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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유금호 지음 / 한림원 / 2001년 6월
평점 :
품절
그가 살았던 18세기는 참으로 암울한 시대 였다. 영.정조 시대를 떠올리면 당쟁, 당파 싸움으로 얼룩진 역사가 생각나고, 임진.병자 양 난 이후 안팎이 시끄러웠던 시대였다. 하지만 박지원의 허생전을 보면 '자본'의 개념이 이미 뚜렷하고 '매점매석'과 같은 좀 더 구체적인 시장원리가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삶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현실과 결부시키려는 움직임이 이미 활발하게 교류되던 시기 였던 것 같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청나라 고종의 피서지인 '열하'를 여행하고 돌아와서 쓴 일종의 기행문이다. 청시대의 북중국과 남만주 일대를 둘러보고 그곳 문인과 명사들을 만나 얘기를 나눈 뒤 전 26권을 썼는데 범우사 版 <열하일기>는 그 중 도강록,성경잡지,태학유관록,환연도중록,산장잡기를 싣고 있다. 박지원은 따져보니 약 250여년 전 인물인 것 같은데 역사 속의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현대적인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이용후생(利用厚生)에 뜻을 두고 실생활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서 그럴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이 책을 보면서 일단은 내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사대부(士大夫)에 대한 생각이 편견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선비' 하면 '방구들에 들어앉아 책만 보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행도중 중국인들의 실생활 속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들을 끄집어 내는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다. 예를 들면 집을 지을 때 기와 잇는 방법, 기와를 굽는 가마의 차이, 굴뚝 만드는 방식 등등. 어찌 박지원이 옷소매 걷어 부치고 직접 기와를 구워봤으랴마는 그 이상으로 상세하게 잘 알고 있었고, 우리나라 온돌의 단점 6가지를 집어내는데는 입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비록 집안이 가난해도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겨울이 되면 백,천이나 되는 형제들의 코 끝엔 항상 고드름이 달릴 지경이니, 이 구들 놓는 방법을 배워가서 삼동의 그 고생을 면했으면 좋겠구려.'
또 하나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과 지동설에 대한 그의 설명이다. 지구가 둥글게 생겼다는 이야기는 이미 서양학문에서 검증된 바를 알고 있었고 자신의 견해를 덧붙이자면 달이 월식을 할 때 거무스름하게 먹혀 들어가는 가장자리가 활의 등처럼 둥글게 보이는 것을 예로 든다. 지동설에 대한 이야기는 친구인 홍대용의 주장을 대신 얘기하는데 같이 달구경을 하면서 농담 삼아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하면서 소개한다.
하지만 사대부에 관한 그의 생각에서 나름대로의 한계는 있다. 그가 여행했던 코스는 강남보다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던 중국의 강북지방이었다. 그 일면만을 보고 상업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발달상을 일방적으로 예찬한 반면, 이를 가능케 했던 보다 근원적인 요인인 농업 생산력의 발전과 농민층에 대한 상업자본의 착취, 수탈 관계 등 중국의 심각한 농민 문제와 농촌 실태 파악에 소홀한 점이 있다. 그리고 조선의 낙후된 현실을 타개할 것을 주장하면서도 개혁의 주체로서 각성된 사대부만 상정하고 있을 뿐, 실질적 능력을 갖춘 중인 계층이나 상인층의 참여를 과소 평가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는 연암의 개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시대적 제약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아무튼 연암은 청나라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새로운 국제 현실에 대한 남다른 식견을 가지고 사회 개혁의 방도를 진지하게 모색한 그 시대의 선구적인 지식인이었다.
<열하일기>를 읽다보면 가끔은 갓을 쓴 선비가 나귀를 타고 중국을 여행하는 그림이 떠오른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본 것을 그대로 표현하는 사실주의적 입장에 투철하고, 빼어난 비유로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가 당대의 문장가로 손꼽히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나는 어려서 담이 작고 겁이 많아서 낮에라도 빈방에 들어가거나 밤에 조그만 등불을 만나면 언제나 머리카락이 쭈뼛하고 심장이 뛰는 터인데, 금년 내 나이 44세 건만 그 무서워하는 것은 어릴 때나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