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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마더 ㅣ 보리 만화밥 10
박소림 지음 / 보리 / 2020년 9월
평점 :
엄마가 되었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이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고 많은 시간과 체력이 필요한지 몰랐다. 황달로 한 달을 병원에 있다 품으로 돌아온 아이를 만난 지 채 몇 시간도 되지 않아 나와 남편은 영혼이 탈탈 털렸다. 밤을 지나 새벽이 넘은 시간까지 잠을 자지 않고 보채는 아이를 안고 어르는 시간은 고통 그 자체였다. 쏟아지는 잠을 겨우 겨우 참아내면서 아이를 달래고 젖을 먹여야 했고, 날이 밝을 때쯤에서야 잠을 잘 수 있었다. 다음 날 출근해야 하는 남편은 잠을 자고 나 혼자 밤새 아이를 달래야 하는 시간은 계속됐다. 거의 미칠 지경이 되어갈 즈음 친정 엄마에게 가서야 아이의 잠버릇을 고쳐왔다. 5개월은 나에게 지옥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아이에게 화를 내고 있는 나의 싸늘한 모성에 죄책감을 느끼면서 우울증은 깊어 갔다. 아이 돌보면서 집안일을 하고 퇴근해서 돌아오는 남편까지 챙기느라 나라는 존재는 희미해져갔다. 『좀비 마더』를 보면서 아이가 칭얼거리는 소리에 깨어 잠이 취한 상태로 아이 분유를 타는 엄마의 모습이 나의 모습 같아 슬펐다. 엄마가 안쓰러워 내가 대신 분유 먹일 테니 들어가서 자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좀비 마더』라는 제목을 봤을 때는 좀비처럼 이성을 잃어버린 엄마인가 짐작했다. 표지에서 살짝 열린 문틈으로 반쯤 드러난 얼굴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는 없지만 무언가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뒤로 보이는 집 안은 까맣게 칠해져 있어 더 어두운 느낌이다.
어느 날 자신의 죽음을 알게 된 엄마는 사실을 숨긴 채 아이를 돌본다. 사람들이 알아볼까봐 외출을 하지 못했지만, 사람들이 남의 일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걸 알고 난 후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아이와 남편이 잠이 들면 홀로 맥주를 마시면서 맘까페에 들어가 다른 엄마들의 사연을 읽는다. 엄마들의 쪽지가 나온 페이지를 읽으면서 울컥했었다. 아이 낳고 내 편이 아무도 없는 것 같아 외로운 엄마는 살찐 자신의 모습이 싫어 처녀 적 잘나가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어떤 엄마는 아이 재우고 맥주 한 캔 마시려는 순간 아이가 깨서 운다고 말하고, 시어머니 때문에 힘든 엄마, 분노 조절이 안돼서 미친 듯이 아이에게 화를 낸다는 엄마, 아이 낳고 남편과 사이가 멀어졌다는 엄마 등 육아로 힘든 사연들이 올라온다. 첫 아이 키울 때도 힘들었지만, 2년 터울로 둘째 아이까지 낳아 두 아이를 키울 때는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맘까페의 사연들이 모두 내가 겪었던 일들이라 엄마들이 안쓰럽고 마음이 아팠다.
『좀비 마더』에는 좀비가 된 엄마와 또 다른 좀비가 된 엄마가 등장한다. 어느 날 아이만 두고 엄마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아이를 업은 남편은 울면서 아내를 찾아 달라 하소연 하지만 경찰도 별 방법은 없어 보였다. 몰려든 사람들 넘어 두 엄마의 시선이 마주친다. 서로가 좀비라는 걸 알아차린 엄마들은 서로를 외면한다. 우연히 놀이터에서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서로가 좀비인지 묻지 않고 일상의 이야기만 나눈다.
그리고 또 다른 좀비가 된 사람들이 등장한다. 가장의 책임감의 무게에 눌려 회사 생활을 하던 남편은 엄마보다 먼저 좀비가 되어 있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맞벌이 아들 내외를 대신해 손자와 손녀를 보면서 집안일까지 하면서 살고 있는 할머니도 좀비다. 하지만 할머니는 자신이 좀비라는 사실을 모르는 듯하다.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퇴근 후 매일 술을 마시던 좀비 마더의 친정아버지도 좀비였을 것 같다. 좀비 마더의 이상한 걸음걸이를 지적한 아이를 야단쳤던 아이 엄마도 좀비 마더가 좀비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해서 혹시 이 엄마도 좀비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만나면 며느리 흉을 보고 ‘살 빼라, 일하러 나가라, 둘째 얼른 낳아라 등등’ 잔소리를 하는 할머니를 엄마들은 싫어하고 피한다. 딸을 괴롭히는 할머니 손녀로 인해 싸움까지 한 후 좀비 마더 또한 할머니를 싫어한다. 하지만 손녀가 자기 때문에 다친 일로 며느리의 무언의 비난에 상처 받은 할머니의 힘없는 모습에 마음이 약해진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요구르트를 건네면서 할머니가 좀비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할머니에게 말하지는 않는다.
‘좀비’는 자아가 없고, 몸만 살아서 오직 본능으로만 움직이는 생명체라 생각했다. 하지만 좀비가 된 엄마는 자신을 위해 살아가지는 못하지만 자아가 뚜렷하고 아이에 대한 사랑이 넘친다. 상처 받은 할머니의 마음을 신경 쓰고 할머니를 위로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다. 『좀비 마더』를 읽으면서 ‘좀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박소림 작가는 왜 엄마와 아빠, 황혼 육아 중인 할머니를 좀비로 설정했을까? 영화 속 좀비와 다르게 작품 속 좀비가 된 사람들은 사람들 사이에 섞어 눈에 띄지 않고, 자기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좀비의 모습은 자신은 챙기지 않고 아이와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존재의 이유가 가족인 사람들을 표현한 건 아닌가 짐작된다. 좀비가 된 사람들이 사람들 사이에 섞여 생활할 수 있는 건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한 사람들 덕분이다. 덕분이라고 하기에는 참 슬픈 일이지만, 그로 인해 이들이 살아갈 수 있으니 덕분이라고 해야겠다.
사람들이 좀비가 된다는 이야기가 현실감 없는 이야기 같지만 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현실감 있게 읽혔다. 독박육아 중인 엄마,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아빠, 황혼 육아 중인 할머니, 맞벌이로 아이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 일하는 엄마, 사교육에 열 올리는 엄마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못해 동생에게 부담을 줬던 언니 등. 이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다. 이들 중 누군가는 좀비이거나, 어쩌면 모두가 좀비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