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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기요시코 ㅣ 카르페디엠 11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오유리 옮김 / 양철북 / 2003년 12월
평점 :
오래 전에 치대에 다니던 교회 선배가 덧니가 드러나는 내게 말했다.
'너는 이 때문에 고민스럽겠구나.'
'....? 아니요.'
'....? 그럼 넌 그 열등감을 어떻게 극복했니?'
그 질문에 나는 너무도 황당했다. 그리고 상처를 받았다. 뿌리가 튼튼해서 언제나 단단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 같은 내 덧니가 이 사람에게는 내가 '열등감'을 가져야 할 이유로 보이는구나. '어떻게 극복' 했냐니...?
나와는 경우가 약간 다르겠지만, 때때로 '정상인'을 자부하는 사람들이 '배려하는' 질문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수도 있다. 이 책의 주인공 소년 역시 그렇다. 어린 시절, 이유도 모르고 할아버지 댁에 맡겨졌다가 말을 더듬는 증상을 보이고 아빠의 전근으로 인한 여러 번의 이사와 전학 때문에 그 증상이 점점 심해지는 소년은 방학 동안 말더듬는 아이들을 위한 교정 프로그램에 보내진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별로 증상이 호전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른바 '정상'인 어른들이 하는 말에 상처받는다. 어른들은 말이 좀 막힌다고 해서 너무 신경쓰지 말라고 '너무 쉽게', '술술술' 이야기를 한다 '말을 더듬는 건 창피한 일이 아니에요.' '말을 더듬는다고 웃는 친구들은 똑같이 비웃어 주면 돼요.'라고 청산유수로 말하는 세미나 담당 선생님에게 신음소리를 내고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격렬하게 반응하는 참가 아이들. 그 애들은 자기가 더듬게 되는 단어를 피해가면서 말하려고 속으로 엄청난 갈등을 하고 힘들어하는데, 저렇게 물흐르듯이 '괜찮아, 괜찮아, 아무 것도 아니야' 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쓰라린 상처를 받는구나. 어..... '미안해.' 이런 말을 술술술 해서 정말 미안해.
이 책에서 심리 묘사가 가장 뛰어난 부분이 여기일 듯 싶은데, 그건 아마도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덤썩 집어와서 썼기 때문이리라. 언젠가는 써야지, 써야지, 생각만 하고 마음 속 깊이 감춰두었던 정말 개인적인 이야기를 가느디 가는 줄로 뽑아 아슬아슬하게 빛 속으로 꺼내온 듯한 느낌이 든다. 그만큼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빼어난 글이다.
거침없이 휙휙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속이 깊은 친구 게루마가 공고에 진학해 껄렁한 아이들 틈에서 생존해나가려고 빌붙어 있는 모습이나 사정상 전근을 다녀야 하는 아버지가 승진을 미루면서까지 아들의 정착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 아픈 딸아이를 둔 선생님이 연극 대본을 쓰라고 아이에게 말할 때 반 아이들 모두가 등장하고, 모두 대사가 있어야 하며, 모두 이름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모습은 눈물겹다.
성장소설이 이렇게 가슴 저미게 읽힐 줄은 몰랐다. 잔잔하면서도 애절한 글. 참, 연파랑 표지가 무척 마음에 든다. 파릇파릇한 새싹의 시기 - 하지만 야구모자를 꾹 눌러 쓴 아이는 현실과 별로 대면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왜 입가가 쳐져 있는지는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될 것이다. 최근 본 책 표지 중에서 내용을 가장 잘 드러내는 표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