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버린 생각
김명렬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01년 8월
평점 :
절판


여행에 관한 책을 읽으면 '떠나고 싶다, 아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물밀듯 밀려오기 마련. 그래서 갑자기 달력의 일정표도 확인해 보고, 어디갈까도 생각해 보고.... 그리곤 못떠난다. 빼곡하지도 않은 일상인데 공연스레 마음만 바빠서.

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여행과 사람과 잡지를 각별히 좋아한다는 글쓴이가 이리저리 찌그러진 낡은 자동차를 몰고 달리는 비포장길, 고요한 겨울 산사의 툇마루, 이끼낀 기와, 호박 말리고 있는 빈 마당이 가을 햇볕 아래 따스한 마을 이야기를 나와 함께 두런두런 나누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때마침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계절이다보니, 그가 말한대로 '하루하루 섬세하게 변해 가는 나뭇잎의 채도와 햇빛의 명도가' 어우러져 이제 이렇게 가을 바람이 부는구나 하는 절실한 마음이 든다.

그는 이야기한다. 제멋대로 헝클어져 쑥대머리가 되어버린 정서의 결을 빗어내려 다시 고운 결을 회복하게 해주는 그런 참빗과도 같은 기능을 가진 몸살이 바로 여행이라고. 그러면서 독자를 기차, 큰산, 비포장길, 숲, 절집, 암자, 호수, 일출 등으로 안내하며, 마지막 하나, 맛의 자락까지 슬몃 보여주는 것을 보니 제 결 찾는 것도 찾는 것이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인 것을 꽤 잘 아는 듯. 문득 그가 끓인 '김명렬표 라면'을 먹고 싶다.

몇 장마다 담겨있는 사진들을 바라보면 참으로 기분이 좋다. 몸굵은 나무 그림자가 수북한 낙엽 위로 드리워졌는데 오가는 이 없이 고요히 서 있는 일주문, 하얀 눈 위에 청회색으로 서 있는 야산의 겨울 나무, 그리고 그 위의 새벽 하늘. 신비로운 검푸른 빛이 점차 옅어지는 산, 산, 산.

글과 사진을 함께 보며 마음이 고요해진다. 사람은 이렇게 길 위에서도, 또 글 위에서도 생각을 버리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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