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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와 피어싱 - 조희진의 우리옷 문화읽기
조희진 지음 / 동아시아 / 2003년 3월
평점 :
품절
어렸을 때 옷장수 아주머니가 동네 집 안방에 펼쳐 놓은 물건들을 구경한 적이 있었다. 늘 커다란 흰색 팬티만 사던 어머니가 웬일인지 진한 자주색 팬티를 구경했고, 옷장수 아주머니는 그 신제품 팬티 안쪽 바닥에 고무줄끈이 두 개 달려 있다고 자랑을 했다. 옆에서 보던 어느 할머니가 참견을 했다. “이런데다 월경대를 끼울 수 있으니 세상 참 좋아졌네. 나도 밑에를 쭉 찢어서라도 피를 내 이런 거 한번 입어봤으면 좋겠다.”
몇 년 후에 이 실물을 직접 쓰게 되었던 나는 그 할머니는 그럼 옛날에 도대체 어떻게 월경대를 고정시킬 수 있었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그런데 이 책의 첫 번째 이야기부터 개짐의 생김새와 고정방법이 자세한 그림으로 나온다. 할매들의 경험담을 일일이 채록하고, 문화사적으로 저자의 의견을 다부지게 제시한 글을 읽으면서, 아, 이 사람이 보통 꼼꼼하고 단단한 사람이 아니구나, 하며 감탄했다.
이야기는 저고리, 허리띠, 빨래, 길쌈 등으로 계속 이어진다. 흰색 입기를 여러 차례 금지했던 옛 왕조 이야기나 비녀 이야기, 고구려 벽화에도 나왔던 남자들의 귀거리 이야기는 재미있었고, 여인네들의 끝없는 노동인 길쌈과 바느질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그들의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나를 생각하며 가슴이 싸해지기도 했다. 한 편, 한 편이 옛 자료를 깊게 읽고, 아직 살아계신 어르신들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현대 사회와 문화에서 어떤 식으로 의미가 이어지고 혹은 변화하는지를 생각해서 정리한 귀한 글이다. 저자의 다음 책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