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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 평전 - 애국과 매국의 두 얼굴
윤덕한 지음 / 중심 / 199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이다. - 이완용은 1858년 경기도 광주에서 이석준의 아들로 태어났다. … 1895년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하자 이완용은 미국 공사관으로 피신했다. 그리고 1896년 고종을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기게 한 뒤 다시 외부 대신 겸 학부 대신에 올랐다. 한때 독립 협회의 일도 보았으나 각종 이권을 강대국에게 넘겨준 책임으로 제명되었다. … 1901년 다시 중앙의 관직으로 돌아온 이완용은 1905년 학부 대신으로 고종을 협박하여 이토 히로부미와 을사조약을 체결하였다. 그리하여 이완용은 을사오적의 한 사람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 후 이완용은 의정부 참정을 지냈으며, 1907년 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추천으로 총리 대신이 되었다. 그 해 고종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를 보낸 것이 알려지자 이완용은 일본의 지시대로 일진회 회장 송병준 등과 고종에게 책임을 묻고 황위에서 물러날 것을 강요하였다. 고종이 물러나고 순종이 즉위한 뒤 이완용은 일본과 조약을 맺어 우리 나라 군대를 해산시켰다. 그 공로로 일본 정부로부터 '욱일동화장'이란 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이완용의 매국 행위에 분노한 백성들은 이완용의 집에 불을 질렀고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1909년 이완용은 매국 행위에 분노한 독립 운동가 이재명의 칼을 맞았으나 목숨을 건졌다. … 이완용은 조선과 일본의 융화를 내세워 조선 황족과 일본 황족간의 혼인을 권장하는 등 죽을 때까지 일본에 충성을 다했다.
어느 사전에서 찾아본 이완용에 대한 설명이다. 물론 지금까지는 이러한 설명이 당연한 듯이 받아들여 왔다. '이완용 = 매국노, 만고의 역적, 을사오적의 선봉, 친일파의 대부.'라는 등식이 성립해 온 것이다.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완용에 대한 이 책과 같은 설명은 들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가 지금까지 '이완용=매국노'라고만 생각해왔던 것을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서 그를 새롭게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이완용=매국노'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완용의 업적과 매국행위 모두를 정확하게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그냥 막연하게 패륜아이고 희대의 매국노라고 생각해온 이완용을 다시 살펴봄으로써, 즉 한때 대단히 애국적인 인사였던 그가 대체 어떤 과정과 논리를 거쳐 매국노로 전락해갔는가를 정확히 인식함으로써, 아니 그렇게 해야만, 그의 매국행위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동시에 제2의 이완용이 등장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