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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투기의 역사 - 계층 사다리를 잇는 부를 향한 로드맵, 개정판
에드워드 챈슬러 지음, 강남규 옮김 / 국일증권경제연구소 / 202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은행에 가면 많은 투자 상품이 있다. 몇년전에 브릭스 펀드에 가입한 적이 있다. 그 당시에 브릭스(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 공화국)펀드와 비슷한 해외 투자 펀드가 유행했었다. 주변에서 펀드를 가입했다는 얘기들이 들려 은행에 가서 상담을 한 후에 가입한 펀드이다. 1년 6개월 정도 납입하다 해지했을 때 다행히 손해는 없었지만, 수익은 몇 만원에 불과했다. 펀드를 가입할 때 은행 직원은 손실이 있을 수 있고 손실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동의한다는 서명을 받았었다. 투자자에게 모든 손실이 돌아가는 펀드는 손실을 감안하더라도 그 당시에 펀드 수익률이 좋아 가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TV나 신문 등에는 투자 전문가들의 투자 성공담이 연일 보도됐었고, 여러 가지 금융상품들이 소개됐었다. 투기열풍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금융정보를 홍보하는 것이다. 금융정보가 더 많이 더 넓게 더 빨리 알려지면서 수많은 투자자들이 몰렸다. 신문, 라디오, 인터넷 등의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로 금융정보는 많은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투기세력과 언론의 유착으로 과장 광고가 쏟아져 나왔고, 개인투자자들은 광고에 홀려 투기 열풍 속으로 들어갔다. 이 모든 것이 나와 같이 어리석은 투자자들을 모으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걸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금융투기의 역사』는 로마시대부터 20세기까지 투기열풍이 일어난 역사를 설명한다. 책을 차근차근 읽어나가다 보면 투기의 역사가 매번 똑같은 양상으로 반복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왜 계속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책을 읽는 내내 이것이 궁금했다.
프로이트와 19세기 심리학자 구스타브 르봉은 무책임성, 성급함, 전염성, 변덕, 상호감응성, 집단최면, 지적 판단력 결여 등을 군중심리의 특징이라고 한다.(316페이지) 이는 버블경제에서 투기꾼들의 심리현상과 비슷하다. 높은 수익을 얻은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도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주식을 사들인다.
대표적인 투기 열풍 중 1690년대 영국의 투기열풍의 과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1690년대 영국의 금융거리 익스체인지 엘리가 들썩인다. 투기 열풍이 불어 닥치면서 주식회사 설립 붐이 일어난다. 투기열풍은 대중심리에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진행 과정에서 일정한 경향성을 띤다. 영국의 명예혁명은 풍요의 시기에 발생한다. 풍작과 무역흑자, 신금융기법과 네덜란드 자본가들의 이민 등으로 번영을 누린다. 동인도회사 등 인가 받은 회사들은 높은 배당을 분배해주고, 투자자들은 높은 수익을 올린다. 의회에서 인가받은 회사의 증가로 익스체인지 앨리에 증권거래소가 설립되고 주식 거래는 급증한다. 스페인 해적선 인양으로 투자자들이 엄청난 수익을 배당받으면서 해저유물 인양 주식회사와 선박기술 특허권을 가진 회사가 설립된다. 투자자들이 몰리지만 인양한 보물이 거의 없으면서 투기 붐은 가라앉는다. 프랑스와의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영국 정부는 복권사업을 추진하고 그로인해 복권열풍이 분다. 전쟁 비용이 재정수입을 초과하면서 정부는 금화의 금 함량을 줄인다. 그로인해 품질이 떨어진 금화가 유통되면서 잉글랜드 북부에서는 폭동까지 일어나게 된다. 신용이 붕괴되면서 정부의 단기채권과 주식은 폭락하고 경제공황이 발생한다. 영국정부는 공황에 대한 책임을 주가조작을 벌인 주식꾼들에게 떠넘기고 브로커와 주식거래업자들을 제한하는 법을 제정하지만 크게 효과를 발휘하지는 못한다.
투기열풍에 이은 폭락, 그로인한 경제공황은 17세기 영국만의 일은 아니다. 시대와 장소만 변할 뿐 투기경향성은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찰스 킨들버거는 투기적 광기가 변화에 의해서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산업이 만들어지거나 수익률이 급등한 산업이 생길 때 사람들은 주식시장으로 몰린다. 투기 열풍이 불면서 새로운 회사들이 만들어지고 주식거래가 늘어난다. 주식에 투자하기 위해 파생상품을 만들고 주식담보대출까지 받으면서 부채의 규모가 커진다. 과열된 투기열풍은 정점에 도달한 후 급락하기 시작한다. 투자자들은 혼란에 빠지고 경제공황이 발생한다. 킨들버거는 투기는 “구체적인 모습은 다양하다. 하지만 구조는 단일하다”라고 말한다.
킨들버거가 말한 변화는 1920년대 ‘새시대’관념과 연결된다. ‘자본주의가 새시대에 들어섰다’는 관념(288페이지)은 투기열풍이 일어나는 시대마다 대유행한다. 1825년 런던 증시 호황기에 디즈레일리가 ‘이 시대’는 과거와 구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세기에는 저널리스트 베이저헛이 “투기가 발생할 때마다 기업인들과 은행가들은 현재의 번영이 더 큰 번영의 시작이기 때문에 영원할 것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1920년대 <뉴욕타임스> 금융 편집장 알렉산더 노이에슨은 “새시대에 살고 있다. 과거의 금융관행과 원칙·규정들은 의미가 없다. 따라서 과거에는 위험하고 불가능했던 일을 이제는 안심하고 추진할 수 있다는 등의 관념 때문에 발생했다.”(288페이지)고 말한다. 새시대 이데올로기는 1990년대 미국 증시가 초호황을 누리자 ‘새로운 패러다임’과 ‘안정된 경제’라는 말로 부활한다. 1920년대 신경제와 1990년대의 신경제는 대표적으로 새시대 관념이 지배한 초호황 시기이다. 연방준비제도 이사회가 저금리정책을 추진하고, 새로운 산업이 투기 열풍을 부추긴다. 1920년대에는 자동차 산업이, 1990년대에는 인터넷 산업이 성장의 동력이 되어주었다.
마지막 9장은 ‘일본의 버블경제’를 설명하고 있다. 에드워드 챈슬러는 일본의 버블경제 안에 여러 시대와 나라들의 버블 경제의 특징이 들어 있다고 한다. 예술품과 골프 회원권에 대한 투기는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버블을 연상시킨다. 일본 기업이 발행한 신주인수권부 사채는 1720년대 사우스 시의 채권의 주식전환과 비슷하고, 일본 증권사가 만들어낸 테마주도 사우스 시 버블 당시 테마였던 버블기업과 비슷한 현상이다. 일본 은행의 ‘증기-신용창출’의 연계는 1720년대 존 로를 파멸시킨 미시시피 버블 매커니즘과 비슷하다. 정부의 감독이 느슨한 것도 1870년대 금권정치 시대와 1920년대 미국 증시와 닮았다. 일본 경제 버블이 터진 후 금융스캔들, 자산가치 폭락, 은행 파산, 경기침체 등은 1930년대 미국 상황과 같다. 그리고 투자 손실을 정부가 책임져줄 것이라는 ‘도덕적 해이’는 사우스 시의 주가가 떨어질 때 영국 정부가 책임질 거라 믿은 영국투자자들과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투기열풍이 일어나고 폭락한 주가로 인해 막대한 손해를 본 투자자들은 분노에 사로잡혀 투기를 조장한 투기꾼들과 투기를 막지 못한 정부를 비난한다. 투기를 단속하지 않던 정부는 경제 공황 상황에서 대책을 고민한다. 그러면서 모든 책임을 투기꾼들에게 떠넘긴다.
“‘경제의 적’(레닌과 스탈린), ‘취리히의 땅귀신들’(영국 수상 해럴드 윌슨), ‘위기를 먹고살 뿐만 아니라 위기를 조장한다’(미국 닉슨 대통령), ‘사냥감을 보면 침을 질질 흘리는 원시인 무리’(영국의 전 재무장관 젠킨스), ‘혁명기에는 소요 세력으로 분류해 단두대에서 목을 쳤을 존재’(프랑스의 미셸 사팽), ‘잔인한 동물’·‘활동은 불필요하고 비생산적이면서 전적으로 비도덕적’(말레이시아 모하마드 마하티르 수상)”(348페이지)
이 모든 말들은 ‘투기꾼’에 대해 시대별로 여러 나라 정치인들이 비난하는 말이다. 투기 열풍으로 인해 환율이 급락하면서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그로 인해 국가 경제까지 휘청거리게 된다. 투기를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던 정부는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투기꾼들에게 떠넘긴다. 광분한 국민들을 달래기 위해 투기꾼들을 희생양으로 만들고 정부는 대책을 마련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대책들이 크게 도움이 되지도 않고, 오히려 사태를 더 악화시킴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책임을 회피한다. 과연 투기광풍의 책임이 투기꾼에게만 있는 것일까?
『금융투기의 역사』는 금융의 역사를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어려울까 걱정했는데 최대한 쉬운 말로 풀어서 이야기해주니 막힘없이 술술 읽혔다. 생소한 용어들이 나오면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여 주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시대는 다르지만 투기열풍이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되는 게 신기하고, 왜 매번 사람들은 속을까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나라면 속지 않을까를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면 답은 ‘나도 속을 것 같아’였다. 평범한 사람들이 투기로 성공한 사례들은 나도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마음에 심어주어 투기를 부추긴다. 귀가 얇은 나와 같은 사람은 순식간에 속아 넘어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은 나와 같은 금융 문외한부터 정책을 추진하는 사람들 모두가 함께 읽어야 하는 책이다. 속지 않기 위해서,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 제대로 된 정책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