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
앤서니 브라운 지음, 허은미 옮김 / 책그릇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앤서니 브라운은 나와 내 아이에게 너무나 특별한 작가이다.
아니, 사실 이제 겨우 네 살박이 아이는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이 보여 주는
어두운 그림자, 그 깊은 내면의 눈물을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엄마인 내 눈에 비치는 앤서니 브라운은
늘 기대와 공감과 아픔이 공존하는 작가다.

<고릴라>를 비롯해 <돼지책>, <우리엄마>, <특별한 손님>,
일련의 <윌리> 시리즈 등...그의 책들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유쾌한 웃음 뒤에 허를 찌르는 상실과 유년의 상처가 도사리고 있다.
절로 웃음을 자아내는 엉뚱하고 위트 넘치는 캐릭터들은 그 재미있는 표정 뒤에
거절당하고 소외되고 외로운 상처를 나풀대고 있다.
그래서 온전히 웃을 수 없고, 쉽사리 책장을 넘기기 어려운 것이 앤서니 브라운이다.
마치, 무표정하게 점 하나 콕 찍은 눈을 하고 있는 존 버닝햄의 아이들처럼 말이다.

작가 자신의 유년이 순탄치만은 않았음을 짐작케 하는 깊이있는 내공!
그래서 나는 앤서니 브라운이나 존 버닝햄이 좋다.
유쾌하면서도 알싸한 여운이 있는, 가슴 찡하면서도 슬픔의 무게를 강요하지 않는,
보통의 내공이 아니고선 그려낼 수없는 중의적인 그림과 이야기가 좋다.
가슴을 통째로 흔들고 울리는 그 여운이 좋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받아보기 전까진, 지금껏 봐왔던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들을 떠올리며
가슴 한켠에 울림통을 따로 준비해놓았었다.
이번엔 어떤 쌉싸레한 여운을 그 울림통에 던져 줄지를 기대하며.

그런데, 막상 받아 본 책은...너무도 귀엽고 천진난만 순진무구 유쾌하고
예쁘기만 하니 이게 웬일?!
알고 보니 앤서니 브라운의 비교적 초기 작품이었다.
역시나...익숙한 침팬지 윌리는 한결 앳되고 밝은 어린아이 그 자체이다.
이야기는 또 어떤가.
행간을 살필 필요도 없이 명쾌하고 심플하다.
책 한 권이 조금 긴 문장 하나로 이어질 정도로 정직하고 간결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그림 그리기, 자전거 타기, 장난감 갖고 놀기,
옷 입기 놀이, 숨기, 모래성 쌓기, 물놀이, 텔레비전 보기, 목욕하기,
잠자리에서 이야기 듣기.......
숨가쁘게 나열된 목록들을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게 뭐야!!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 모아놨잖아!
아니, 세상 모든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완전히 동화될 수 있도록 1인칭 시점으로 설정해 나열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열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한 쪽 한 쪽 그림에 취할 때마다 "나도 좋아하는데! 나도 나도!!"를 연발하는 아이,
앤서니 브라운이 왜 위대한 그림책 작가인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다.
<돼지책>이나 <고릴라> 등 그의 다른 그림책들처럼 보여지는 것 이상의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고, 탐색하는 과정은 필요치 않다.
보여지는 그대로 엄마와 아이가 까르르 웃으며 속삭이고 교감하는 것으로
마냥 행복한 책이 바로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네 살박이 우리 아이뿐 아니라 이제 갓 돌을 넘긴 조카 역시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그림에 넋을 잃고 만다.
아직 아기지만 좋아하는 것이야 크게 다르지 않으니^^

앤서니 브라운을 이야기하자면 밤을 새도 부족할 정도다.
그만큼 애정이 각별한 작가이기도 해서 그의 책이라면 무조건 반갑다.
복잡하게 마음을 다잡지 않아도 유쾌하고 행복하게 읽을 수 있었던 이 책,
아이와 읽고 나면 꼭 껴안고 "사랑해~"를 반복하게 만드는 정말 사랑스러운 책!
배냇짓을 하는 아기부터 앤서니 브라운을 깊이있게 읽을 수 있을 만한 아이들,
그리고, 그를 좋아하는 부모들까지 모두 읽어 보시라고 추천하고 싶다.
가슴을 따뜻하고 행복하게, 사랑하는 마음이 새록새록 솟아나게 만드는
마법 같은 책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출판사에 아쉬움이 있다면....책값에 비해 종이 두께가 너무 얇다는 점이다.
게다가 면지 없이 바로 판권과 속지로 이어지는 편집이 아쉽다.
책 표지를 보고 면지를 넘기며 아이나 책 읽어 주는 부모나
잠시나마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려 보고, 기대를 부풀려 보는
그 설레는 시간을 빼앗긴 느낌이다.

하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그림노트는 아쉬움을 모두 떨쳐 버리고도 남음이다.
책을 보고 난 뒤 귀여운 꼬마 침팬지를 그대로 색칠해 보고,
마음대로 바꿔서도 칠해 보고, 사탕도 그려 보고, 하늘도 그려 보고,
침팬지가 좋아하는 걸 다시 그려 보며 글자도 익히고...
그림을 그리면서 충분히 많은 이야기도 나눌 수 있도록 잘 유도하고 있는 그림노트는
기대 이상으로 실속있게 잘 구성돼 있어 무척 만족스럽다.

책에 딸린 부록이 형식적이고 성의없기 쉬운데, 단순히 번역본을 출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치열하게 작가의 작품세계를 고민하고, 책을 읽을 아이들과 부모들을
배려한 흔적이 역력해 그림노트를 기획하고 만들어낸 편집부에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다.

아이와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준 앤서니 브라운,
더 큰 즐거움을 나눌 수 있었던 그림노트까지!
이 책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 아주 많이 후회하고 서운했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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