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관한 짧은 이야기
토미 바이어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복권을 한 번도 사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복권 주위를 기웃거린 적은 있다. 남들과 똑같이, 혹시나 하는 행운을 얻을까봐. 혹시나, 그 혹시나 때문에. 행운은 갖은 노력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대게는 우연히 획득하게 된다. 우연히 내 손에 들어 오는 것. 우리는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세상의 모든 행복한 일이 ’행운’인 경우가 많다. 사람들 대부분 행운을 얻은 즉시는 그 ’행운’을 얻기 위해 걸어 온 길을 잠시 잊는다. 일단 즐거워한다. 행복해한다. 무럭무럭 넘치는 행복 속에서 놀라운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마음의 여유를 되찾으면 생각한다. 내가 어떻게 이 자리에 올랐을까. 내가 어떻게 이걸 해냈지. 

그때서야 자신이 쌓았던 노력이 한 움큼 떠오른다. 행운 몇 퍼센트와 노력 99 퍼센트가 떠오른다. 대다수의 행운은 이렇게 찾아 온다. 우연히 찾아 온 행운은 대개 바늘 구멍만큼의 확률을 뚫고 세상에서 태어났을 때 뿐이다. 성공한 대다수는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며 다른 사람의 꿈이 된다. 꿈을 꾸던 자신이 어느덧 다른 사람의 꿈이 된 모습을 발견한다. 이 때 자신이 얻은 행운은 우연히 줍게 된 것이 아니라 성심껏 쌓아 온 것이기 때문에 그에 관해 풀어 낼 말이 많다. 그 말을 흥얼흥얼 즐겁게 꺼내고 싶다. 우리는 듣고 싶다. 그래서 세상에는 행운으로 가득 찬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다. 


이처럼 대다수의 행운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 알만씨처럼 극히 드문 확률로 행운을 얻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확률은 목소리 대신 다리를 얻는 인어공주의 동생도 또 다른 왕자를 만나 결혼하여, 바다의 왕국뿐만 아니라 대지에서도 왕족 집안이 되는 경우처럼 놀라운 일이다. 그 놀라움은 알만의 이야기가 끝나가도록 내내 이어진다. 알만씨의 놀람지수를 측정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하게 아주 놀람 상태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수중에 문득 620만 유로(한화 약 100억)가 생긴다면 누구라도 그와 같이 놀랄 것이다. 나는 누구나 혹은 아무개의 뜻의 이름을 가진 알만씨 덕분에 순간이나마 벼락부자가 된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만년부자가 아닌 벼락부자. 무엇을 사야할까. 지금 당장 무엇이 하고 싶지. 벌써 이렇게 우왕좌왕해서 어떡해. 주변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이야기하는 게 좋을까, 에서 시작해 이제 돈 걱정 없이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돼. 난 지금 무엇을 하고 싶지, 하는 진로와 관련된 고민까지. 갖은 생각 창고에 갇힌 벼락부자. 

벼락부자가 되고, 생각부자가 되자 평소에 하지 않던 고민이 끝없이 샘솟았다. 하지만 그 수가 너무 많아지면서 나는 1cm의 틈도 파들어가지 못한 얕은 생각만 가득 버무려야 했다. 어떤 생각도 내보내지 못하고. 다짜고짜 답을 해 잠시 저장해둘 수도 없었다. 모두 쥐고 싶은 고민이었다. 우습게도 마냥 부자가 된 것처럼 돈 씀씀이도 헤퍼졌다. 꼭 필요하지도 않은 자잘한 물건들을 성큼성큼 사댔다. 기분이 좋아져서 스스로에게 후해진 나를 다시 꽁꽁 묶을 필요가 있었다. 진짜 부자가 아닌 내게 비상등처럼 버스 버저가 울었다. 한 시간 가량 타고 왔던 버스에서 내릴 시간이었다. 소설도 반쯤 읽은 상태였다. 


알만씨는 고민이 많았다. 부자가 되었지만 대나무 숲에다가 자신의 행복을 말해야 할 정도로 외로움이 찾아왔다. 자신의 행복을 편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고작 자신과 아무 관련이 없던, 자신의 당첨 소식을 알려 준 한 여인뿐이었다. 부인과는 당첨 소식도 알리기 전에 사이가 틀어졌고, 가족과의 사이도 그렇게 좋지 않다.  고급 와인 한잔 신나게 부딪힐 사람이 없었다. 주변인들은 이제 돈으로 인해 벼락부자가 된 자신을 평소와 다르게 대우할 사람들 뿐이며, 공동당첨자이지만 사이가 좋지 않은 원수가 한 명 늘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저그런 복권당첨자의 불행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당첨이 된 이후로 자잘한 행운은 모두 뺏어가겠다는 듯이 달라붙은 알만의 운명은 보통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현실감 있는 고민과 알만에게 닥친 아이러니한 상황이 소설의 흐름을 기묘하게 이끌었다. 행운을 얻은 짧은 순간에 닥친 알만의 변화가 꽤나 그럴 듯했다. 복권이 당첨된 이후 평소에 사고 싶었던, 당장 구비했던 속도감 있는 차를 따라 알만의 행복은 구불구불 이어졌다. 행운과 행운 사이에 놓인 1/2 행복이 얼른 구해주소, 하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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