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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아나키즘 : 사상편 ㅣ 한국의 아나키즘 시리즈
이호룡 지음 / 지식산업사 / 2001년 11월
평점 :
아나키즘은 1920년대 초 수용된 이래 지식인과 청년층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쳤으며 독립투쟁에서도 국내와 일본, 중국에서 광복때까지 그 역할이 과소평가될 수 없는 족적을 남겼다. 일제시대의 아나키즘운동은 민족독립이 주요 목표 였음은 물론이다. 일치하 민족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수용한 아나키즘은 당면한 최대의 목표인 일제를 몰아내기 위한 아나키즘적 항일논리를 도출해 냈다. 그것은 독립운동은 곧 아나키즘 운동으로서 이것은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급진적 투쟁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상적 기초는 만인의 자유 평등을 주장하고 일체의 정치적 지배강권을 부인하고 경제적으로는 사유재산과 억압적인 공산정치를 배격하고 윤리적으로는 상호부조와 만만공영을 실현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나키즘 운동은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려는 정치운동, 노동운동, 사회운동에 있지 않고 종래의 사회적 해독물인 지배, 착취, 강권 등의 제도를 파괴하고 근절하여 정치적, 경제적, 윤리적인 각 방면에서 압박받고 속박받는 민중을 해방하고 지배와 강권이 없는 자유 공산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일제하 한국 아나키즘 운동은 기본적으로는 아나키즘적 관점에서 신한국 건설의장애가 되는 외세, 즉 일본 식민 통치의 타도를 운동의 제일의 목표로 설정하였다. 이러한 민족해방운동에서의 역할은 급진적인 테러행위로 특징지워졌다.
아나키즘적 파괴론은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유지된 아나키스트의 유효적적한 항일 논리로서 일본 식민 통치 기관의 파괴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식민지 상황의 조선이 일본 속박의 굴레를 벗어나는 방법으로서 주장한 '탈환론', '되빼앗기'는 일제의 극단적 수탈에 의한 최악의 조건에서 생활하는 한국민에게 당연한 논리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파괴와 탈한의 구체적인 방법으로서 민주주의 일각에서 보여준 애걸, 청원, 호소, 시위 등의 온건 투쟁이 아닌 급진투쟁을 의미한 것으로서 민중이 민중 자신을 위해 하는 혁명이다.
이러한 항일 혁명은 일반 민중의 자유발의에 의한 자유행동의 소산이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이들 이론은 3.1 운동과 같은 온건 투쟁이나 임시정부의 외교론, 준비론 등을 모두 비판하면서 혁명적 투쟁방법을 제시한 것으로서 아나키즘의 급진적이론을 차용하여 일제구축을 정당화 한 것이다. 또한 식민지하 아나키스트들의 항일운동은 독립을 위한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음모를 합리화 하였으며 이를 담당할 세력을 청년으로 인식하였다. 한국아나키즘운동은 혹독한 식민지 지배상황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외세구축이 제일의 과제로 부과되어 급진적 투쟁으로 민족독립이론을 정당화 한 것이다.
일제하의 운동은 결국 일제를 구축한 후 그들이 지향하는 신한국을 건설하려는 것이었다. 그것은 자유(自由)와 연합(聯合)을 토대로 한 아나키즘적 사회조직이었다. 즉 파괴하는 것은 건설하기 위해 파괴하기 때문이다. 신한국의 건설은 밑으로부터 자발적으로 조직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신채호가 「조선혁명선언」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異族통치를 파괴하여 고유적 조선을 특권 계급을 파괴하여 자유적 조선민중을 약탈적 경제제도를 파괴하여 민중적 제도를 사회적 불평균을 파괴하여 전민중의 행복을 위한 사회제도를 노예적 문화와 사상을 파괴하여 민중문화의 건설을 위한 것으로 이것은 해방후 한국아나키즘이 주장한 '우리는 인간위에 인간이 없고 인간아래 인간이 없는 평등한 사회를 세우고자 한다. 우리는 만인의 자유를 존중하고 자유로운 사회를 세우고자 한다는 것에서 요약되고 있다. 또한 경제는 집산주의 경제가 아닌 지방 분산주의 경제를 지향하여 경작자가 토지를 소유하며 노동자가 공장을 소유하는 사회로서 생산과 자치의 자유평등원리에 기초한 도시와 농촌이 균형있게 발달한 사회를 지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