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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아직 인터루드에 있어
엘 캐피탄 지음 / 비에이블 / 2025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아이돌에서 빌보드 프로듀서로, 가수 장이정에서 음악 프로듀서 ‘엘 캐피탄’으로. 『우린 아직 인터루드에 있어』는 화려한 무대 뒤편, 조용한 작업실로 자리를 옮긴 한 아티스트의 ‘성장’과 ‘회복’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음악을, 삶을, 자기 자신을 새롭게 정의해가는 이야기다.
“인터루드(Interlude)”란 공연이나 앨범에서 본격적인 내용이 이어지기 전, 잠깐의 쉬어가는 구간이다. 저자는 이 시기를 “멈춤이 아닌 방향을 다잡는 시간”이라고 정의한다. 2013년 5인조 보이그룹 ‘히스토리’로 데뷔했던 그는 팀 해체와 함께 가수의 삶을 접고, 음악 프로듀서의 길로 전환했다. 그 시절은 좌절과 열등감, 공허함이 겹쳐져 삶 전체가 실패로 뒤덮인 것 같았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그 '끝'은 전환점이었고, 지금 돌이켜보면 '진짜 나'를 마주하게 해준 시간이었다.
아이돌을 그만두고도 음악을 완전히 떠날 수는 없었다. 그는 “부르는 것만이 음악은 아니다”라는 진리를 체화하며, ‘다른 방식’으로 음악에 머물기로 한다. 하이브와 협업하며 수많은 아티스트의 작업에 참여하고,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온 그는, “꾸준히 달려가는 사람에게 막다른 길은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증명해냈다. 책 전반에는 그가 작업한 곡들, 그 노래들에 얽힌 비하인드, 감정의 진폭이 깊게 새겨져 있다.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단연 아이유의 <금요일에 만나요> 피처링. 그 전주만 들어도 다시 그 시절로 데려다준다는 그 감정. <대취타>를 작업할 땐 ‘왕이 된 기분’으로 국악과 힙합을 섞는 실험을 했다. 정국의 <Stay Alive>에서는 생사의 갈림길 같은 간절함을 담았고, 싸이의 <That That>에서는 무작정 신나는 해방감을 표현했다. 폴킴의 <화 좀 풀어봐>에선 이별 뒤의 진심 어린 여운을 노래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음악 작업기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음악을 도구 삼아 자기 안의 그림자와 싸우고, 공허함을 끌어안으며, 때론 무너지고 또 다시 일어서는 치유의 여정이자 성장의 기록이다. 프로듀서가 된 이후 처음 발표한 <불이 꺼지고>는 그 시작이었다. 발표하지 못한 이유는, 공허함을 들키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말한다. “공허도 감정이고, 감정은 추진력이다.”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바로 이 문장이다.
“기왕이면 제 인생을 구하는 게 저였으면 한다.”
이 말은 수많은 방황 끝에 스스로를 다시 믿게 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이다. 모든 고통은 결국 ‘변화의 징조’이고, 그 변화를 껴안을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짜 성장한다.
『우린 아직 인터루드에 있어』는 연예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음악 팬만이 아니라, 지금 자신의 길을 잃은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다. 실패가 삶을 삼킬 것 같던 시기조차, 언젠가 의미 있는 서사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믿음. 괴로움은 인터루드일 뿐이라는 통찰.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아웃트로를 완성해나가기 위한 작은 용기. 엘 캐피탄이라는 이름 아래, 그는 문화와 감정, 사람들 사이에 연결고리를 만들고 있다. 노래할 수 없었기에 발견한 ‘다른 방식의 음악’. 그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야 진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