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속뜻 논어 - 전광진 교수가 드라마로 엮은
전광진 지음 / 속뜻사전교육출판사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반부논어, 치천하(논어 반만 읽어도 천하를 다스린다.)”(429페이지, 중국 속담)

송나라 개국공신이자 재상 조보는 어린 시절에 가난한 형편으로 인해 책을 읽을 수 없어 논어만 읽었다고 한다. 두 임금을 모시고 태평천국의 기반을 닦은 그는 “논어 20편 가운데 나는 반 밖에 읽지 못했소! 그래도 태조 임금이 천하를 평정하는 일을 보좌할 수 있었소!”(429페이지)라고 대답한다. ‘반부논어, 치천하’는 유학 통치의 명언으로 지금까지 전해 오고 있다.

한자가 어려운 나와 같은 사람은 논어를 읽고 싶어도 선뜻 도전하지 못한다. 『우리말 속뜻 논어』는 논어를 더 쉽고 깊이 있게 읽을 수 있도록 왼쪽 페이지에는 우리말 번역 논어를, 오른쪽 페이지에는 한문 논어를 실었다. 구성은 총 20편 498장으로 되어 있고, 드라마 대본처럼 대화 형식으로 쓰였다. 우리말로 쉽게 옮겨놓아서 우리말 논어만 읽어도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한문 원문을 우리말 논어로 번역할 때 문장이 자연스럽게 읽히도록 추가해준 내용 덕분에 글을 읽는 것이 더 쉬웠다. 한문 원문의 상황에 추가 설명을 다른 색으로 괄호 안에 적어놓아서 문답이 어떤 상황에서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이해가 잘 되었다. 인물이나 상황 설명을 추가로 적어주어서 내용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우리말 번역 논어를 읽고 그 내용에 대한 나의 해석과 생각을 적어보려 한다.

 

논어의 첫 시작은 ‘제 1편 학이’다.

<제 1편 학이>

“배우며 때맞추어 복습하면 그 또한 기쁘지 아니하랴!

먼 곳에서 친구가 찾아오면 그 또한 즐겁지 아니하랴!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그 또한 군자가 아니랴!“(28페이지, 제 1편 학이)

논어를 말할 때 빼놓지 않고 나오는 것이 학이편이다. 배우고 복습하니 즐겁고, 친구가 찾아오니 즐겁고,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 군자의 도리를 이야기한다. 나는 군자는 아니지만 배우고 친구를 만나면 즐겁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그 또한 나는 즐겁다.

 

<제 2편 위정>

“내가 15살에는 배움에 뜻을 두었고(지우학),

30살에는 [예법을 알아 세상에 바로] 서게 되었다.(이립)

40살에는 미혹에 사로잡히는 일이 없고(불혹),

50살에는 하늘이 준 운명을 알게 되었다.(지천명)

60살에는 [무슨 말이라도] 귀에 순하게 들리고(이순),

70살에는 내키는 대로 해도 사람의 도리에 벗어나지 않게 됐다.(불유구)

(42페이지, 44페이지, 제 2편 위정)-공자는 73세에 세상을 떠난다. 그래서 70살까지만 이야기한다.

공자가 자신의 일생을 정의해 놓은 것을 읽고, 나의 일생을 돌아보면 공자처럼 큰 인물이 되기에 나는 엄청나게 멀어도 한참 먼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는 생각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나는 배움에 뜻을 두고 예법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쉽게 미혹되는 사람이다. 나이가 더 들어도 하늘이 준 운명을 알기에는 부족하겠지만 공자처럼 무슨 말이라도 귀에 순하게 들리고, 도리에 벗어나지 않는 사람으로 곱게 나이 들고 싶다. 공자가 73세 이상을 살았다면 80세, 90세, 100세는 어떤 말로 정의를 내렸을지 궁금하다.

 

<제 4편 이인>

“군자는 천하의 모든 일에 대하여 긍정도 없고, 부정도 없다. 

오직 옳은 일이면 따를 따름이다.”(84페이지, 제 4편 이인)

군자는 모든 일에 긍정도 부정도 없이 옳은 일이면 따른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옳다’는 기준은 어떻게 정하는 것일까? 긍정하거나 부정하지 않는 다는 것은 나의 의견을 말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견보다는 옳은 일을 따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말일까? 논어를 읽다 보면 우리말 번역본임에도 불구하고 읽고 바로 이해되는 부분들도 있지만, 이 부분처럼 읽으면서 의문점이 드는 부분들도 있다. 읽으면서 의문점이 들 때는 혼자 읽고 끙끙거리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자리가 없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설 수 있을지를 걱정하라.

아무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알아줄 만한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한다.“(86페이지, 제 4편 이인)

설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도 자리가 없으면 갈 수 없다. 알아줄 만한 사람이 되도록 최선을 다했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무슨 소용일까? 공자의 말에 자꾸 삐딱하게 답을 하는 나는 비정상인걸까?

 

<제 5편 공야장>

“예전에는 내가 남의 말을 들으면 그의 행실을 말 그대로 믿었다.

이제는 남의 말을 들어도 다시 그의 행실을 살펴보게 되었다.“(102페이지, 제 5편 공야장)

사람을 판단할 때 그 사람을 직접 겪어보지 않고 다른 사람을 통해 듣고 판단하게 되면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사람을 판단할 때 남의 말을 듣고 참고는 하되 내가 직접 겪어본 후 판단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래야 남의 말만 듣고 판단했을 때보다 더 정확하게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공자의 말도 내가 직접 보고 판단하라는 말이라 생각한다.

 

<제 6편 옹야>

“안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130페이지, 제 6편 옹야편>

공부를 하고 알게 되면 공부가 더 좋아진다. 좋아하니 공부를 더 즐겁게 할 수 있게 된다. 궁금한 것이 많아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책을 읽고 공부를 한다. 공부를 하면서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서 안다는 것의 즐거움을 깨닫게 된다. 그렇기에 알고, 좋아하고, 즐거워 한다는 것은 순서와 상관없이 서로 순환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알아서 좋고 좋아서 즐겁다와 즐거워서 좋고 좋으니 알고 싶다. 이 두 가지가 결국 하나라고 생각한다.

 

<제 7편 술이>

“깨치려고 애태우지 아니하면 열어주지 않고,

표현 못해 애태우지 아니하면 말해 주지 않는다.

한 모퉁이를 들어주어 셋을 알아채지 못하면,

반복해서 말해 주지 않는다.“(146페이지, 제 7편술이)

깨우치고 표현을 잘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이라 해석된다. 네 모 가운데 한 모퉁이를 들어주어 셋을 알아채지 못하면 반복해서 말해 주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를 알려주면 나머지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깨우치라는 말인 듯하다. 논어를 읽고 혼자서 해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해석한 것이 맞는지 알 수 없으니 답답하다. 공부란 혼자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럿이 같이 하는 것도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혼자만의 공부는 혼자만의 해석으로 자칫 편협한 생각에 갇힐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자의 제자들이 혼자서 하는 공부가 어렵기에 공자를 찾아와 질문하고 가르침을 받은 것도 나와 같은 이유일 것이라 생각한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자기의 스승 될 만한 사람이 있다.

좋은 점은 가려서 그를 따르고,

좋지 아니한 점은 고쳐야 한다.“(154페이지, 제 7편 술이)

누구에게서나 배움을 얻을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좋은 점은 본받아 따르고, 좋지 않은 점은 만약 나에게도 그와 같은 것이 있다면 남을 교훈 삼아 고쳐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좋은 점을 보여 그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제 9편 자한>

“우리 선생님은 다음 네 가지를 특히 강조하셨습니다.

억측하지 말 것!

독단하지 말 것!

고집하지 말 것!

자만하지 말 것!“(186페이지, 제 9편 자한)

공자의 제자는 공자가 특히 강조한 네 가지를 이야기한다. 억측하게 되면 무엇인가를 잘못 해석해서 오해를 하게 되고, 독단하게 되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귀 기울이지 않고 나의 생각만을 고집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신만이 옳고 잘났다고 자만하게 된다. 이런 사람과 어떤 사람이 같이 하고 싶겠는가?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함께 하기 위해서 공자의 말처럼 억측, 독단, 고집, 자만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산을 쌓음에 비유하면, 흙 한 삼태기가 모자라 그쳐도, 내가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땅을 평평하게 고름에 비유하면, 흙 한 삼태기라도 덮는 진전이 있어도,

내가 그만두지 않았기 때문이다.“(196페이지, 제 9편 자한)

산을 쌓는 일은 어렵고 오래 걸리는 일이다. 오랫동안 힘들게 했더라도 마지막 ‘흙 한 삼태기’가 모자라 그친다는 것처럼 이루고자 하는 뜻에 가까이 갔더라도 포기한다면 그건 내가 그만두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땅을 평평하게 고르는 일은 쉬어보이지만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흙 한 삼태기’처럼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뜻을 이룰 수 있다는 말로 해석된다. 포기하고 시작하는 것 모두가 나의 의지이고 결국 모든 것이 나의 책임이라 생각한다. 모든 것이 내가 하기 나름이다.

 

<제 12편 안연>

“식량을 풍부하게 비축하는 것, 무기를 충분히 갖추는 것, 백성들을 믿고 따르게 하는 것,

이 세 가지가 정치의 요체이다.”(250페이지, 제 12편 안연)

제자 자공이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는 식량을 비축하고 무기를 충분히 갖추고 백성들을 믿고 따르는 것이라 답한다. 식량은 경제적인 안정을 말하는 것, 무기는 군사력을 강화해 군사적 강국이 되어 다른 나라의 공격으로부터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백성들을 믿고 따르게 하는 것은 곧, 바른 정치를 해서 민심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말함이라 생각한다. 공자는 무기, 식량, 백성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백성이라 말한다. 백성들을 배불리 먹이고 안전하게 보호하고 백성의 말에 귀 기울일 때 진정한 정치를 한다고 할 수 있다.

 

<제 14현 헌문>

“군자의 도는 세 가지가 있다. 나는 능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인자는 근심하지 아니하고,

지자는 미혹되지 아니하고,

용자는 두려워하지 아니한다.“(308페이지, 제 14편 헌문)

공자는 군자의 도 세 가지를 말하면서 자신은 능한 것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인자는 근심하지 않고, 지자는 미혹되지 않고, 용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근심하고 쉽게 미혹되고 겁도 엄청 많다. 그렇기에 나는 군자의 도에 그 무엇도 능한 것이 없다.

 

<제 16편 계씨>

“이로운 세 벗이 있고, 해로운 세 벗이 있으니,

정직한 이를 벗하고, 성실한 이를 벗하며, 유식한 이를 벗하면 이로울 것이다.

편벽한 이를 벗하고, 유순한 이를 벗하며, 말 재주꾼을 벗하면 해로울 것이다.“

(350페이지, 제 16편 계씨)

이로운 벗과 해로운 벗. 내 곁에는 이로운 벗이 있을까, 해로운 벗이 있을까? 나는 이로운 벗일까, 해로운 벗일까? 내 곁에 있는 벗이 이로운지, 해로운지를 돌아보기 전에 나 스스로가 이로운 벗인지, 해로운 벗인지를 돌아보는 것이 먼저라 생각한다.

 

논어를 읽고 발췌를 하고 싶은 내용을 적고 나의 해석을 간단하게 적어보았다. 다 읽고 난 후 왜 논어를 100번 읽으라 했는지 알 것 같다. 이해하고 해석하면서 읽었지만 중간 중간 혼자서 이해하기에 어려운 내용들도 있었고, 나의 해석이 맞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논어를 읽으면서 공감되는 부분들도 많지만 어떤 부분들은 공자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는 내용들도 있었다. 그런 내용이 나오면 의문과 더불어 삐딱하게 반감이 들어 반박하게 된다. 공자의 말씀을 읽고 해석하고 나의 생각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 즐겁다. 나의 해석이 맞는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논어는 혼자 읽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읽기를 통해 서로의 해석을 비교해가면서 읽기를 추천한다. 더 깊이 있는 논어 읽기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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