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책 실비 제르맹 소설
실비 제르맹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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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비 제르맹. 문학동네 블로그에서 알게 된 프랑스 작가이다. 사진 속 실비 제르맹은 하얀 백발 머리에 가녀린 모습을 하고 있다. 사진 속에서 강렬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 모습에 매료되어 작가의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그렇게 만난 책이 『밤의 책』이다. 제목을 읽으면서 ‘밤’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작가는 어떤 식으로 해석했을지 궁금했다. 내가 생각하는 ‘밤’의 이미지는 어둡고 깜깜하지만 그 안에서 안식과 위안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탄생의 시간이기도 하다.

『밤의 책』은 후속 작품인 <<호박색 밤>>의 주인공 ‘샤를빅토르 페니엘’이 탄생하기까지의 페니엘 가문의 100년 동안의 기록이다. 100년 동안 페니엘 가 사람들은 태어나고 죽고 또 태어난다. 삶의 터전에서 살아가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살아가던 페니엘 가의 남자들은 전쟁으로 인해 인격이 급변하고, 남은 가족들의 삶이 비틀리게 된다. 책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이 가족이 겪는 세 번의 전쟁은 보불 전쟁,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이다. 세 전쟁의 공통점은 독일과 프랑스가 서로의 적이라는 것이다. 책은 전쟁이 얼마나 잔인하게 인간의 삶을 망가뜨리는 지를 이야기한다.

  6명의 사산된 형제들에 이어 7번째로 태어나 죽은 형제들의 울음의 몫까지 우렁차게 울면서 한 아이가 태어난다. 아이 어머니 비탈리 페니엘은 테오도르포스탱을 낳고 불행을 물리치기 위해 아이의 몸 전체에 성호를 긋는다. 하지만 산고의 힘겨움 때문이었는지 마지막으로 아이의 이마 위에 성호를 그리기 전에 잠이 들어버린다. 어쩌면 이 부분에서 페니엘 가의 미래를 예견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신화 속 인물인 아킬레스가 태어났을 때 아킬레스의 어머니가 아들을 불멸의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스틱스 강에 아이의 몸을 담그는 과정에서 잡고 있던 발목 부분만 강물에 담그지 못해 아킬레스는 결국 그곳이 약점이 되어 그로인해 죽는다. 테오도르포스탱과 아킬레스는 이 작은 부분으로 인해 생의 전부가 흔들리는 것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테오도르포스탱은 결혼해서 아들과 딸을 낳아 행복한 삶을 살다 전쟁에 징집되어 머리를 크게 다치게 되고 그로 인해 다른 인격의 사람이 되어 돌아온다. 어쩌면 이 가문의 불행은 이때부터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테오도르포스탱의 아들 빅토르플랑드랭은 가족들이 모두 죽은 후 물에서 땅으로 떠나간다. 빅토르플랑드랭도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지만, 불행은 페니엘 가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부인들이 사고나 전쟁으로 죽고, 아이들이 징집되어 전쟁터에 나가게 된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빅토르플랑드랭은 어린 시절 전쟁에 아들이 징집되는 것을 걱정한 아버지에 의해 손가락이 절단되어 징집되는 것은 피한다. 하지만 참혹한 전쟁은 빅토르플랑드랭을 비껴나지 않는다. 전쟁으로 인해 그의 아이들과 손자가 부상을 입거나 사망한다. 페니엘 가는 전쟁으로 모든 삶이 끝나는 듯 보이지만, 겨울이 지난 후 봄이 되어 새싹이 돋아나듯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페니엘의 삶은 계속 이어진다. 전쟁으로 파괴된 인간의 삶은 또 다시 이어진다.

‘그의 조상들이 살아온 저 원양의 밤, 그 밤 속에서 그의 족속들은 대대손손 잠자리에서 일어났고, 길 을 잃었고, 살았고, 사랑했고, 싸웠고, 잠자리에 들었다. 외쳤다. 그리고 침묵했다.’

-중략-

‘세상의 출현을 주재한 시간 밖의 밤, 그리고 바람과 불이 그 낱장을 넘겨본 어떤 거대한 육신의 책 인양 세상의 역사를 연 전대미문의 침묵의 외침.’

(<<밤의 책>>, 12페이지)

  전쟁은 인간의 삶을 처참하게 망가트린다. 실비 제르맹은 보불전쟁, 1차 세계 대전, 2차 세계대전의 전쟁을 일으킨 독일과 전쟁을 겪지 않은 우리들에게 전쟁의 잔혹함을 다시 한 번 일깨우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한국도 오랜 옛날부터 수많은 전쟁을 겪은 나라다. 많은 전쟁 중 우리의 삶과 가장 밀접한 6.25전쟁은 한반도를 남북으로 분단시켜 놓고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많은 상처로 남아 있다. 전쟁은 땅을 폐허로 만들고, 그 땅 위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들을 죽인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가장 잔혹한 폭력이 전쟁이다. 그 참혹한 전쟁을 실비 제르맹은 환상적인 이야기와 사실을 혼합해서 알려준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신기한 건 이야기의 많은 부분들이 현실이 아닌 환상 같은 내용으로 전개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이야기들이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전쟁으로 인해 처참하게 상처 입고 죽임을 당하는 장면들은 상상하면 너무나 무섭고 공포스럽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마치 화면 밖에서 바라보는 비디오 속 장면들이 아주 천천히 흘러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장면 속 비명소리가 들리는 듯 착각이 들었다.

 <<밤의 책>>은 <<호박색 밤>>을 위한 책이다. <<호박색 밤>>의 샤를빅토르 페니엘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작가 실비 제르맹이 궁금했고, 번역가 김화영의 번역으로 출판된 책이기에 더 흥미를 갖고 읽었던 책. <<밤의 책>>은 사람들의 이름이 읽기 어렵고 몇몇 내용들은 읽기 거북한 부분들도 있었지만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끊을 수 없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도 함께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옮긴이의 말을 읽었다. 작품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주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옮긴이의 말을 읽고 난 후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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