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나라
김이재 지음 / 부비북스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이번엔 오랜만에 읽은 독립출판물이다. 빨간 표지가 제일 먼저 마음에 들어왔다. 새빨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연해서 분홍빛이 나는 것도 아닌, 적당히 빨간색이라 마음에 들었다. 누군가에겐 별것 아닐 수 있겠지만 이 색깔을 내려고 얼마나 인쇄소와 입씨름을 했을까. 편집자의 노고에, 혹은 작가의 색상을 보는 눈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적당한 책 사이즈며, 표지의 감촉까지 괜시리 더 마음에 든다.

에세이란 장르 역시 마음에 들었다. 누군가가 삶을 통해 평소 사유하는 방식을 그대로 느끼고 체험할 수 있어서다. 같은 일, 같은 하루라도 느끼고 생각하는 주체에 따라 해석은 천차만별이 되기 때문에 작가만의 고유한 문체를 통해 다양한 사고와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81년생의 작가의 평범한 삶과 이따금 나오는 여행담을 통해 인생에 대한 작가의 시각과 통찰을 담담히 보여주고 있다. 대형출판사에서 나온 다른 작가들의 출판물과 비교했을 때 엄청난 완성도를 자랑하지는 않지만, 그 전반에 골고루 뿌져진 투박함이, 한 줌의 찌질함이, 그리고 세 꼬집 정도의 신선함과 재기발랄함이 마음에 든다. 기성 가수들을 흉내내는 그럴싸한 실력의 연습생들이 심사위원들의 혹평을 받는 반면 자기만의 목소리와 매력으로 승부를 보는 친구들이 극찬과 박수를 받듯, 이 81년생 작가에게선 자기만의 확실한 색깔과 삶에 대한 본인만의 시각이 느껴지기에 책을 다 읽은 후 소소한 박수를 치고 싶었다.  

굉장히 익사이팅하고 드라마틱한 사건들의 나열은 없을지 모르지만, 하루 하루 평범한 일상을 표현함에 있어서 그의 독특한 시각 하나면 이미 충분하다. 별 다를 것 없는 하루임에도, 그 속에서 작가가 느낀 바를 글로 옮겼을 때 묘한 흡입력이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이다.

책을 쓴 작가에 대해 나와 비슷한 나이이기에 글을 통해 작가의 이미지를 자연스레 그려보게 된다. 01학번의 나와 한 학번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다가, 나 역시 국문학과와는 같은 건물을 사용했던 국사학도였던지라 당시의 내게 한 학번 선배 격이었던, 00학번의 국문학도가 뿜어내는 이미지를 유추해 보는 건 내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도 했다. 그리고 (적어도 내겐) 대학가를 활보하던 기인(奇人)이 떠올랐다.

어느 순간부터 몸과 마음 모두 깔끔하고 단정하며 작은 탈선조차 피하려드는 대학생들이 캠퍼스를 지배하게 되었지만, 적어도 내 세대의 대학생들 중엔 무어라고 형언하기 힘든 느낌의 기인 한명쯤 (특히 인문학부에) 있었더랬다. 책을 읽다보면, 늘상 같은 단복에 요상한 행동과 돌발적인 퍼포먼스로 좌중을 놀래키거나 웃게 만드는, 그런 모습의 작가가 그려졌다. 요즘 대학에선 이미 멸종되어 찾아보기 힘든 종류의 인간들이다. 매캐한 최루탄 내음 물씬 풍기던 그 시절부터 존재했던 '그들'은 아마 내 세대를 마지막으로 종적을 감추게 되었으리라 보여진다. 당시엔 있던 '낭만'이 지금은 사라졌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동안 멸종된 줄 알았던 '그들'을 확인한 듯 했다. 이렇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었구나, 라고 말이다.

글을 보면 필연적으로 그 사람이 보이게 된다. 글은 그 사람을 담아내는 아주 유용하며 훌륭한 도구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작가의 모습과 그가 삶을 관조하는 방식이 그대로 느껴졌다. 솔직함과 진솔함이 여타의 꾸밈 없이 그대로 글에 녹아들었기 때문에 그가 겪은 경험과 통찰이 직구처럼 날아와 꽂힌다. 완벽한 글은 아니지만 그 특유의 투박함이 좋았다. 책을 통해 그가 세상을 보는 망원경을 나 역시 스리슬쩍 엿본 듯 했기에, 내겐 좋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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