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숙과 함께한 <임꺽정> 강연회 행사 후기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 새로운 사회와 대중의 탄생
클레이 셔키 지음, 송연석 옮김 / 갤리온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강연을 다 듣고 난 뒤에 역시 고미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고미숙님이 쓰신 <열하일기-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호모 쿵푸스>라는 책들을 읽고서 고미숙='상식 브레이커'라는 생각을 해왔다.
이번 '임꺽정' 강연에서도 고선생님은 내가 지은 그녀의 타이틀에 걸맞게 임꺽정을 완전히 새롭게, 전혀 예상치 못한 캐릭터로 해석했다.

난 벽초가 쓴 임꺽정을 읽어보지는 않았으나 대부분의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를 봉건시대 신분과 계급차별에 저항한, 한국판 로빈훗 정도로 알고 있다.
고미숙님도 나름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그런 방향에서 임꺽정을 해석하지 않을까 하고 추측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추측과는 달리 그녀는 임꺽정 집단을 "시대와 불화하는 인물이라기보다는 그 시대의 '외부'에 있는 존재, 기존의 규범적 권위에 굴복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그에 대립되는 반대가치를 표방하지도 않는다." "도탄에 빠진 민을 구하겠다든지, 썩어빠진 정치를 갈아엎겠다든가 하는 식의 정치적 명분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굳이 말한다면, 어떤 권위에도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야생적 신체' 혹은 '탈주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라는 대목에서는 기존에 갖고 있던 의적이라는 관념과 모순되어서 머릿속이 매우 혼란스러웠다.

급기야 고미숙님은 그들을 "이들에게서 일사분란한 통일이나 조직에 대한 충성, 체계적 사고 따위를 기대하는 것은 절대 무리다..... 체계는 없지만 활동성은 무척 강한 조직" 결론적으로 "어떤 것과도 접속할 수 있고, 어디로도 튈 수 있는 조직. 권위도 위계도 없지만 활동성과 응집력 하나는 끝내주는 달인들의 커뮤니티"로 규정한다.
그리고 "중앙권력을 탈취하기 위해 한바탕 소용돌이를 일으켰다가 장렬하게 와해되는 반란군이 아니라 전투와 일상과 축제가 동시적으로 가능한, 그래서 존재 자체가 불온한 아주 특별한 저항조직. 청석골이 움직이는 요새이자 유목민의 텐트가 되는 건 이런 연유에서다"라고 끝을 맺고 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임꺽정에 대한 그녀의 해석이 옳고 그른지는 차치하더라도, 그런 임꺽정의 모습이야말로 21세기 세계 첨단의 정보화사회에 걸맞는 참으로 신선하고 창의적인 해석이라고 생각하며 무릎을 쳤다. 역사는 과거와 현대와의 대화이며, 현재적 관점에서 새롭게 재해석되고 쓰여진다고 할 때, 임꺽정의 청석골 공동체야말로 오늘날 디지털 시대 인터넷과 휴대폰으로 무장하고 집단지성을 창출해내는 이른바 스마트 몹(smart mob), 조직이 없으면서도 기존 조직에서는 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조직력을 발휘하는 새로운 시대의 다중의 이미지와 정확히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고미숙님이 새롭게 해석한 임꺽정집단은 바로 2002년 광화문을 뜨겁게 달구었던 월드컵 응원집단, 효선 미순 촛불시위대, 그리고 2008년 상반기 전국을 밝힌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대였다. 그들은 70, 80년대 운동권처럼 어마어마한 대의나 이념을 갖고 비장한 각오로 깃발을 들지 않았으며, 시종 축제처럼 즐기듯 운동에 참여했다. 그리고 최신 디지털 기기를 바탕으로 놀라운 기동력과 창의력을 발휘하였다.

강의를 듣고서 질의응답시간에 이런 나의 생각을 고선생님한테 말씀드렸더니 선생님도 수긍을 해주었다. 임꺽정을 이처럼 기존의 계급적 관점 혹은 교조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 지난 20년간 우리사회 민주화와 정보화의 진전, 이에 따른 개방성, 다양성의 증대라는 사회변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렇게 늘 고전을 오늘에 맞게 재해석하여 죽은 텍스트가 아니라 산 텍스트로 생명을 불어넣은 고미숙님께 감사를 드린다. 사족을 덧붙인다면 강의 솜씨도 아주 훌륭했다. 강의원고 분량은 불과 9쪽에 불과했지만 2시간 이상 강의동안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아주 재미있게 말씀을 하였다.

이런 재미나고 유익한 기회를 준 알라딘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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