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치울의 리듬
호원숙 지음 / 마음의숲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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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에는 봄이 왔다. 산딸기가 붉게 익어가고, 미나리가 풀밭에 흩어져 있다. 소박한 듯 고소하고, 자랑스럽지 않고 외로워 보이지도 않는다. 싱그럽고 맑은 향기를 가졌다. 바람을 따라가면서도 물러나지 않는 향기. 산길을 걸으며 나물을 따고 맛 보를 한다.

산길에는 여름이 왔다. 철쭉이 짙게 피어있고, 개나리가 길가에 놓여 있다. 화려한 듯 고운하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슬퍼 보이지도 않는다. 성숙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가졌다. 꽃잎을 흩날리면서도 떨어지지 않는 모습. 산길을 걸으며 꽃을 바라보고 노래를 한다.

이런 산길의 봄과 여름을 담아낸 것처럼 호원숙 작가의 '"아치울의 리듬"은 모친 박완서와의 추억이 남아있는 아치울의 일상을 남긴 산문집이다. 이 책은 틀이나 짜임새의 구성없이 쓴 글로, 저자의 일상이 억지스러움 없이 자연스레 펼쳐진다. 아치울에 사는 새와 나무와 구름이 펼쳐내는 리듬처럼 자신의 삶을 정확히 알고 있는 저자의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문장이 돋보인다.



저자는 봄 눈발이 흩날리더니 해가 난다고 말한다. "변덕을 부리면서 봄이 온다. 나가보니 철쭉나무 사이로 양지바른 곳에 복수초가 올라와 있다. 아직 노랗게 피어오르지는 않았지만, 한 번도 약속을 어기지 않은 식물이다." 이런 식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저자의 습관은 어떤 것일까?

저자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창문을 열고 공기를 마신다고 한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거나 읽는다. 어머니 박완서와의 추억도 종종 떠오른다. 어머니는 용감하고 아슬아슬하게 그 시대를 증언하였으니까. 저자는 어머니의 원고를 심부름하던 날을 기억한다. 광화문 근처의 신문사나 문학잡지사에 원고를 갖다 주려 책가방 속에 조심스레 넣어가는 날의 뿌듯함을 여전히 기억한다. 저자는 원고를 미리 꺼내 읽지 않았다. 그녀의 임무는 오직 충실한 배달부로 충분하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어머니의 원고에 대한 경외감, 비밀문서와 같은 떨리는 은밀함도 있었다.

저자는 현실과 일상을 솔직하게 바라보면서도 비관적이지 않다. 오히려 고마움과 감사함을 표현한다. 예를 들어, 유퀴즈 온 더 블록 관찰기라는 글에서 저자는 유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받았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살아간다. 저자는 그들에게 배우고 싶은 것이 많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다.

'아치울의 리듬’은 호원숙 작가의 첫 번째 산문집으로, 작위적인 것을 경계하면서 일상의 자연스러움을 포착한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저자의 습관, 어머니 박완서와의 추억, 현실의 일상, 바래지는 세월과 새삼스레 느껴지는 고마움, 세심한 일상의 관찰, 사려 깊은 표현 등을 담아낸 에세이 모음집으로, 독자들에게 따뜻함과 위로를 전하는 작품이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제 주관대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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