을 적고 있다. 장학생으로 명문 학교에 진학해서 학교의 명성을 높여 줄 만한 아이들은 저렴한 학비로 입학이 가능했는데 조지 오웰도 그들 중 하나였다. 학교에서의 기억은 썩 유쾌한 것만은 아니다. 부유한 아이들과 집안 형편이 어려워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에 대한 학교의 대우는 완전히 달랐다. 교장과 교장 부인은 부유한 아이들을 편애하고 그들에게는 매도 들지 않았지만 오웰처럼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는 체벌을 가했다. 아이들 또한 부모의 수입과 별장, 자동차 등에 따라 차별이 가해졌다. 오웰은 30년이 지난 후 요즘 아이들도 학교에서 똑같은 경험을 할까를 질문하고 속물근성에 양분을 제공하는 것은 오늘날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적고 있다. 오웰이 이 글을 쓸 때가 1947년이었고, 약 70년이 지난 2020년대의 학교는 오웰이 학교를 다닐 때처럼 속물근성이 판을 친다. 어린 아이들이 아파트 평수를 질문하고, 임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에 대한 차별의 이야기는 지금도 들려오고 있다. 어쩌면 오웰이 학교를 다닐 때(1915년)보다 현대의 학교가 체벌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속물근성의 양분은 더 많이 제공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웰은 학창 시절의 경험을 ‘즐겁고도 즐거웠던 시절’이라는 제목으로 썼지만, 그의 학창 시절은 전혀 즐겁지 않았다. 요즘 우리 아이들에게 학교생활은 ‘즐겁고도 즐거웠던 시절’이라 말할 수 있을까?
각자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서 어떤 말도 안 되는 것을 믿었는지, 어떤 사소한 일 때문에 고통을 받았는지 생각해 보자.(393페이지, <즐겁고도 즐거웠던 시절>)
『조지 오웰 산문선』에 수록된 글 중에서 9편의 글에 대해 간단하게 적어봤다. <나는 왜 쓰는가>와 <정치와 영어>에서 조지 오웰은 글쓰기와 언어에 대해 이야기한다. <부랑자 임시 수용소>와 <가난한 이들은 어떻게 죽는가>는 글을 쓰기 위해 직접 경험한 부랑자 생활과 육체노동 중 입원한 경험을 바탕으로 빈민시설과 정책을 비판한다. <사자와 유니콘 : 사회주의와 영국의 특질>에서는 조지 오웰이 바라본 영국의 모습을 적고, <코끼리를 쏘다>(1936년)는 버마 경찰로 근무할 당시의 경험을 적고 있다. <영국 살인 사건의 쇠퇴>는 어떤 살인 사건에 반응하는 대중의 모습에서 영국 사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소년 주간지>와 <즐겁고도 즐거웠던 시절>은 주간지를 통해 소년들에게 주입되는 것들과 사립학교에서 자행되는 잘못된 교육을 비판한다. 조지 오웰은 자신의 경험을 적은 글에서 영국 사회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개선되어야 할 점을 이야기한다. 조지 오웰의 글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사람들의 표정과 감정과 행동을 자세하게 서술하고, 상황과 주변 풍경 등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음에도 그 많은 내용을 전달하는 글은 쉽게 이해되고 읽힌다. 그 안에서 조지오웰의 감정까지도 나에게 전이되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