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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섬
쥴퓌 리바넬리 지음, 오진혁 옮김 / 호밀밭 / 2022년 11월
평점 :

"마지막 섬"의 저자 쥴퓌 리바넬리는 터키 군부의 영향력이 막강하던 1970년대 사상범으로 군 형무소에 투옥되었습니다. 1960년, 1980년 두 번의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던 터키는 우리나라의 현대사와 상당히 닮았습니다. 리바넬리는 사상범으로 지목된 후 긴 시간을 망명과 도피로 해외를 떠돌며 고생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많은 작품에 이 시기의 경험이 많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리바넬리는 "마지막 섬"을 집필할 당시 독재자들의 위선과 오만 그리고 광기에 절망적이었다고 그때를 회상했습니다. 하지만 조직되지 않은 자발적 시위를 나서는 사람들의 모습에 인류는 멸종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2008년 출간된 "마지막 섬"은 게지시위(2013년 5월 28일에 시작된 터키의 반정부 시위) 이후 다시 독자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섬"은 평온한 삶을 즐기던 사람들이 살던 섬에 장기집권에서 물러난 전 대통령이 정착하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전 대통령의 위압적인 권위주의에 굴복하면 삶과 터전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보여주는 탁월한 소설입니다.
내용 소개
작가는 마지막 섬을 화자의 입을 빌려 마지막 남은 인간적인 자투리땅이라고 했습니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덩어리 땅에서 사람들이 피워내는 혼탁한 먼지에 영향을 받지 않는 낙원의 섬에 화자인 '나'는 살고 있습니다. 감히 낙원이라 할 정도로 육지에서 외떨어진 작은 섬.
그 작은 섬에는 잣나무 숲, 천연 수족관 같은 새파랗고 투명한 바다,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협만
그리고 순백의 유령처럼 쉬지 않고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에 대해 내가 이야기해 봐야,
사람들은 기껏 관광지에서 파는 엽서 속 풍경 정도나 떠올리지 않을까.
마지막 섬
하지만 아름다운 낙원 같은 섬에 살면서도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익숙해져서 아름다운 삶을 산다고는 생각조차 못 했습니다. 40여 가구의 섬사람들은 그저 유유자적 자연의 흐름에 맞춰 섬의 원래 주인 갈매기들과 서로 섬을 공유하며 살고 있었죠. 다만 섬에 대해 육지 사람들에게 소문을 내고 싶지 않았기에 섬 이야기는 일체 비밀로 하고 있었습니다. '나'뿐 아니라 섬사람들도 세상이 어지럽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었기에. 섬에서는 텔레비전 전파를 수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번 방문하는 여객선이 가져다주는 신문으로 바깥세상의 어지러움을 알고 있었다.
여러 민족집단, 종교 세력, 무장세력, 지방토착세력의 국가를 향해 자기의 이권을 위해 국가를 도발한 소식, 게다가 국가도 모자라 다른 집단을 향한 폭력들. 하지만 '나' 이런 어지러운 소식을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우리는 저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가 섬을 방문하기 전까지는.
장기집권 후 어쩔 수 없이 사임한 '그'가 우리 섬에 정착하기 전까지는 미쳐 돌아가는 세상의 혼탁함이 우리 섬을 오염시킬 거라고는 차마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단지 그가 휴식차 잠시 섬에 들린 거라 생각했을 뿐이었습니다.
그가 섬의 허름한 선착장에 도착한 그날, 마을 사람들은 순진하게도 선착장까지 나가 맞이했고 성대하게 환영회까지 열었습니다. 그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른 체.
제게는 소설가 친구가 있습니다. 그는 평소 사람들의 눈에 띄는 걸 싫어해서 일부러 외진 곳을 다니던 친구였죠. 하지만 제게 그는 사랑하는 친구였고 문학 스승이었습니다. 그는 제가 서툴게 쓴 글을 평가해 주며 조언도 에둘러 하지 않는 냉철한 비평가였습니다. 그런 그가 '그'를 경고했었죠. 하지만 저와 마을 사람들은 근거 없는 염세주의자라며 듣지 않고, 오히려 비난까지 했었죠. 소중한 친구를 비난했던 그날을 전 지금도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때 친구의 말을 들었다면 우리 낙원은 망가지지 않았을까?
서로에 대한 증오의 씨앗이 뿌린 내린 민족적, 종교적 성향의 모든 집단이 서로를 죽였고,
피의 복수는 갈수록 미쳐 날뛰었던 것도 알잖아, 그렇지?
당연히 알지!
모든 것을 알고 있군, 친구. 하지만 단 한 가지, 국민을 누가 분열시켰고 이 피의 복수극이
누국의 계획에 의해서 시작됐는지를 모르고 있어!
마지막 섬
전 대통령과 그의 가족, 경호원이 섬에 온 후 며칠간은 그들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섬은 이전처럼 조용하고 느린 삶으로 돌아간 듯 보였죠. 그러던 어느 날, 길 양쪽으로 큰 나무들이 줄지어 서로 얽혀 녹색의 터널 같은 아름다운 그늘을 제공하던 시원한 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대통령을 따라왔던 경호원들이 숲길의 나뭇가지를 잘라내고 있었습니다.
나와 마을 사람들은 서둘러 항의하듯 대통령 집을 두드렸죠. 마치 공원에서 공놀이하다가 저기 높은 담벼락을 넘어간 공을 쫓는 것처럼. 대통령은 아무 일도 없는, 아니 오히려 우리를 꾸짖는 투로 말했습니다. 자신들이 사는 곳을 제대로 정비하지 않는 게으른 야만적인 사람들로 치부하며, 어지러운 나뭇가지를 정리를 해준 걸 오히려 고마워하라고. 마치 문명과는 거리가 먼 야만인들을 상대로 선정을 베풀듯 거만한 연설로 자신을 정당화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입만 떠듬거렸을 뿐 뭐라고 항변조차 못하고 무력하게 물러났어죠. 그리고 이 말을 전해 들은 소설가 친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해, 순진한 친구!"
대통령은 서서히 그가 잘하는 짓을 시작했습니다. 그건 바로 '다른 사람들의 위에 군림하는, 자신을 오롯하게 치켜세우는 행위'를 위한 밑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잘 생각하세요, 문명이라고 했습니다.
인류의 문명.
인간과 짐승을 구분하고 인류를 고결하게 만든 사고와 체계들
그리고 운영방식들 말입니다.
마지막 섬
짙푸른 나무들과 그늘이 드리워진 길을 빼앗겼을 때 우리는 그에게 저항했어야 했습니다. 언어장애를 가졌지만 매일 우리에게 식료품을 배달해 주던 아이의 눈에 멍이 들었을 때 우리는 외면과 침묵으로 일관해서 안됐습니다. 그리고 낙원이라고 불리는 이 아름다운 섬을 우리와 공유하는 갈매기를 향한 살육에서 원래 섬주민을 보호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갈매기처럼 자신을 향한 야만적인 폭력에 격렬히 저항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친구를 외면 조용히 중얼거렸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에게 그저 우리는 순응했을 뿐.
사실 나는 모든 섬 주민들이 하는 대로 따랐을 뿐이었다.
그래, 별로 생각하지 않았고, 분위기에 순응했을 뿐이었다.
크게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내가 뭘 할 수 있었단 말인가!
마지막 섬
지은이와 옮긴이
지은이 쥴퓌 리바넬리(Zulfa Livaneli1). 1916년생으로 앙카라의 마리 고등학교를 졸 동업했고, 스톡홀름에서 진학과 음악 교육을 받았다. 1972년 사상범으로 군부에 수감되었으며, 11년간 망명 생활을 하였다. 하마드 프린스턴 등 유명 대학에서 강연과 강의를 했고 문학. 음악, 그리고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계약 찬사를 받으며 국내외 30개 이상의 수상 기록을 갖고 있다.
그의 작품은 모두 34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터키 외에도 중국, 스페인, 독일 등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발칸 문학상, 미국 반스앤노블 위대한 작가 상,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바 있다. 터키에서는 유누스 나디 문학상과 오르한 케말 문학상을 수상했다. 리바넬리는 세계 문화와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1996년 파리 유네스코로부터 명예 대사로 위촉되었고, 유네스코 사무총장의 자문 역을 역임했다. 2002~2006년 터키 국회와 유럽의회에서 의원직을 역임했다.
옮긴이 오진혁. 한국외국어대학교 터키어과를 졸업하고, 터키 국립 하제테제대학교에서 인류학을 전공해 석사 학위를 받았다. 위 리바넬리의 세레나데(Serenad) 2019년 대산문화 재단의 '외국문학 번역 지원 사업'에 선정되었다. 이 책은 현재 출간을 앞두고 있다.
감상평
"동물이 다니면 숲이 되고, 인간이 걸으면 길이 된다" 제 머릿속에는 "마지막 섬"을 읽는 내내 이 생각이 맴돌았습니다. 문명화라는 대의로 나무를 자르고 숲을 지우고, 산을 깎아내는 인간의 흉물스러운 집념이 혐오스러웠습니다. 물론 인간의 생존본능이기에, 그리고 그 본성으로 저는 살고 있기에 차오르는 혐오에 거북했습니다. 작중에 교묘하게 선동하고 포악을 부리는 '그'가 '나'일 수도 있기에. 그리고 억압에 반발하지 않고 순응하는 작중 화자를 욕하기도 부끄러웠습니다. '나'라고 다를까...
하지만 "'나'라고 다를까"에 속으면 안 됩니다. 은근히 속삭이는 비겁에 타협하면 한없이 더욱더 비참해질 뿐입니다. 우리는 침묵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야기하는지 뼈저리게 잘 알고 있습니다. 굳이 역겨운 역사를 또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습니다. 순응하지 않고 격렬히 저항하는 갈매기가 될지, 아니면 '나'가 될지. 결정을 뒤로 미룰수록 나를 유혹하는 그림자와 위압의 그림자는 점점 더 커질 겁니다.
문명과 야만, 순응과 저항, 나와 갈매기. 상반된 생각으로 독자를 괴롭히는 소설입니다. 나라면 어땠을까? 침묵과 외면은 언젠가 당신에게 엄청나게 많은 이자를 떠넘길지도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제 주관대로 작성한 리뷰입니다.