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너머로 달리는 말 (리커버 에디션)
김훈 지음 / 파람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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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너머로 달리는 말"은 인간 본래의 행동을 그려낸 소설입니다. 나와 가치관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 집단을 이뤄 점차 덩치를 불리다가 나와는 다른 집단을 부정하며 자신의 정의를 일관되게 관철하려는 행동이 고스란히 들어있습니다. 너는 너고, 나는 나가 아닌 상대를 부정하고 너는 나여야만 하는 모순과 순리가 부족함이 없이 수북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말(馬)! 욕심이 아닌 자신이 지닌 본연의 모습을 꾸밈없이 원초적으로 그려져서 오히려 더 현명한 생명체. 시간과 거리를 초월하고자 자신의 등에 올라탄 인간을 주인으로 받아들여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어여삐 여긴다.

"달 너머로 달리는 말"에는 여러 등장인물이 등장한다. 하지만 김훈 작가가 관찰하며 이야기하는 인물은 단지 서너 명이다. 말을 처음 길들인 무녀 요, 최초로 말 잔등에 올라탄 추, 초나라의 왕과 그의 두 아들, 단나라의 왕과 군독(총사령관), 젊은 무녀가 책 속 주요인물로 등장한다.

그리고 말! 말은 인간과 연결돼 이야기 속에서 흙내와 땀내, 똥내, 풀내, 핏내, 갖은 분비물로 광기에 헐떡이는 인간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상징을 한다. 인간에게 최초로 등을 내준 신월마 총총, 현명한 낭만과 고행을 겪는 비혈마 야백, 나하 강에서 잠시 정을 나눈 야백을 그리워하는 신혈마 토하.

초는 넓은 평원을 새풀을 찾아 마소를 이끌고 유목하는 이들이 통합된 나라다. 이들은 늙은이와 병든 자들을 돌보지 않았고, 싸움터에 쓰러진 동료를 챙기지 않았다. 죽음은 평원을 풍요롭게 하는 과정일 뿐 그들에게 죽음보다는 산자의 삶이 우선이었다. 죽은 자를 위해 돌을 쌓고, 곡을 하는 건 하등 쓸모없는 짓이라 여겼다.

늙은이가 젊은이를 낳았으나

늙은이는 누구의 보모도 아니었다.

단은 문자를 알았고 문자로 세상일을 적어 문자를 받들었다. 그들은 문자로 신분이란 족쇄를 만들어 스스로를 땅에 속박시켰다. 단은 사람의 마음에서 오락가락하는 것들, 간절히 옥죄는 것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글자가 글자를 낳아서 글자는 점점 많아서 실체조차 없는 쓸모없는 생각 지배 당했다.

글자의 뜻을 이룩하려는 오랜 세월 동안

글자끼리 부딪치면서 많은 피가 흘렀고

피 안에서 또 글자들이 생겨났다.

산맥 위로 빙긋한 초승달이 오르면 말무리는 달을 향해 밤을 달렸다. 무리가 많지 않지만, 힘들거나 편안함을 모르고 적게 먹고 오래 달릴 수 있는 신혈마. 사람 사는 마을의 연기와 누린내, 똥내를 싫어해서 사람에게 가까이 오지 않고 가늘지만 빛에 날이 서있는 초승달을 향해 달리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에도 신월마는 없다.

그리고 비혈마 야백. 이마에 밤이면 상서로운 푸른빛을 내는 흰 점이 박혀 있는 야백은 단의 군독 황의 군마가 되어 냄새나는 피와 내장이 낭자한 전투에서 활약한다. 사람과 말이 만나는 자리 앞니와 어금니 사이에 있는 이빨이 나지 않는 빈자리에 재갈을 혀로 핥으며 주인을 따라 싸움터를 다니다가 그곳에서 본 비루한 인간들을 가엽이 여긴다.


한무리의 돌무덤마저 흩어버리는 자들과 채찍을 맞아가며 돌담을 쌓아 올리는 자들, 세상에 그어진 금을 지우려는 자들과 금을 더 멀리 긋는 자들 사이에 징그럽고 저열한 싸움이 시작된다. 달처럼 굽은 월도를 든 가벼움과 헐거움으로 무장한 초와 높다란 성곽에 숨어 돌을 날리던 단, 그리고 말의 다리 사이로 납작이 숨어들어 사타구니를 물어뜯는 흑견들의 난장이 원초적으로 벌어졌다.




지나간 시간을 원망하지만 어찌할 수 없어 새벽녘에 배를 띄우는 쇠락한 노인, 돌무더기를 치워 평원을 평탄케 하라는 아비의 말을 쫓는 아들. 전쟁터에 기약된 죽음이 버거워 투석기에 알몸으로 올라간 노장. 지겹고 무정한 하늘과 평원, 유유한 강으로 야만이 펼쳐친다. 하지만 사납고 시린 바람이 눈을 거둬가면 얼고 물렀던 진창 위로 파릇한 새풀이 피어나는 이야기.

김훈 작가는 "달 너머로 달리는 말"에 먼지가 잔뜩 껴 샛노란 빛에 눈이 시린 대폿집에서 친구들에게 달작하고 시큼한 이야기를 건네듯이 독자들에게 아득한 옛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구릿한 신 김치를 안주 삼아 누런 알루미늄 막그릇의 아슬한 막걸리를 벌컥이며 숨을 돌리는 그에게 뒷이야기를 더 캐묻고 싶을 정도로 감칠맛이 넘치는 이야기입니다.

막걸리의 텁텁함이 오래된 신 김치의 바늘 같은 신맛을 불러오게 하는 여운이 진한 이야기,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을 추천합니다. 사서에 기록된 역사가 아닌 아득한 옛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된 야사처럼 허망하지만 오히려 진실로 그랬을 거라 믿고 싶은 이야기를 대가 김훈의 입을 빌려 들어보시길.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제 주관대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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